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빛나라, 세상이 어두울수록 - 허수경 자전 에세이
허수경 지음 / 문학사상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둘째 아이 돌 잔치를 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친정엄마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한 모임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나, 임신했어요. 올해 12월이 출산 예정일 이예요.” 식사가 거의 끝나고 담소를 나누던 때였는데,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리 가족이 모두 모인 식당의 단독 홀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너무도 길게 느껴지던 10여초가 흐른 뒤, 너도 나도 한마디씩 하는데, 잘했다란 말보다는 생각을 바꾸란 말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흥분하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말이 많아지는 다혈질의 여동생은 ‘언니, 미쳤어? 지금도 두 아이 언니가 돌보지 못하고 맨날 밤중에 퇴근하면서 무슨 생각으로 셋째를 또 낳는다는 거야?’ 하며 펄쩍펄쩍 뛰었다. 엄마아빠는 차마 뭐라 말씀하시지 못했지만, 잘했다는 말씀도 없이 묵묵히 눈을 내리깔고 계시는 모습에서 딸 고생길이 훤하기에 찬성하고 싶지 않은 분명한 마음이 읽어졌다. 말을 꺼내기에 앞서 아이를 지울 것인지, 낳을 것인지에 대해 나 역시 심각하게 고민했었기에 나를 사랑하는 가족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도 하고 뱃속에서 이 말들을 모두 듣고 있을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했었다.
나는 그렇게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는데, 아이 한 번 가져보는 게 소원인 여자를 알게 되었다. 이름만 대면 대한민국 사람들 대부분이 ‘아하!’하고 아는 사람, 예쁘고 똑똑한 사람, 유명 MC라는 멋들어진 타이들이 있는 사람, 그래서 세상을 모두 가졌을법한 그런 사람이 갖지 못한, 가질 수 없어 너무도 애타게 그렸던 것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우습게도 ‘하늘은 공평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으며 뱃속에서 수차례 죽어간 아이들로 인해 몸도 마음도 지쳐있던 허수경씨가 ‘빛나라, 세상이 어두울수록’을 출간하며 비혼모라는 굴레를 스스로에게 씌우면서 얻은 ‘별’이라는 사랑스러운 딸과 마음을 공개한다. 세상의 잣대로 보았을 때 결코 가볍게 지나갈만한 일이 아님에도 ‘엄마’이기를 소망한 허수경씨의 마음을 백 번 이해한다고 하면 나도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까?
사랑스런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어 감사하고, 흙을 밟을 수 있어 감사하고, 그 흙속에 생명을 이어가게 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 사는 소박한 여자 허수경씨의 글을 읽노라면 어느새 고단한 삶의 무게로 인해 받게 된 내 마음이 위로를 받게 된다.
지금 이 느낌을 쓰지 않으면 잊어버릴 것 같다는 그녀의 말들은 지난 날, 토끼 같은 자식 셋을 키우면서 느꼈던 감동들을 많이 잊고 사는 나를 반성하게 하며 아직은 엄마가 제일 좋은 나이를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고, 그 아이들의 미소 한 자락, 사랑스런 말들을 잘 저장해 놓아야겠단 생각을 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