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천재 열전 -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인문적 세계를 설계한 개혁가들
신정일 지음 / 파람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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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제목에 조선이 들어가 있어서 뭔 내용인가 눈이갔다 조선천재열전~ 조선시대의 천재들 이야기인가 보네 어떤 사람들이 실려 있을까? 싶어서 목차를 봤다 목차를 보고 읽어보고 싶어서 서평 신청~ 역사책인데다 인물이야기 책은 인기가 없는편이라 경쟁률이 전혀 치열하지 않았다 책이 도착후 펴보고 아~ 이런 색감의 표지는 거의 본적이 없는 듯 글자체까정 ㅋㅋ 난!! 학구적인 책이다 이렇게 적혀있는 듯하게 느껴졌다 책을 펴보니 3백페이지가 넘어가고 내가 읽기에 글자크기가 좀 작았다 (노안이 온 이후 적은 글자크기는 부담된다ㅠㅠ)

*김시습, 이이, 정철, 이산해, 허난설헌,
신경준, 정약용, 김정희, 황현 *

@김시습
이산해, 신경준, 황현은 잘 모르는 인물이다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있었기에 서로 얽혀있는 인간관계도 있고 또 당파싸움으로 안타까운 일들도 많았다 저9명 모두 아주 어릴적부터 천재적 기질과 능력을 보였다 하나같이 책을 읽고 시를 지어냈다(게다가 대부분 그림도 잘 그렸다) 대부분 풍족한 유년시절이었지만 여러 풍파를 겪고 죽을때 왠지 다 쓸쓸히 죽은듯 하다 똑똑한거랑 행복하게 잘사는거랑 다르구나~

@이이
*허난설헌도 있는데 왜 신사임당이 없지 했는데 .. 지금 생각해보니 신사임당의 아들인 이이가 있으니 작가가 뺐나보다 강릉의 외가의 별채인 오죽헌에서 태어났고 6살에 서울본가로 와서 본격적 어머니로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3살때부터 천재성보임(죄다 3살에 싹수가 보였다고 )
*율곡은 조상들이 살던 옛터 파주 살았다(아버지의 고향) 그곳 화석정이란 정자기둥에 율곡이 살아생전 틈나는 대로 기름을 발라두게 했다 율곡이 죽고 8년뒤 임진왜란나 선조가 피난길에 올랐다 한치앞도 안보이는 임진강 가에서 어찌할바 몰라할때 피난길 수행하던 이항복이 정자에 불을 붙여 무사히 강을 건너갔다고 한다 ( 율곡의 전쟁대비위해 십만대군 양성 해야한다고 -제자들에의해 확대 해석되었다는 말도 있다 -주장했던 것 같이 앞날을 내다본것일까? )
*어머니 신사임당이 죽자 상심에 빠진 율곡은 불교서적에 빠져 결국 스님이 된다(19살) 유학의 조선에 불가에 몸담는다는 것은 천민이랑 다름 없어 그런 결심은 아주 어려운것이었고 두고두고 율곡에게는 짐이된 흑역사가 되고 말았다
*24때 강릉 외가로 가던길에 퇴계 이황을 방문했다 이때 36살 차이가 나 이황은 59세. 하지만 두사람은 오래지인 처럼 뜻이 통했고 율곡은 퇴계를 선생으로 모시고 이황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다
*아홉번의 과거에서 장원급제해서 구도장원공이라고 불렸다

@정철
*제일 유복하게 태어났지만 가장 파란만장한 삶을 산것 같다 큰누이가 인종의 후궁 작은 누이가 계림군의 부인이라 어릴적부터 궁출입했고 어린시절의 명종과 소꿉친구였다 정철이 장원급제하자 명종이 궁으로 불러 성대한 축하연 베풀어줌. 나중에 명종이 처남의 살인사건을 덮어달라한걸 딱 잘라 규칙대로 처리해다가 찍혀서
*율곡이 죽고 동인의 탄핵받아 담양에서 초막을 짓고 살던시절 사민인곡 속미인곡등 여러작품 남겼다
*을사사화를 피해 순천으로 가던중 김윤제를 운명적으로 만난다. 한여름 졸다 꿈을꿨는데 앞개울에서 한마리 용이 놀고 있는걸 보고 깸 바로 앞 개울을 보니 한 소년이 멱을 감고 있는걸 데려다 여러가지 문답하고 자기 문하에두고 글을 가르치기시작.
*9살 연상 기대승을 스승삼고 학문을 배웠다
유학 만능 시대였고 당파 싸움 전개의 행동대장이었다 어린시절 형매부 죽음과 아버지의 오랜 귀향생활로 불우한 소년시절보낸 정철은 술에 자주 취해있었고 사모가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게 흔했다
*이이와 정철 부분을 읽다보면 겹치는 인물과 일들이 많다 당파싸움등 김여립 모반사건등 다음에 나오는 인물 이산해랑도 연결된다(복잡해서 다시 읽어봐야겠다 이부분은)
*기축옥사를 조종하여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 남김 정철은 3백여년간의 당쟁 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시를 짓는 데 있어 천쟁성을 발휘, 성산별곡 관동별곡도 지었다 권력에 집착한 정치 역정이 그의 시인으로서의 정철의 모습을 가려버린다

