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 세계를 바꾼 과일의 운명
댄 쾨펠 지음, 김세진 옮김 / 이마고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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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흔히 이때의 선악과를 사과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쓰여진 최초의 성경에서는 선악과가 사과라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서가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선악'이라는 단어는 'malum'이라는 단어로 번역되었는데 이때, malum은 사과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었고 이에 후대의 사람들은 이 단어를 보고 선악과가 사과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 입니다. 마치 우리가 ship이라는 단어를 번역해서 '배'라고 써놓았는데 사람들은 이를 보고 사람의 배 혹은 먹는 배를 떠올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 것 같네요.

 
 

[사과가 아니라 바나나였어야 했는데...]


 하지만 모두가 그 단어를 그런 식으로 해석하지는 않았습니다. 르네상스기 유럽의 테두리를 벗어난 학자들은 선악과가 바나나임이 틀림없다고 주장하기 시작 했습니다. 코란에도 에덴 동산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는데 코란에서는 금지된 열매의 나무를 'talh'라고 불렀고 학자들은 이 단어를 '바나나 나무'라고 번역한다고 합니다. 또한 코란에 등장한 이 나무에 대한 묘사를 살펴보면, 이 나무는 '길게 드리운 그늘 아래 열매가 층층이 쌓이면서 열리고... 제철이 딱히 없이 사시사철 열매가 열린다."고 하니 확실히 이러한 묘사는 바나나 송이가 동심원을 그리면서 차곡차곡 열리는 모양, 몇 번이고 생장을 거듭하는 특성과 일치합니다.
 다시 기독교 성경으로 돌아가 보면 아담과 이브는 자신들이 나체임을 깨닫고 '무화과 잎사귀'로 몸을 가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 무화과 잎으로는 중요 부위만 간신히 가릴 수 있을 뿐이며 바나나 잎은 지금도 많은 나라에서 실제로 의복을 만드는데 사용된다고 합니다. 또한 역사를 통틀어 바나나는 무화과로 불렸습니다. 처음 바나나를 맛본 알렉산더 대왕은 이를 무화과라고 불렀으며 스페인 탐험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이 멋진 열대 과일은 사과보다 성적인 것을 연상시키며 순전히 비유로만 생각해도 바나나가 사과보다 훨씬 유혹적입니다. 그리고 아담을 갈비뼈로 만들어진 즉, 무성생식의 산물인 이브처럼 바나나 또한 씨앗이 아니라 성장한 나무 일부에서 만들어집니다.

 < 세계를 바꾼 과일의 운명 : 바나나 >는 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흔한 과일인 바나나에 대해 대부분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놀라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하게 접하는 바나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얼마나 많은 환경이 파괴되었으며 또한 얼마나 엄청난 음모들이 바나나를 둘러싸고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 책은 에덴동산에서 출발해 남미와 미국 거쳐 전세계를 돌아 우리의 식탁에 이르기 까지 바나나에 얽힌 경이로운 이야기들을 쉽고 흥미진진하게 들려주고 있으며 바나나에 얽힌 인류의 역사와 고통 그리고 바나나에 걸린 인류의 미래를 알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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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은가? - 대한민국 복지국가 논쟁 미래 논쟁집 2
이창곤 쓰고 엮음, 신광영 감수 / 밈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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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진행되는 복지국가에 관한 담론들에 적극 뛰어들고 싶다면 읽어야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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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은가? - 대한민국 복지국가 논쟁 미래 논쟁집 2
이창곤 쓰고 엮음, 신광영 감수 / 밈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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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보다는 성장에 초점을 맞춰온 국가 정책 덕분인지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급속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행복지수 178개국 중 102위라는 초라한 통계치가 보여주듯이 우리 국민들은 경제 성장에 따른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행복해지지는 못한 것 같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와 행복은 어느 수준까지는 비례하지만 그 이후에는 별다른 상관관계를 갖지 않는다고 한다.) 


 일부에선 언제나 '성장'을 부르짖곤 하지만 따지고 생각해보면 어떤 나라가 경제적 성장을 이룩하고 부의 수준을 높이는 목적이라는 것이 결국은 해당 국가의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해 봤을 때 국민의 행복이 결여된 성장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경제 성장이란 결국 국민 행복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흔히 그러하듯이 수단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일이 여기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무상 급식이나 무상 의료와 같은 복지에 관한 담론이 급격하게 확산되는 것도 우리 사회가 처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리라. TV 뉴스와 신문 지상에서는 그것이 복지 국가에 찬성이던 반대이던 온통 복지 국가에 대해 떠들고 있지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지 국가라는 개념은 막연하기만 하다. 기껏 떠오르는 이미지라고 해봤자 스웨덴이나 덴마크와 같은 일부 북유럽 국가가 전부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복지 국가에서 살고 싶은가?>는 최근 활발하게 일어나는 복지에 관한 담론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보다 심층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다.  책은 복지 국가라는 개념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사회권'에 대한 설명에서 출발하여 복지 국가의 정의와 복지국가의 여러 형태들을 비롯해 최근 불고 있는 복지국가 논쟁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글을 통해 설명해주고 있다.  
 

