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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해 ㅣ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42
맥스 아마토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9년 5월
평점 :
엊그제 세 돌이 지난 우리 아들에게 그림책을 제대로 읽어준 적은 없다. 보통 그림 카드나 책 속에 특정 사물들을 짚어가며 자꾸 보여달라고 해서 이야기를 통으로 들려준 건 드물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완벽해' 책을 보고는 먼저 읽어달라고 했다. 완벽해 책에 나온 연필과 지우개를 보고 '어!' 하면서 짚더라. 본인이 알고 있는 거라는 신호였다.
엄마가 읽어줄까? 하니 응, 하길래 완벽해 책을 읽어주었다. 완벽해 책은 연필과 지우개로만 이루어진 이야기였다. 그림이 아니라 실제 연필과 지우개의 모습이라 더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아들은 연필들이 지우개를 향해 무서운 표정으로 쫓아오는 페이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꾸 보여달라면서도 무섭다고 내 몸 뒤로 숨었다. 4살짜리 아들과 이렇게 재밌게 그림책을 본 건 처음이라 다른 그림책을 볼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단순한 연필과 지우개로 이루어진 그림이지만, 내용만큼은 너무 재밌다. 뭐든지 깨끗하게 지워야 속이 후련한 지우개와, 그 옆에서 쓱싹쓱싹 그림을 그리는 연필. 어쩐지 완벽한 모범생 아이와 그 옆을 맴도는 개구쟁이 친구같다. 지우개는 그런 연필이 못마땅해 몸을 희생해가며 열심히 지우고 또 그렸다. 그런 지우개의 분노에 연필은 더욱 더 보란듯이 종이를 새까맣게 칠해버렸다. 지우개에게 연필은 정말 거대하고 무서운 악당같이 느껴질 법 했다. 완벽하게 하얀 종이를 좋아하는 지우개는 어느새 새까만 밤처럼 검게 칠해진 종이에 갇혀버렸다.
이걸 다 언제 지우지? 하고 괴로워하다가, 어느새 자신이 연필처럼 새까만 연필들을 지워가며 그림을 그린다는 걸 알았을 때, 지우개는 분노와 절망에서 기쁨과 희열의 감정으로 변했다. 심지어 야호!하고 소리치면서 말이다. 연필과 함께 만들어 낸 또 다른 완벽한 경험이었다.
모든 종이를 깨끗히 지워내고 완벽히 하얀 종이로 돌아왔을때, 지우개는 전과는 다른 감정을 느꼈다. 정말 깨끗하고, 완벽한데. 이젠 달랐다. 혼자 완벽하다고 느꼈을 때와, 연필과 함께 느낀 완벽함의 차이였다. 결국 지우개는 '야!' 하고 연필을 불렀다.
아주 깨끗한 새 하얀 종이보다, 연필과 지우개가 함께 만들어 낸 '완벽해' 는 달랐다. 혼자 완벽한 것 보다 함께 완벽한 것일 때가 훨씬 멋진 것처럼. 나와 완전히 다른 모습의 대상도 어쩌면 내 완벽한 짝꿍이 될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