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커 래빗홀 YA
이희영 지음 / 래빗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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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의 육체에 갇힌 서른둘의 영혼이 가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 ‘셰이커’는 우연히 들린 바에서 신비한 칵테일을 마시고 13년을 거슬러 갑자기 열아홉 살 고등학생이 되어버린 주인공 ‘나우’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과거로 돌아간 나우는 열아홉에 사고로 목숨을 잃은 친구 ‘이내’와 현재는 자신의 여자친구이지만 당시에는 이내의 여자친구였던 ‘하제’를 다시 만난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친구를 살리면, 현재 자신의 사랑을 놓치게 될 지 모르는 상황. 사랑과 우정 사이의 선택을 갈등하는 주인공 나우의 모습을 담은 이번 작품은 이희영 작가님의 첫 타임슬립 판타지인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 서른둘에서 열아홉으로, 열아홉에서 열다섯으로, 열다섯, 스물, 열아홉, 그리고 다시 서른 둘까지. 나우는 다섯 차례의 타임 슬립을 하며 미래를 후회하지 않을 완벽한 선택을 찾아 헤맨다. 그러나 바꾼 선택의 결말은 나우의 기대처럼 온전히 흘러가지 않는다. 이미 지나버린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선택을 바꿀 수 있다 하더라도 다가올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할 뿐, 선명하게 보이는 정답은 없다.

< 평생을 오직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수많은 ‘나’들이 찰나에 존재했다. 덧없이 사라지고 다시 존재함을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탈피하고 그 껍질을 버리는 갑각류처럼,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 97쪽- >

◈ ‘셰이커’는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책이지만, 문득 문득 시선을 잡아 끄는 문장들이 많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작가님의 깊은 고민과 사유가 책 곳곳에 녹아 있는 탓이다. 책장을 넘기다 우연히 만나는 한 문장에서 독자들은 한참을 머무르며 자기 삶을 돌이켜본다. ‘페인트’, ‘나나’, ‘테스터’,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등 그간 수많은 작품을 출간하며 다져진 작가님의 노련한 글 솜씨가 이번 작품에서 더욱 빛난다.

< 과거를 떠올리면 자신이 마냥 어리게만 느껴졌다. 철없고 단순해 세상을 모르는 유치한 어린아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어린아이가 오랫동안 버텨 냈고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 낸 덕분에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는 그 자명한 사실을 바보처럼 잊고 말았다. -121쪽- >

◈ 이미 지나간 날들을 아쉬워하며 묶여 있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 하며 걱정하거나. 양쪽 모두이거나. 우리는 늘 현재가 아닌 과거, 미래를 본다. “현재는 없죠.” (141쪽 본문 속) 하고 답하는 바텐더의 답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현재를 보게 된다. 지나간 과거와 오지 않는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을 말이다.

◈ 시간의 흐름을 거쳐 한 명의 성인으로 자라날 청소년에게도,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청소년 기의 고민에 답하지 못한 어른들에게도 이 책은 열려 있다. 시간의 마법을 담은 신비로운 칵테일을 마시며, 나우와 함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즐겨 보는 것은 어떨까? 롸잇,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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