 사회권이란 무엇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장기간 권위주의체제 아래 살면서 '자유권'에 대하여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사회권'이라는 관념은 추상적이고 막연하다.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이러한 헌법조항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감을 잡기 힘들다. 국가의 부당한 간섭에 맞서 자유를 보장받는 것이 자유권이라면, 사회권은 오히려 국가로부터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이다. 가난과 소외 같은 경제적 문제는 '개인의 책임'으로 보는 경향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는 왜 나라가 이러한 권리를 보장해야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실업이나 가난과 같은 경우도 개인적 원인을 넘어 국가의 정책, 산업의 동향, 세계화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IMF 사태로 인해 대량 해고된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원인과 책임을 모두 그들에게 떠넘길 수 없듯이 가난과 소외에 대해서도 그 속에 숨겨진 사회적인 책임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보호를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사회적 위험에 대해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한 것이 현대 사회권의 이념이며 헌법 사회권의 조항이다. 


복지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에 의해 운영되는 복지제도가 있다고 다 복지국가라고 칭할 수는 없다. 복지국가는 "개인과 가족의 생계가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 밖의 국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과 가족 노동력의 재생산이 전적으로 시장에 맡겨져 있지 않고 국가가 이를 담당하여 개인과 가족의 시장의존성을 약화시킨 제도를 보편화시킨 국가"가 복지국가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복지국가인가?
 서유럽의 복지국가들의 경우 국민총생산의 50~60%를 예산이 차지하고 그 예산의 50~60%를 복지관련 지출이 점하는 데 비해, 한국은 선진국 지출의 1/4에 머물 뿐이며 이는 OECD뿐만 아니라 소위 과거 제3세계 국가들에 비해서도 형편없이 낮다. 복지 예산이 크지 않은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사적 기부금의 2%에 달하여 국가의 역할을 기업이나 개인들이 어느 정도 담당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러한 전통마저 없으며 이에 관한 변변한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즉, 한국은 복지국가도 아니고, 사실상 기업복지나 자선전통 마저 부재하기에 복지사회라고 부르기도 힘들다. 


 이렇듯 척박한 토양 속에서도 복지국가에 관한 담론들은 확산되어 가고 있으며 이제는 보수 진형에서까지 복지국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세월 대한민국은 경제 발전이라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뛰어왔고 이제 그 목표를 성취했다고도 할 수 있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었다면 다음 목표를 설정하여야 한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사회에서 일고 있는 복지국가에 관한 논의들은 단지 소모적인 정치적 논쟁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며 국가의 미래를 위해 오히려 권장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의식 있는 개인이라면 이러한 논의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스스로 공부하여 자신만의 논지를 가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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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번영 - 비판적 경제 입문서
다니엘 코엔 지음, 이성재.정세은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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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종종 경제적 번영이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오고 삶의 질을 한층 향상 시킬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평화와 번영이 함께한다는 생각은 과거에 대한 잘못된 환상에 불과하며 오히려 전쟁은 경제적 번영의 결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인간들은 부유해지고 교육 수준이 높아진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착한 사람으로 바뀌지도 않는다. 오히려 인류는 악한 행위를 할 새로운 방법을 쉽게 찾는데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그들은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았고 그들 중에는 심지어 억만장자도 끼어있었다.



이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직관은 실제 역사적 사건과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과 직관의 괴리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에 대한 관습적인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비판적 경제 입문서라는 부제가 붙은 책 <악의 번영>은 신석기 혁명에서 부터 출발해 인류 역사의 경제학적인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왜 서양이 인류 발전을 이끌어 온 것인지 번영과 공황은 어째서 찾아왔으며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부터 인도와 중국의 성장은 과연 인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며 신경제에 이르기 까지 인류의 경제사와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왜 서양인가?

유럽은 국가-민족이라는 새로운 정치 모델을 만들어 냈다. 이는 지속적인 긴장 관계 속에서 유럽 각 국가가 끊임없이 견제하고 경쟁한 결과 이며 이러한 군사적이고 도덕적인 긴장의 교차는 인문주의와 과학적 사고의 번성을 가져왔다. 이러한 경쟁은 유럽 국가들이 유럽 밖으로 힘을 벋치기 시작했을 때 매우 결정적인 이점이 되었으며 적들을 굴복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군사적 우위와 과학 혁명을 통해 축적한 사상을 바탕으로 서양은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다.



맬서스의 법칙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맬서스의 법칙이란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인류 문명이 예술이나 기술 부문에서 무엇을 달성하든지 간에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 자료에 따르면 바빌론 시기 하루 임금은 15리브르의 밀에 해당했고 그리스 시대에는 26리브로 밀에 해당했지만 1780년 영국에서는 다시 13리브로 밀로 떨어졌다고 한다. 즉, 이 당시 영국인의 식량 생산성은 인도네시아의 원주민의 식량 생산성보다도 낮았다!

