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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벅 ㅣ 창비청소년문학 12
배유안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라디오에서 누군가 열변을 토한다. “우리 어릴 때, 그 흔한 동네 놀이터도 없고 텔레비전, 컴퓨터가 없어도 해가 지도록 재미있게 놀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갖출 거 다 갖추고도 ‘심심해’를 입에 달고 산다. 먹을 게 지천이어도 입맛이 없다고 한다. 밥만 먹어도 감사하게 생각했던 그 시절엔 ‘이렇게 밖에 못살 바에야 아예 죽지!’라는 건 꿈에도 하지 못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남 보기에 부러운 삶을 살면서도 툭하면 자살을 한다. 아이들 역시 공부만 하면 되는데 그게 힘들다고 웃는 얼굴 보기 힘들고, 무슨 벼슬을 한다고 수능만 앞두면 온 집안 식구들을 살얼음 판 위를 걷게 한다.”고.
그 사람 말이 맞다, 다 맞다. 그러면서도 내 가슴은 ‘틀리다’고 말한다. 우리 삶을 돌아보면 정말 그렇지 않다고 가슴 속부터 끓어오른다. 무엇을 위해 질주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회가 흔들어대는 채찍질에 그냥 앞서 가기만 하려다 우리는 벼랑을 만난다. 벼랑 끝에서 위험을 감지하고 멈추고 싶어도 이미 지나온 세월이, 둘러싼 환경이, 길들여진 내 자아가 가속도가 되어 끝내는 떨어지고 마는 형국.
초정리편지의 작가 배유안은 새 소설 ‘스프링벅’에서 한 번 뛰기 시작하면 지금 그곳이 어딘지, 애초에 왜 달리기 시작했는지도 모른 채 그냥 달리고 달려 모두가 함께 벼랑 끝에서 추락하고 마는 아프리카에 사는 양 ‘스프링벅’처럼 현대를 살고 있는 수많은 어른들과 청소년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수능대리시험으로 유명대학에 들어간 형의 자살로 평온했던 가정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공부에 내몰리던 친구의 가출, 불합리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선생님, 그리고 자신들의 상황과 꼭 같은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동준이와 친구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잠시 ‘희망’을 떠올릴 수 있다. 가출 후 자신의 진로를 찾은 창제나, 부모님의 이혼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해하고 넘어가는 예슬이처럼 막다른 곳으로 치닫지 않고 아름답게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 모습을 보니 참 대견하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쫓기듯 살아갈 때, 숨고르기를 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 바로 책이 아닐까 한다. 곧 중학생이 되는 큰 딸도 진지하게 자신의 인생을 앞에 두고 ‘왜?’와 ‘어떻게?’를 고민할 때, 이 책을 건네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