@이산해
*토정비결의 이지함의 형 이지번의 아들이라고 한다 이산해가 태어났을 때 영리하니 꼭 잘 보호하십시오 우리 문화가 이로부터 다시 흥할것입니다 라고 이지함이 말했단다
*이산해의 사위가 우리가 아는 오성과 한음의 한음 이덕형이다 이산해가 신동이란 소문이돌자 당대 세도가였던 윤원형이 사위를 삼고자해서 그의 아버지는 아예 거처를 단양으로 옮겼다
*율곡 정철과 친구였음에도 당파가 갈려 멀어졌지만 선조당시 8대 문장의 한 사람으로 손 꼽힘
*가난하면서도 남에게 물건을 줬고 녹으로 받은 곡식도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다 제사음식도 딸이나 며느리에게 쉬라고 청하며 몸소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가장 천시한것이 일하는것 그중에 음식하는 것은 종이나 여자의 몫이었다고 하니 대단한 일이다!!
*한당파의 수장이었고 영의정까지 지낸 인물이니 똑똑함은 거들뿐!

?@허난설헌
강릉에서 태어났다 읽다보니 신사임당이라고 착각할 뻔! 천재적인 가문에서 성장함 오빠 허봉은 문학적 스승이었고 홍길종전 지은 허균이 남동생이다 허난설헌이 자유롭게 공부에 매진하여 문장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양천허씨 가문의 개방성과 자유로 사고 같은 가풍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
*시어머니의 학대와 질시로 버거웠던 허난설헌은 남매개 돌림병으로 죽고 스승같은 오빠 허봉이 죽자 삼한(세가지 한)을 지었다
1ㅡ조선에서 태어난 것, 2ㅡ여성으로 태어난 것 3ㅡ남편과의 금슬이 좋지 못한 것
(똑똑한 며느리를 이해하지 못했던 시어머니와 잘난 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기보단 콤플렉스땜에 바깥으로 돌며 가정을 등한시한 남편 : 그 삶이 참 팍팍했겠다 그나마 믿고 의지했을 자식들마저 다 죽어버렸은 그 맘이 어땠을까?.)

@신경준
*아버지기 신숙주의 동생 신말주의 10대손이다 태어날무렵 커다란 붉은 호랑이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꿈을 꿨다 태어난지 9달만에 글씨를 알아보고 4살에 천자문 5살에 시경 7살때 뜰에 있는 늙은 살구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자 나무라는 글을 지자 열매가 열렸다 함^^:;
*비록 나에겐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고 한다 그중 지리학에 대한 저서들이 유난이 많았다 지리학에 대한 해박함을 조정에서 인정했기에 국토에대한 여러 형태의 편찬 작업 맡겼다
*그 당시 실학자들의 대부분이 재야에서 활동(유학 중심이고 실학을 깔보는 풍조였기에 그랬겠지)했지만 그는 국가적 사업에 자신의 지식과 학문을 맘껏 발휘 조선 후기 역사지리학에 큰 족적을 남가 실천적 천재 지리학자였다