이러한 이유로 선행이나 평화, 안정, 공중위생과 같은 것은 오히려 인간에게 저주를 가져오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것들이 인구를 증가시켜서 인류에게 불행을 가져온다. 이와 반대로 전쟁이나 폭력, 열악한 생활 조건은 인구의 증가를 막아 인류에게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준다. 이렇게 맬서스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불평등은 대단히 좋은 것이며 불평등이 평균적인 삶의 수준을 높인다.

하지만 이러한 맬서스의 법칙은 산업화와 함께 깨지고 만다. 영국은 산업 혁명과 함께 수출 주도형 성장 전략을 기반으로 영국은 아프리카에 직물을 팔고, 아프리카는 아메리카에 노예를 팔며, 아메리카는 영국에 면화를 파는 삼각 무역을 구축함으로써 맬서스의 법칙에서 빠져나와 한계가 없는 성장을 구가하게 된다.



콘드라티에프 순환

러시아 경제학자 니콜라이 콘드라티에프는 경기는 50년을 주기로 순환 한다고 생각했다. 평균적으로 25년 성장하고 25년 침체한 후 다시 25년 성장하는 방식으로 경기가 순환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국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실제 현상과 맞지도 않기에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러한 경기 순환은 경기 순환과 정치군사적 순환의 연관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상관관계를 보여 준다. 흥미로운 점은 경기가 호황일 때 전쟁 발발 건수가 많으며 반대로 경기가 침체될 때에는 평화로운 시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무엇에 선행하는 것일까?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성장이 전쟁을 야기 한다.

평균적으로 국가의 부가 기대 수준 이하로 떨어지며 사람들은 좌절감을 느끼면서 가난해졌다고 생각해 개인주의적이게 된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부가 더 많아지면 사람들은 그러한 잉여분을 다른 사람들과 쉽게 공유한다. 공공재가 더욱 매력적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경제 성장시에 집단적 행복감을 추구한다. 이렇게 성장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잉여는 각국의 정치상황에 따라 사용처가 달라지지만 많은 경우 이러한 잉여력은 군비를 확충하는데 사용된다.



인도와 중국의 귀환

내적 성장에 치중 했던 중국과 인도는 기원후 1000년경 거의 모든 영역에서 유럽을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동일한 성장 과정을 경험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위안화를 저평가 상태로 유지하면서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이와 더불어 집중적인 교육과 높은 저축률을 무기로 다시 세계무대의 중심에 서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부패한 지방 정치는 오히려 중국 경제의 성장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마치 16세기 유럽 국가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이제는 중국의 각 지방끼리 경쟁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고 있다. 또한 인도의 경우도 역설적이게도 세계화에 뒤처짐으로써 자신들의 '원시적 상태 그대로 축적'되어 있던 잠재력을 한꺼번에 폭발 시킬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오늘날 인도 성장의 기반이 되고 있다.



생태계의 붕괴

하지만 지구는 아직 인도와 중국의 성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만약 중국인들이 미국인들처럼 인구 4명당 3대의 자동차를 보유하게 된다면, 석유 소비량만 해도 매일 9900만 배럴에 달할 것이며 이는 현재 석유 생산량인 8400만 배럴을 초과하는 수치이다. 즉, 중국과 인도의 국민들이 현재 서구 유럽이 누리는 생활수준을 누리게 되는 날에 지구는 심각한 지질학적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인류는 이러한 생태학적 한계를 인식하고 탄소 배출 완화와 무공해 대체 에너지 개발과 같은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현재 우리의 생활 방식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비물질적 자본주의 : 신경제

우리는 현재 비물질적 경제, 즉 정보 통신 기술의 가상 세계로 진입하는 중이다. '신경제'라는 용어는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알려준다. 이는 통상적인 경제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경제에서는 첫 번째 제품을 생산할 때는 큰 비용이 들지만 두 번째 제품부터는 비용이 크게 들지 않으며 극단적인 경우 아예 비용이 들지 않는다. 이제 어떤 상품의 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그것을 구상하는데 들어간 시간이 된다.

따라서 신경제는 규모가 커질수록 불리한 시대(농업 생산)에서 규모의 증감이 별 차이를 가져오지 않는 시대(산업 생산)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규모가 커질수록 이득이 많아지는 시대로의 전환을 나타내는 것이다.



신경제로 돌입하려는 지금, 인류는 하나뿐인 지구의 한계 내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신석기혁명이나 산업혁명 때와 비슷한 인식상의 노력을 해야만 한다. 인류는 정신적으로 17세기 유럽이 겪었던 길과 반대의 길을 가야하며, 무한대의 세계라는 생각에서 닫힌 우주라는 생각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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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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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걱정은 이제 그만두고 청춘을 위한 고민을 시작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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