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다행스럽게도 나는 끔찍한 전시상황에 놓여진 -전쟁이란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주도적인 선택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험이 없기 때문에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 다리가 붕괴되는 현장에도,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곳에서도, 전염병이 창궐하는 곳에서도, 비나 눈 같은 자연재해로 이재민이 되어본 일도 없다. 그러하기에 전쟁과 테러 속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갖가지 상황을 헤쳐 나온 사람들이 다시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며, 희망을 전해주는 것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

  ‘연을 쫓는 아이’는 평화로운 유년기와 전쟁의 소용돌이, 그리고 새로운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는 용감한 사람들이 나온다. 굵직굵직한 사안들로 인해서 국제사회면을 심심치 않게 장식하던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그다지 많이 알고 있지 못했는데, 주인공 아미르의 성장과정과 함께 대략의 아프가니스탄의 근대사를 알게 되었다. 왕정이 쿠테타로 인해 무너지며 소련군의 침략을 받고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면서 잠시 평화에 대한 희망을 가졌던 이들에게 다시금 끝없는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게 만든다.

  두 주인공 아미르와 하산. 부잣집 도련님과 하인으로 만나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지만, 그 둘은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의 부적절한 행위로 인해 ‘형제’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같이 쓰지 못했다. 활동적이고 자신만만한 아버지와 달리  책 읽기를 좋아하고 동네 꼬맹이들과 싸울 때조차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나약한 아들 -실제로는 같은 아들이면서 같은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하산에 대한 미안함이 더 커서 살가운 애정 표현을 못했지만- 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바바에게 인정받고자 연날리기 대회에서 1등을 하며 기쁨에 빠진 아미르. 그러나 이도 잠시, 연줄이 끊겨 날아가는 2등 연을 쫓아 들고 오던 하산이 어리면서도 잔혹함을 갖춘 아세프 일당에게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아미르는 겁에 질려 하산을 도와주지 못하는데, 이 때문에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하산을 보면 자신의 정당하지 못한 행위가 생각나 오히려 잔인한 방법으로 하산을 더 괴롭게 만들어 떠나게 만든다. 이즈음에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평화도 사라지고, 아버지 덕분에 누린 풍요와 안락함도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종지부를 찍게 된다. 풍요롭지 않지만 나름대로 안정을 찾고 살던 도중, 어렸을 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해주던 아버지의 친구 라힘 칸의 부름을 받고 간 자리에서 생면부지인 조카를 아세프 -질긴 인연의 고리를 실감하며- 에게서 구해 오며 어린 시절 하산과의 관계에서 어긋난 부분을 바로잡게 된다.

  파란 하늘에 웅장한 흰 구름을 배경으로 높이 날아오른 연을 보지 않고 어깨동무를 한 두 소년의 등 뒤에 있는 연에서는 더 높이 날아올라 최후까지 남아있고 싶은 소망이 담겨 있을까? 어른들의 계산이 깔린 연대회에서의 우승보다는 둘 사이에 나누고 싶은 대화가 더 남아 있는 걸까? 혹시 연대회가 끝나면 아미르가 새로 지은 동화를 하산에게 읽어주기로 약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로 이미 나왔다는데, 미처 몰랐기에 영화의 한 장면인 표지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는 상상을 해 보았다.

  연을 쫓는 것, 사력을 다해 연을 쫓는 이유는 단순히 더 강한 줄과 테크닉에 의해 패배당한 낙오자에게서 떨어져 나온 전리품을 쫓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최선을 다한 자랑스러운 징표를 쫓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는 세상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연을 쫓고 있다. 문제는 쫓아가는 연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쫓아가는 것이 문제이지만... 인생에 있어서 정말 귀한 ‘연 -꿈꾸는 것, 노래하는 것, 베푸는 것, 오늘을 기쁘게 사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쫓아가는 나의 모습이 영상으로 떠오르게 만든 ‘연을 쫓는 아이’는 내 오랜 독서생활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다.




우리 인생에서 쫓아가야 할 ‘연’을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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