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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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류진의 단편 펀펀 페스티벌을 읽고 재기발랄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세의 달인에게 스놉기질을 잘 버무러 놓을수가 있나. 나는 관찰자인 지원보다는 찬휘에게서 내 모습을 더 많이 발견하고 질렸다. 내 속물성을 누군가는 저렇게 꼼꼼하게 관찰하고 있겠군...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꼭 한 번은 꼼꼼하게 읽어야지 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마치 요 근래 들어서 너무 유행하는 에세이의 제목같아서 쉽게 손이 가지는 않았다. 그래. 제목이 다인 에세이들 말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장류진의 필력이 대단하구나 싶었다. 한동안 한국 문학에서 발견되는 너무 아프고 죽을 것만 같은 희망이 없는 청춘들. 마치 그들밖에 없는 거 같아서 내 서사도 그에 맞추어 수정되어야 할 것 만 같은 그런 인물들이 아니라, 나름 힘들어 죽을 것만 같겠지만 멀리서 보면 저렇게 멋지게 성장하고 멋들어진 용어를 말할 수 있는 청년들. 속물이라도 좋아. 나는 그것을 위해 일하니까 라고 외치는 청년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청년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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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다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전편 + 후편 - 전2권 - 스칼렛 오하라를 사랑하시나요? 다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현종희 지음, 임희선 그림 / 글자와기록사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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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소설은 너무나 유명해서 영화를 보던 소설을 보았던 그 내용을 다 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현종희가 다시 읽기를 한 다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다보면 과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트위터에서 처음 타래로 읽다 펀딩을 한다고 해서 신청해서 읽은 책.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남북 전쟁을 사회배경으로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남북 전쟁이 선전하는 것처럼 인간해방, 노예 해방에 관한 전쟁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는 못했다. 

남북 전쟁은 인간에 대한 정의뿐만 아니라 경제체제와 삶의 형태에 대한 가치의 충돌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통감했다.(물론 모든 전쟁이 내세우는 가치와 이면에 진실한 욕망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링컨의 연설로 대변되는 삽화에 눈이 가려져 그것을 가릴 생각조차 못했다. 실은 미국은 가깝지만 먼 나라이기도 하고) 

소설 속에 촘촘히, 교묘하게 쌓인 사회상을 훝어보는 것도 재미진대 즉물적 인간인 스칼렛과 이념적 인간인 멜라니, 그 두 인물의 대립되지만 또한 모순되게 서로에게 합이 맞아가는 과정을 헤테로의 눈이 아닌 퀴어의 눈으로 보니 그 또한 너무 재미있었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여태까지 바람과 함께 사라진 것은 레트라고 생각했으나.... 실은 멜라니였다는 걸...

포스터의 에밀리에게 장미를 읽었던 것과 같은 충격과 아련함이 몰려왔다는 걸 밝힌다. 

다만 포스터의 에밀리가 잃어버린 남부를 봉인하고 쾨쾨한 먼지와 함께 소멸해 갔다면 멜라니는 휘몰아치는 광풍처럼 맞서다 떠나갔다. 


저자가 말한 대로 역사 속의 남부는 멜라니가 떠나고 남긴 그 잔재 위에 끔찍한 것들을 쌓았지만 원래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것에 인간은 연연하고 미련을 두게 마련이니 탓하지 말자라고 할 만큼 소설 속의 남부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괜히 아련해지는데 그 역할을 아마도 멜라니가 가진 캐릭터의 힘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다시 읽기를 하며 현종희는 우리 사회를 해체하는데 그 속에서 발견한 남부적인 요소와 그로 인해 엉성하게 그림자를 드리운 그 무언가를 말하려고 한다. 그것이 뭔지를 알아보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트위터 타래에서 발전한 책이라 긴 호흡을 가지고 읽어야 하는 부분에서는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점과 넷상의 유행을 잘 모르면 어리둥절 할 내용들이 많다는거. 

그리고 사회학 지식과 역사 지식이 없으면 재미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별점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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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보는 마음 - 우리 시대의 시인 8인에게 묻다
노지영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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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팬데믹의 시절을 어둑한 시간이었다고 기억할 사람은 많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두려운 시간이었고 한 순간에 자의가 아닌 채로 홀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세대가 아니었을까 한다. 형벌로써의 고립이나 혹은 열반의 조건으로서의 고립을 상상하고 이야기할 때와는 다르게 지난 몇년의 고립은 타인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이루어진 고립이었기에 그 고립의 의미는 실은 남달라야 했다. 그러나 그 시간동안의 고립이 쓰디쓴 사회의 안정망을 확인하는 데에 불과했기때문에 우리는 우리 사회의 연대를 오히려 잃어버리고 만 기분이 든다. 


그때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던 글들이 몇 편이 있다. 노지영 평론가의 글이 그 중 하나였다. 그이는 2022년 아르떼에 공존을 모색하는 약하고 꾸준한 연결이라는 글을 썼는데 그 글은 나에게는 위안이 되는 글이었다. 강한 연결; 혈연이나 학연, 같은 계급성을 가진 이들과의 끊어지지 않는 고리 속에서는 너무나도 쉽게 이해되고 너무나도 쉽게 강렬한 감정을 보이는 이들이 오히려 약한 연결; 하나의 사회속에서 정의로 규정될 우리라는 연결에 대해서는 파편화되다 못해 결코 나아가지 못할 와해된 감정선들만을 흩날리는 모습을 관찰하고 노지영 평론가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결코 강한 유대로 이어진 사회보다는 우연히도 그렇지만 지속적으로 만나게 될 약한 연결들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참 좋았다. 강한 유대, 강한 연민, 강한 사랑 등의 붙은 강한이라는 말이 어쩌면 우리를 강제하고 우리의 고립을 더 한층 맹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 나에게도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의 글이 단지 시대를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귀기울이고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할 기회를 충분히 주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한없이 따뜻한 기분이었다. 사실 나는 노지영 평론가의 아르떼의 칼럼 외에 다른 글을 먼저 읽었다. 어느 시의 평론이었는데 그 시에서 말하는 작은 속삭임, 무의미하다고 여겨질만한 소리들을 귀담고 그 소리들을 다시 부드럽게 호명하여 나에게까지 울리게 하는 그 글들에 속수무책으로 귀를 열수 밖에 없었다. 


그 노지영 평론가가 8명의 시인을 대면하고 시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그 이야기를 다시 말하는 모습을 담은 "뒤를 보는 마음"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는 망설임 없이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그의 대담집을 읽으며 나는 시의 자리와 육화된 시인의 음성을 상상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미 사멸되고 불투명화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거라고 믿어지는 시의 모습을 눈을 감고 복원하는 꿈을 꾸었다. 게다가 무기력하게 갇혔다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이젠 미련한 것이라고 체념하듯 받아들였던 나와 그 와중에 버렸던 작은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이 접속사들이 유효하다고 결코 버려선 안된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러므로 나는 "뒤를 보는 마음"을 추천한다. 빛이 물위에서 반짝이는 건 굴절하기 때문이 아닌가? 세상이 살만한 빛을 가진 건 이처럼 세상의 이치라고 여겨지는 대세에 흡수되는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튕겨지고 그래서 그 의미를 만들어내는 시와 그 시를 들어서 다시 말하는 마음때문이 아닌가? 

노지영 평론가는 이처럼 시를 다시 말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역시 수많은 속삭임들을 들어보고 다시 소리내어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해 본다. 


끝으로 이 대담집을 시작으로 노지영 평론가의 더 깊은 속 마음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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