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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딱이야 - 2022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도서 ㅣ I LOVE 그림책
민 레 지음, 댄 샌탯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0년 6월
평점 :
요즘 서점에서는 세대 간의 격차를 그린 그림책들을 꽤 많이 접할 수 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남에 따라 황혼 육아는 흔한 일이 되어버렸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도움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도 정말 많아졌다. 부모와 자식이 아닌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주, 손녀의 관계. 나이 차가 크다 보니 두 세대 간의 갈등 상황이 생길 듯 하다는 건 물 보듯 뻔한 일이다. 아이가 어린 시절에는 괜찮을 법도 하나 초등학교 중학년에서 고학년 시기만 지나면 갈등 상황은 점차 극대화된다.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
이런 세대 격차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딱이야’ 책 속의 두 주인공만 보아도 그렇다. ‘우리는 딱이야’ 책 속에선 엄마의 일로 인해 갑작스럽게 할아버지 손에 맡겨진 남자아이의 상황이 제시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손주를 바라보는 표정이 흐뭇하기만 한 할아버지와 달리 아이의 표정은 영 달갑지 않다. 낯설고 불편한 감정이 표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이는 할아버지의 집에 앉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다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어본다. ‘뭐 새로운 거 없어요?’ 요새 아이다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새롭고 역동적이고, 신선한 것에 흥미를 보이는 우리 아이들. 그런 ‘요새’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라는 존재는 얼마나 ‘새롭지 않은’ 대상이겠는가. 할아버지가 경험하고 살아온 지난 시간은 아이가 모두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설고 새로운 것일텐데도 아이는 ‘할아버지’ 자체에겐 흥미가 없다. 커다란 벽을 마음속에 세워둔 것이다.
심지어 그림책 속 할아버지와 손주의 관계는 커다란 벽을 뛰어넘는 문제도 있다. 바로 ‘언어’. 할아버지와 아이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다. 그나마 대화로서 느낄 수 있는 공감대 형성도 어려운 상황이다. 좋아하는 프로그램도, 좋아하는 음식도, 사용하는 언어도 모두 다르기만 한 두 주인공. 하지만 이런 주인공들에게도 연결 고리는 있었다. 바로 ‘그림’. 할아버지와 손주는 그림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말조차 통하지 않아 대화도 제대로 나누어 보지 못했지만, 두 사람은 단번에 ‘그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두 사람은 확연히 다른 자신만의 그림그리기 방법이 있었지만, 그건 딱히 중요하지 않은 듯 했다. 그저 ‘그림’을 좋아한다는 연결고리 하나만으로도 둘은 함께 그림을 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벽을 서서히 허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그림을 그리며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장면은 ‘칼데콧 상’을 수상한 ‘댄 샌탯’ 작가님의 화려한 그림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대사 하나 없이도 마음이 오고가는 장면을 다채로운 색상과 화려한 그림으로 아주 멋스럽게 표현해 낸 장면은 반드시 할아버지와 손주 사이에 ‘언어로 나누는 대화’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공감대와 연결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화려한 색깔이 시선을 잡아 끌고, 멋스러운 그림이 감탄을 자아내는 그림책 ‘우리는 딱이야’. 언어가 아닌 ‘그림’으로서 세대간의 격차를 줄여나가는 모습을 보여준 이 작품은 오늘 날 우리 세대의 문제가 되는 ‘세대간의 오해와 편견’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보여준다.
몇 년 전 아이들에게 ‘발레하는 할아버지’ 그림책을 활용하여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정말 깜짝 놀랐던 건, 아이들의 깊은 내면 속에 자리잡은 편견 때문이었다. 고령자를 향한 요새 아이들의 혐오와 편견은 어른들의 상상 이상으로 심하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다만 조부모와의 교류가 적은 아이일수록 고령자를 향한 편견과 오해는 굉장히 깊었다.) 그림책에서 보여준 ‘그림’이라는 매개체가 아니더라도, 세대를 뛰어넘는 무언가의 연결 고리를 찾을 때 마음 속 굳게 세워진 편견과 오해가 조금이나마 허물어지지 않을까? 어린 아이들보단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 고등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