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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림자는 핑크
스콧 스튜어트 지음, 노지양 옮김 / 다산어린이 / 2021년 4월
평점 :
이전 학교에선 학급 반티를 몇 번 맞추었다. 학년 단위로 같은 디자인을 한 티셔츠를 입었는데, 반별로 그 색을 달리했다. 그러다 우연히 한 선생님께서 '핑크색' 반티 이야기를 해 주셨다. 선생님의 막내 아들이 1학년인 시절, 반티의 색깔이 핑크색이었다. 아이는 학교에 갈 때는 핑크색 반티를 잘 입고 갔는데, 꼭 집에 와서 학원을 갈 때면 옷을 갈아입고 가고 싶어 했다. 나중에 이유를 알고 보니, 태권도 학원에서 남자가 핑크색 옷을 입고 왔다고 형들이 놀렸다고 했다. 울고 떼쓰며 한사코 학원에 갈 때는 핑크색 옷을 입고 가지 않겠다고 한 아들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저학년 때는 반티를 핑크색으로 정하는 건 조금 더 고려해 보는게 좋을 거란 이야기를 해 주셨다. (덧붙여 고학년땐 남자아이들이 오히려 핑크!를 외치며 선호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말이다.)
선생님의 막내 아들처럼, 그림책 '내 그림자는 핑크'의 주인공 역시 좋아하는 드레스를 입고 학교에 갔다가 친구들의 시선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인다. "내 그림자가 파란색이면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있을 텐데. 나도 함께 웃고, 놀고, 장난치고, 뛰어다니고, 그림도 그릴 텐데." 하고 말하는 아이가 참으로 안쓰럽다. 아이는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드레스를 절대 입지 않겠다고 말하며 속상해 한다.
이 책을 쓴 작가님의 아들 역시 학교에 좋아하는 '엘사 인형'을 가지고 갔다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울며 돌아왔다고 한다. 어린 아이들일수록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배워온 것처럼 남자아이는 파란색를, 여자아이는 핑크색을 좋아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아이들의 맹목적인 믿음은 다른 선호를 가진 아이들에게 무의식적인 상처를 주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해버린채 남과 비슷한 놀이, 남이 좋아하는 색깔을 선택해 버린다. 책 속의 주인공 아이가 '내 그림자가 파란색이라면...' 하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림책 '내 그림자는 핑크'는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핑크색 이라는 획일화된 시선에서 벗어나 각자의 개성과 선호를 인정하고 다름을 이해하게 돕는다. 핑크색 그림자를 가진 주인공 남자 아이는 남자라면 누구나 파란색 그림자를 가진 자신의 가족들과는 달리 핑크색 그림자를 가진 아이다. 사내답지 못하다고 아버지의 걱정을 한몸에 받지만, 아이는 핑크색 그림자와 함께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즐긴다. 하지만 이런 주인공도 학교에서 자신과 달리 파란색 그림자를 가진 친구들의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은 채 집으로 돌아온다.
상처입은 아이는 자신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마음을 위로받고 이겨낸다. 아이들에게 파란색과 핑크색으로 성 역할을 나누어 가르친 것이 어른들이라면, 색깔로 인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고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 또한 어른들이 해야함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아빠의 그림자와 아이의 그림자가 함께 길을 걷는 장면처럼 말이다.
어려서부터 핑크색 옷도 자주 입히고, 남아용 여아용 물건도 구분 없이 사서 키운 우리 아이도 이 책을 읽기 전엔 나에게 '공주는 여자만 좋아하는 거야'하고 말한다. 아마 우리 사회 속 깊은 곳에 뿌리 내린 남자와 여자 구분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쳤나보다. 아이와 책을 읽으며 "엄마는 여자이지만 로봇도 좋아해. 공주를 좋아하는 남자아이도 있어." 하고 말해 주었다. 아이는 그런 내 말에 자기가 틀렸다고 제스쳐를 한다. 성 역할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가지지 않도록 어려서부터 아이에게 꾸준히 다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어야겠다. '내 그림자는 핑크'와 같은 좋은 책을 아이와 함께 읽어가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