@정약용
*18년을 유배생활을 했다. 먼저 유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에게 시 한편을 부채에 써주었는데 그사람이 서울 재상집에서 별생각 없이 그 부채를 꺼냈다가 깜놀하며 정아무개가 아직 이 세상에 노닐고 있단 말인가했단다 ㅠㅠ그 뒤에 풀려남
*정조가 아낀 실학자 정약용.(화성 축조시 거중기 발명 등) 하지만 그집 전체가 천주교에 얽혀서 다른형은 죽고 정약전과 정약용은 유배를간다 흑산도에서 형은 자산어보를(이 영화를 봐야겠다! 유배가는 길에 두사람에 율정점에서 헤어지는 장면이 슬프다고 ... 형은 흑산도에서 죽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등 수많은 저서들을 남기게 된다
*내가 사는 곳에서 정약용의 옛집이 그리 멀지 않다 그쪽에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어 아들이 어렸을 때 자주 놀러갔다 옛집근처에는 다산관련 유물전시한 작은 박물관이 있다 예전에 한 역사 설명해주시는 분께 그 일대를 돌며 설명을 들었던 것 중 몇개 생각나는게 있다
ㅡ자기 묘를 (그 앞까지 올라가서 들음) 꼭 이곳에 써라고 했단다 1925년에 큰 홍수가나서 생가가 다 떠내려갔단다 묘를 거기에 쓰지 않았더라면 남아 있지 않았을거라고
ㅡ 박물관에서 해주신 여러 이야기중에서 당진유배지에서 부인이 시집올때 입고 온 비 바랜 치마가 기억난다 보냈준 그 치마를 잘라서 그 위에 편지를 써서 부인에게 보냈다고 했다 (왜 부인은 시집올때 입고온 빛바랜 치마를 보냈을까? 날 잊지마시오 그런건가?? 그당시 정약용은 당진에서 소실을 들여 딸을 낳았단다^^:; 유배가 끝나고 돌아갈 때 안데려갔다고해서 설명 듣던 아줌마들이 욕을 해줬다 ㅋㅋ 남양주나 당진이나 정약용을 내세워 여러 광고를 한다
*당파싸움에 천주교관련해서 긴 유배생활 했던 정약용. 세종시대 태어났으면 빛을 더 봤을텐데 싶기도 하지만 아마 유명한 저서들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수도 있겠지
*정약용은 천주교 측에서 보면 배반자이다 다시는 믿지 않는다고 해서 목숨은 건졌다 또 다르게 보면 정약용과 그의 가문이 없었다면 한국의 천주교 역사는 어찌됐을지...

@김정희
*16살부터 실학의 거두 박제가에게 학문을 배웠다 그로부터 들은 청나라의 문물과 학문. 그곳 생활을 동경했고 중국의 학자들과 교류하기를 열망했다
*아버지가 청나라 연경으로 갈때 동행 . 스승의 소개로 당대의 삭학 옹방강과 완원을 만난다 이후 지나치게 숭상했다는 지적을 받게 된다 조선을 답답하고 촌스러운 나라라고 여기고 북경의 화려한 문물을 그리워했다
*국보3호아 진흥왕 순수비는 추사의 혜안과 집념이 이룬 우리나라 금석학 연구의 금자탑이다 그전에 틀리게 알려져 있던것을 추사가 끈질지게 파고들어 진흥왕 순수비 인것을 알아냈다
*제주도 유배지에서 추사체를 완성하게 된다
*70세 벼슬살이를 접고 과천에 살때 흥선대원군에게 보낸 편지가 여러통 전한다고 한다(친한 사이였나 궁금해진다)
*조선시대 사관들은 인물평에 인색하기로 유명한다 젊은 사관들이 꼬장꼬장하게 사필을 휘둘렸는데 유독 추사에 대해서만 진심에서 우려나오는 칭찬을 적었다

@황현
*빼어난 시인, 역사자, 그 시대 최고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다 한만에 태어남 민씨일파의 세도정치가 한창일때 급제도 했지만 버슬에 나가지 않은듯 하다
*곤궁함과 외로움 속에서드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조선의 실정을 세세히 기술한 매천야록 씀.
신문과 관보를 통해서 상황을 정확하게 관찰하며 오하기문 매천야록을 저술했을거라 주정된다
*오하기문 : 조선말의 야사. 개항 무렵부터 1907년 12월까지 역사가 편년체로, 당쟁의 폐해 세도정치의 폐단 동학농민운동의 발생 원인과 결과, 일제 침략과 항일의병 활동 등 상세히 다룸
*매천야록 : 고종 즉위한 1864년 전후부터 기술된 편년체의 한말 역사서 1910년 한일합방 조약이 발표될 때까지 저쑤 48년간 조선 왕조 말기와 대한제국의 전모를 다룸. 파국으로 치닫는 국내외 관계, 유려한 문체와 풍자작인 야사체로 표현된 격조 높은 글이다. 정사가 아닌 야사체이지만 공정한 입장에서 비판한 드물게 보이는 희귀한 기록으로 정사 못지 않은 가치를 가진다

*출판사로부터 책만 무료로 제공받아 솔직히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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