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사나이
김성종 지음 / 뿔(웅진)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추리소설을 손에 들었다.

직장과 가정에서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와중에 잠깐씩 내게 휴식을 가져다주는

시간은 하루 30∼40분, 바로 책을 읽는 시간이다.

특히 추리 소설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게야 난해하고 어려운 사건이

독자에게는 편안하게 관망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 같아 살인과 음모, 배신 등

거리감 있는 단어의 나열에도 불구하고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허락해 준다.

우리나라 추리소설의 대가인 ‘김성종’작가의 신작 ‘안개의 사나이’는 제3자의 서술 방식이

아닌 ‘내’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이어서 정말 내가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 속

주인공과 같이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주인공이자 이야기의 전개자인 문삼식은 추리소설 작가이다.

사람들에게는 ‘구림’이라는 필명으로 불리운다.

꽤 인지도가 있는 소설가인 문삼식의 진짜 직업은 청부살인업자다.

이야기는 문삼식이 전도유망한 정치인 ‘유달희’를 청부살인하면서 시작된다.

안개 속에서 살인을 하고, 안개 때문에 흔적 없이 살해 현장을 빠져 나갈 수 있었으며,

또 안개 때문에 천운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다.

하지만 끈기 있고 조용하며 단호한 성격을 가진 경찰 수사팀의 수사반장인 하반장과

팀원들의 수사에 결국 덜미를 잡히고 만다.

청부 살인 후, 안개 때문에 제 시간에 비행기를 타지 못해 원래 타야했던 비행기가

추락해 비행기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가운데 애초 탑승자 명단에 올랐던 문삼식도

사망자로 간주되어진다. 문삼식은 그것을 계기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행사하려 하나, 좁혀지는 수사팀의 끈질긴 수사에 결국 사형을 언도받게 된다.

전체적으로 스피드하고 긴장감 넘치는 구성으로 되어 있어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단번에 읽어내려 갈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보지 않았어도 사흘에 이 책을 모두 보았을 정도니까.

자신의 이야기를 남 얘기 하듯 담담하게 그려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살인청부업자의 삶을 살며 곧 죽을 사형수의 입장을..

이것은 작가의 행패인가?

오랜 세월을 청부살인업자로 살면서 다른 이들의 진실을 볼 수 있는 시선을

철저하게 막아냈고 안개로 인해 많은 것이 덮여질 수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경찰에게 붙잡혔을 때에는 너무 어리숙한 면이 많이 보여서 좀 의외였다.

멋지게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기대했던 나였기에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순수하게 추리소설 작가의 모습을 존경하는 서형사에게 친필 사인하면서 적은 글귀,

‘모두가 안개 속에서 헤맨다’에 자신은 포함되지 않기를 바랬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 자체가 안개 속이었기에, 은연중에 빛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문삼식도 구림도 아닌, 그냥 나 자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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