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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ㅣ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44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브렌던 웬젤 그림,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9년 6월
평점 :
운이 좋았던 건지 이 책을 처음 보게 된 건 12시가 가까워져가는 자정이었다. 하루를 마감하고 적막감이 흐르는 거실에서 이 책을 펼쳤다. '삶' 이라고 적힌 글자가 굉장히 두드러졌다. 파란 새벽 밤 하늘에 달빛처럼 '삶'이라는 글자가 반짝이는 느낌이었다.
높은 산 꼭대기에 자리잡은 호수에는 아주 귀엽게 생긴 악어가 두 눈을 빼꼼 내밀고 있었다. 악어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그림과 참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밤하늘에도 별이 가득했고, 호수에도 별이 가득했다. '삶'은 처음부터 멋있었다.
'삶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됩니다' 라고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코끼리도 태어날 때는 아주 작습니다 하며 커다란 코끼리 다리 사이로 작은 아기 코끼리의 그림이 나왔다. 그리고 그 코끼리가 점점 자라나는 모습도. 햇빛을 받으며, 달빛을 받으며 라는 문구가 자연속에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하는 삶의 모습을자연스럽게 옮겨놓았다. 햇빛 아래 코끼리는 달빛 아래에서 좀 더 성장해 있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며 시간이 흘러가듯 삶은 자연의 흐름과 함께 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카메라의 앵글처럼 시야를 넓혀 세상을 보았다. 코끼리를 통해 보던 세상을 매와 낙타, 뱀의 모습을 보여주며 넓은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주었다. 수백년을 사는 거북이의 모습을 등장시킨건 우연이 아닌 듯 했다. 수백년을 사는 동물의 시선을 통해 보여준 삶. 등에 쏟아지는 소나기를 사랑하는 모습의 거북이는 우리 삶의 아름다움은 결코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걸 암시한다.
책장을 넘기면 작고 파란 새가 칠흙같은 어둠을 날며 어둠을 헤맨다. 산속에서 길을 잃고 어려움을 겪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새는 결국 아름다운 세상에 도착하였다. 작은 새가 되어 보여주는 삶의 또 다른 이치이다. 삶에서 우리는 수만은 역경과 고난을 만난다. 하지만 결국은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는다. 그 길은 아름답고 찬란하다. 삶의 또 다른 한 면이다.
또 한장 책장을 넘기면, 삶은 항상 내 옆에서 볼 수 있는 강아지나 고양이와 같이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가득할 뿐만 아니라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사는 북극곰이나 오랑우탄같은 보호가 필요한 존재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림책 '삶'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비로운 자연과 동물들로 매 장이 가득차있다. 하지만 그 그림속에 삶의 이치가 담겨있다. 어찌보면 당연한 듯 싶지만, 그 뻔한 이야기도 아름다운 자연과 동물들의 이야기로 보니 그 힘이 달랐다. 훨씬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이었다. 정말 동물들은, 정말 자연은, 그랬으니까.
실로 멋진 이야기를, 이렇게 멋진 그림으로 풀어낼 수 있는 작가의 힘이 놀라웠다. 아이들뿐만이 아닌 어른을 위한 책이기도 했다. 삶을 다양하게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들에겐 앞으로 살아갈 나날의 길잡이가 될 책이었고, 이미 삶의 길을 오래 길어온 어른들에게는 내 삶을 돌이켜보고 다시금 위안을 받을 안식의 책이었다. 아주 멋진 책을 보았다고 생각됐다. 매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가만 멈춰 그림을 바라보게 되고 의미를 곱씹었다.
'삶'은 멋진 책이다. 사유하게 만들고, 바라보게 만든다. 모든 삶은 아름답다. 세상의 모든 자연이 아름다운 것처럼, 모든 삶도 자연의 일부로 함께하는 것이니만큼 아름답다. 이름다운 이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이 가치를 모두 소중히 여기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