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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번영 - 비판적 경제 입문서
다니엘 코엔 지음, 이성재.정세은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12월
평점 :
사람들은 종종 경제적 번영이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오고 삶의 질을 한층 향상 시킬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평화와 번영이 함께한다는 생각은 과거에 대한 잘못된 환상에 불과하며 오히려 전쟁은 경제적 번영의 결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인간들은 부유해지고 교육 수준이 높아진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착한 사람으로 바뀌지도 않는다. 오히려 인류는 악한 행위를 할 새로운 방법을 쉽게 찾는데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그들은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았고 그들 중에는 심지어 억만장자도 끼어있었다.
이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직관은 실제 역사적 사건과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과 직관의 괴리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에 대한 관습적인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비판적 경제 입문서라는 부제가 붙은 책 <악의 번영>은 신석기 혁명에서 부터 출발해 인류 역사의 경제학적인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왜 서양이 인류 발전을 이끌어 온 것인지 번영과 공황은 어째서 찾아왔으며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부터 인도와 중국의 성장은 과연 인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며 신경제에 이르기 까지 인류의 경제사와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왜 서양인가?
유럽은 국가-민족이라는 새로운 정치 모델을 만들어 냈다. 이는 지속적인 긴장 관계 속에서 유럽 각 국가가 끊임없이 견제하고 경쟁한 결과 이며 이러한 군사적이고 도덕적인 긴장의 교차는 인문주의와 과학적 사고의 번성을 가져왔다. 이러한 경쟁은 유럽 국가들이 유럽 밖으로 힘을 벋치기 시작했을 때 매우 결정적인 이점이 되었으며 적들을 굴복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군사적 우위와 과학 혁명을 통해 축적한 사상을 바탕으로 서양은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다.
맬서스의 법칙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맬서스의 법칙이란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인류 문명이 예술이나 기술 부문에서 무엇을 달성하든지 간에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 자료에 따르면 바빌론 시기 하루 임금은 15리브르의 밀에 해당했고 그리스 시대에는 26리브로 밀에 해당했지만 1780년 영국에서는 다시 13리브로 밀로 떨어졌다고 한다. 즉, 이 당시 영국인의 식량 생산성은 인도네시아의 원주민의 식량 생산성보다도 낮았다!
이러한 이유로 선행이나 평화, 안정, 공중위생과 같은 것은 오히려 인간에게 저주를 가져오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것들이 인구를 증가시켜서 인류에게 불행을 가져온다. 이와 반대로 전쟁이나 폭력, 열악한 생활 조건은 인구의 증가를 막아 인류에게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준다. 이렇게 맬서스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불평등은 대단히 좋은 것이며 불평등이 평균적인 삶의 수준을 높인다.
하지만 이러한 맬서스의 법칙은 산업화와 함께 깨지고 만다. 영국은 산업 혁명과 함께 수출 주도형 성장 전략을 기반으로 영국은 아프리카에 직물을 팔고, 아프리카는 아메리카에 노예를 팔며, 아메리카는 영국에 면화를 파는 삼각 무역을 구축함으로써 맬서스의 법칙에서 빠져나와 한계가 없는 성장을 구가하게 된다.
콘드라티에프 순환
러시아 경제학자 니콜라이 콘드라티에프는 경기는 50년을 주기로 순환 한다고 생각했다. 평균적으로 25년 성장하고 25년 침체한 후 다시 25년 성장하는 방식으로 경기가 순환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국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실제 현상과 맞지도 않기에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러한 경기 순환은 경기 순환과 정치군사적 순환의 연관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상관관계를 보여 준다. 흥미로운 점은 경기가 호황일 때 전쟁 발발 건수가 많으며 반대로 경기가 침체될 때에는 평화로운 시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무엇에 선행하는 것일까?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성장이 전쟁을 야기 한다.
평균적으로 국가의 부가 기대 수준 이하로 떨어지며 사람들은 좌절감을 느끼면서 가난해졌다고 생각해 개인주의적이게 된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부가 더 많아지면 사람들은 그러한 잉여분을 다른 사람들과 쉽게 공유한다. 공공재가 더욱 매력적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경제 성장시에 집단적 행복감을 추구한다. 이렇게 성장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잉여는 각국의 정치상황에 따라 사용처가 달라지지만 많은 경우 이러한 잉여력은 군비를 확충하는데 사용된다.
인도와 중국의 귀환
내적 성장에 치중 했던 중국과 인도는 기원후 1000년경 거의 모든 영역에서 유럽을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동일한 성장 과정을 경험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위안화를 저평가 상태로 유지하면서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이와 더불어 집중적인 교육과 높은 저축률을 무기로 다시 세계무대의 중심에 서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부패한 지방 정치는 오히려 중국 경제의 성장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마치 16세기 유럽 국가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이제는 중국의 각 지방끼리 경쟁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고 있다. 또한 인도의 경우도 역설적이게도 세계화에 뒤처짐으로써 자신들의 '원시적 상태 그대로 축적'되어 있던 잠재력을 한꺼번에 폭발 시킬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오늘날 인도 성장의 기반이 되고 있다.
생태계의 붕괴
하지만 지구는 아직 인도와 중국의 성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만약 중국인들이 미국인들처럼 인구 4명당 3대의 자동차를 보유하게 된다면, 석유 소비량만 해도 매일 9900만 배럴에 달할 것이며 이는 현재 석유 생산량인 8400만 배럴을 초과하는 수치이다. 즉, 중국과 인도의 국민들이 현재 서구 유럽이 누리는 생활수준을 누리게 되는 날에 지구는 심각한 지질학적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인류는 이러한 생태학적 한계를 인식하고 탄소 배출 완화와 무공해 대체 에너지 개발과 같은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현재 우리의 생활 방식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비물질적 자본주의 : 신경제
우리는 현재 비물질적 경제, 즉 정보 통신 기술의 가상 세계로 진입하는 중이다. '신경제'라는 용어는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알려준다. 이는 통상적인 경제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경제에서는 첫 번째 제품을 생산할 때는 큰 비용이 들지만 두 번째 제품부터는 비용이 크게 들지 않으며 극단적인 경우 아예 비용이 들지 않는다. 이제 어떤 상품의 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그것을 구상하는데 들어간 시간이 된다.
따라서 신경제는 규모가 커질수록 불리한 시대(농업 생산)에서 규모의 증감이 별 차이를 가져오지 않는 시대(산업 생산)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규모가 커질수록 이득이 많아지는 시대로의 전환을 나타내는 것이다.
신경제로 돌입하려는 지금, 인류는 하나뿐인 지구의 한계 내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신석기혁명이나 산업혁명 때와 비슷한 인식상의 노력을 해야만 한다. 인류는 정신적으로 17세기 유럽이 겪었던 길과 반대의 길을 가야하며, 무한대의 세계라는 생각에서 닫힌 우주라는 생각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