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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왕 이채연 ㅣ 창비아동문고 306
유우석 지음, 오승민 그림 / 창비 / 2019년 9월
평점 :
봄 운동회 때 아이들 모두가 함께 뛰는 단체 축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축구 규정에 맞게 팀을 나누는게 아닌 말 그대로 '막 축구'였다. 여자애들은 우르르 공을 향해 몰려가 어떻게든 공을 한 번 차보려고 온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그랬던 축구 경기가 끝나고 나자 우리 반 한 여학생이 내게 다가와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축구만 3시간쯤 해보고 싶어요. 너무 재미있어요."
도대체 공 한 번 제대로 차 보지 못하고 공을 따라 운동장만 이리 저리 뛰어다닌 그 '막 축구' 경기가 무엇이 그리도 이 아이의 마음에 꽂혔을까. '축구왕 이채연' 동화책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내게 말을 건넸던 그 여자아이가 생각났다.
축구왕 이채연의 이야기를 보고 책장을 덮었을 때 놀란 점은 이 책이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라는 점이었다. 실제로 이 책은 세 명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스물네 명이 된 작가님의 학교 여자 축구부 아이들을 보고 썼다고 하신다. 작가의 말 내용에는 이 동화책의 실제 주인공들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녀들의 이름이 차근차근 거론된다. 그 이름들을 하나씩 보고 있으면, 이 책이 이 아이들에겐 얼마나 갚진 선물일까 싶어 감탄하게 된다.
여자 아이들이 축구에 흥미를 느끼고, 열심히 배워 전국 대회까지 출전하는 내용인 만큼 책 속에는 축구의 기본기와 기초 상식들도 많이 나온다. 아이들이 패스 훈련, 슈팅 연습 등을 하는 장면, 축구에서 움직임과 패스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장면 등 내용 구석 구석에서 축구를 향한 작가님의 열정과 애정이 느껴진다. 나 역시 좋아하는 스포츠 종목을 설명할 땐 아이들에게 경기 규칙 외로도 경기에서 중요한 역할이나 움직임들까지 설명이 길어진다.
하지만 이런 기능적인 중요성, 필요성 등의 내용들보다 이 이야기에서 빛을 발하는 건 축구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여러가지 감정에 대한 부분이다. 축구를 통해 같은 팀끼리 마음이 하나 되는 순간, 힘껏 찬 공이 골대의 경계를 넘어가는 순간, 상대방의 공을 빼앗아 차올릴 때와 같이 아이들이 공에 집중하여 느끼게 되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글 속에 참 잘 녹아나있다. 그런 감정들을 글로 함께 접하고 있으면 도대체 이 '축구의 맛'이 무엇이길래 아이들이 이토록 빠져드는 건지 나까지 궁금해진다. 어쩐지 같이 뛰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랄까.
축구를 계기로 모인 여자아이들의 이야기니만큼 책 속 주인공 채연이와 소민이와의 얽혀있는 관계가 풀려나가는 것을 함께 보는 것도 참 의미있다. 관계가 좋지 않은 친구가 있다면 채연이와 소민이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 나가며 관계를 개선해나갈 힌트를 얻는 것도 좋은 방안일 것 같다.
오늘 운동장 체육 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들어가기 전 쉬는 시간 5분을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놀게 했다. 10분여의 짧은 쉬는 시간동안 아이들이 운동장에 나와서 놀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만큼 아이들은 운동장에 나와 있는 자체를 행복해했다. 그 짧은 사이에 공은 어디서 주워 온 건지 고새 공을 가져와 저희끼리 팀을 나누어 축구를 한다.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그저 공을 가지고 함께 노는 것 자체를 즐기는 아이들이다. 내게 '축구 3시간만'을 외치던 여학생도 그 틈에 끼여 열심히 공을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이런 걸 보면 운동을 꼭 '남학생이 잘 하는 운동', '여학생이 좋아하는 운동' 으로 미리 나눌 필요는 없다는 걸 새삼 다시 느낀다.
축구부의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축구'라는 운동 종목 하나로 하나가 되어 함께 울고, 웃고 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덩달아 나도 아이들의 감정을 함께 느껴 울컥하기도 하고 함께 행복하기도 하게 된다. 이 책을 쓰신 선생님처럼 멋지게 축구부를 지도할 만한 능력은 없어도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즐겁게 읽으며 '내가 좋아하는 운동' 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모두 함께 책속의 주인공들 처럼 즐거운 운동 경기를 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좋아하는 마음만 있다면 남자, 여자라는 조건은 중요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책이다. 여학생들도 축구를 '잘'하고 '좋아'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