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복어 문학동네 청소년 70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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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별명은 청산가리. 조폭은 아니다. 자현기계공고 하이텍기계과 2학년. 키는 164cm에 몸무게는 55kg. 김두현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간혹 뒤에서 나를 청산가리라고 부르는 놈들이 있다. 지금처럼.

◈ 문경민작가님의 신간이다. 제 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훌훌’, 제13회 혼물문학상 수상작 ‘지켜야 할 세계’ 등 여러 굵직한 문학상을 여럿 수상하진 작가님의 글 답게, 이번 청소년소설 역시 엄청나게 좋았다. 그냥 좋은 수준이 아니라 엄청나게! 좋았다. 이제 문경민작가님의 책이면 그 어떤 정보 없이, 작가님의 신간 출시라는 이유만으로도 읽을 이유가 충분하다.

◈ ‘나는 복어’는 특성화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두현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부모님을 잃었다. 엄마는 청산가리라는 독극물을 먹어 스스로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혼자 남은 자식을 등진 채 새 인생을 찾아 갔다. 두현은 자신의 부모에게 벌어진 사건을 기사와 뉴스를 통해 알았다. 두현의 이야기가 그저 소설일 뿐이라 말할 수 없는 건, 때론 현실의 삶이 그 어떤 소설보다 더 잔인할 때가 있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소설은 제가 볼 때는 주인공인 청소년을 함부로 대상화하면 안돼요. 함부로 써먹으면 안 됩니다. 아이들이잖아요. 아직 커나가야 되고 더 잘 살아야 되고 어른이 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한 아이들인데, 그들의 고통이라든가 어려움들을 마구 다뤄서는 안됩니다. 써먹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예요. -책읽아웃, 문경민 작가 인터뷰 중- >

◈ ‘나는 복어’는 책 속에 녹아있는 수많은 인물들의 삶을 생생하고 치열하게 그려냈다. 늘 외면해왔던 가족의 비극적인 사건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진짜 자신의 삶을 찾아가려는 주인공 두현.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사고를 당한 오빠를 위해 학교 선배이자 오빠가 실습한 회사 귀금코리아의 사장인 장귀녀에게 최선을 다해 맞서 싸우는 재경. 자신만의 목표를 갖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준수. 책 속의 세 아이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앞을 바라보며 나아간다.

◈ 모든 아이가 두현, 재경, 준수와 같진 않다. 저마다의 삶에서 위태롭기도, 끈질기게 버텨내기도 하며 청소년 시절을 보낸다. 책 속에서도 연이은 사고로 결국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는 강태, 위태롭게 흔들리는 형석이 등장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 다가올 세상을 기대하게 된다. 제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인물들이 이 책속에는 다양하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강복집을 운영하는 작지만, 자신만의 성을 짓고 살아가는 두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방식은 타인과 달라도 늘 아이들에게 진심인 담임선생님,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귀금코리아를 이끄는 장귀녀 사장까지. 아이들이 헤쳐나가야 할 답답한 현실이, 그래도 살만한 기대가 드는 건 이런 인물들이 보여주는 우직한 모습 때문인 듯싶다.

◈ 담임 선생님은 세 아이들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특히나 너희들에게는 더 그래.” 라고 했다. 하지만, 두현은, 재경과 준수는 분명 이 녹록지 않은 세상을 헤쳐 나갈것만 같다. 이 아이들은 ‘쇠도 깎을 수 있는 아이들’이기에!

<괜찮아졌다고, 이제 멀쩡하다고 되뇌어도 이따금 과거의 기억이 소환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엄마가 나를 어떻게 떠났는지 알았을 때, 아버지가 엄마에게 내던진 말을 뉴스에서 읽었을 때의 기억은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56쪽- >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형석이 길 위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쟤도 어딘가 구멍이 뚫려서 막기 급급하다보니 별별 짓을 다 하게 된 건지, 그런 게 아니면 그냥 세상 관심 한번 받아 보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110쪽- >

<흘러가는 시간을 느낄 때마다 초조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압박감은 결정을 해야만 해소될 수 있었다. 재경의 말마따나 우리는 시간 부자였지만 시간은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시간에 떠밀려 간다는 점에서 세상 모두는 평등했다. -13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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