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나는 참 열매 맺는 식물을 좋아했다. 과일이든 채소든 땅에 심어 열매 맺는 것들이 참 좋았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괜히 좋아하는 과일을 먹고나면 땅에 심어봐야지 하고 씨앗을 모으는 습관이 있다. 정작 땅에 심어본 적은 몇 번 안된다. 그래도 꼭 좋아하는 열매의 씨앗은 모아보게 된다.

작년엔 교과서 수업시간을 빌어 교실에서 강낭콩을 4알을 심어서 70여 알을 수확했다. 반 애들에게 2알씩 나누어주었다. 콩 한알에서 이렇게 많은 씨앗이 나온다는걸 모두가 신기하고 즐겁게 경험한 기억이 난다.

무엇을 심고 기르는 것에 대한 묘한 동경과 즐거움을 느끼는 이런 내게 '할머니의 씨앗주머니'라는 책은 제목부터 흥미를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이야기는 해리성기억상실증에 걸린 엄마의 치료를 위해 아빠와 함께 엄마 예전에 살던 외할머니댁으로 이사를 온 송희의 시선에서 그려진다. 동네에서 씨앗할머니로 불리시던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았지만,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를 모두 그리워하며 송희 가족을 반가워했다. 송희는 읍에 있는 학교를 다녀야 했는데 그곳에서 같은 마을에 사는 풀잎이와 동수를 만나 친구가 됐다.

아이들은 조별과제를 하며 토종씨앗에 대한 의미와 가치, 중요성을 알게되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 또한 함께 알게 되었다. 이 책을 보면서 낯선 씨앗의 이름들이 너무 많이 등장해서 놀랬다. 이정도로 내가 우리 토종 작물에 대해 무심했구나. 우리 작물을 기르고 가꿔온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마음을 가질만도 하다 싶었다. 나같은 사람은 토종씨앗이라는 용어 자체도 생소했을 정도니까.

무조건 토종씨앗이 옳다! 토종씨앗을 심어야한다! 라고 주장하는 책이 아니어서 더 좋었다. 우리 토종씨앗의 힘, 개량종씨앗과 토종씨앗이 가진 장점과 단점, 토종씨앗의 현실을 밝혀주며 우리 종자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켜나가야 한다는 작가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잘 녹아나 있었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었기에 더 완곡하게, 하지만 힘있게 전해졌다.

우리 토종씨앗의 74%정도가 이제는 사라졌다고 한다. 우리 토종참외는 10종류정도였지만 우리가 주로 먹는 노란 참외는 외국 회사에게 종자 소유권이 있다고 한다. 청양 고추의 종자 소유권도 외국 회사에 있다. 이 모든 사실들을 나는 처음 알았다.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은 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빠르게 변하며 사라지고 있을까. 그게 더더욱 우리 전통의 문화, 우리 토종의 것이라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면 얼마나 더 아쉬울까.

토종 씨앗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풀잎이와 송희의 우정 이야기, 송희의 가족 이야기 등 따뜻한 이야기가 잔뜩 담긴 '할머니의 씨앗 주머니'는 참 좋은 책이었다. 아이들이 많이 보길 바라며 학급문고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었다.

6월의 끝이 다가온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살구가 주렁주렁 열렸다. 평소라면 그저 살구가 익었다고 좋아하며 지나다녔을 것을, 책을 읽고 나서는 토종 살구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개살구라는 토종살구가 있었다. 내가 조금만 관심 갖고 찾아보면 이렇게 쉽게 우리 토종의 것들을 알 수 있었구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