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부턴가 오이가 호불호가 갈리는 대표적인 채소로 불리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취향과 감각마저 스스로 정하지 못하고 남들의 모든 것을 베끼려 드는 사람들의 새로운 놀이인가보다 하고 그냥 혀만 차고 넘겼지만, 해가 갈수록 이들의 만행이 심각해지는 중이다.


 최근에는 슬슬 날이 더워져 식당의 따끈한 된장국이 얼음 동동 띄운 오이 냉국으로 바뀌었겠지-싶어 종종 가던 분식집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냉국은 냉국인데 노오란 대가리가 떠다니는 콩나물 냉국이 나오지 뭔가. 안면은 대강 있는 주방 직원분께 슬며시 여쭤보니 과거에는 오이 냉국을 내어주면 못 먹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는데, 근 몇 년사이 갑자기 오이 냉국을 보곤 이런걸 음식이라 내어놓느냐며 호통치는 자들이 급격히 늘어 오이 냉국은 내어놓기가 무섭다 하시더라. 이들의 연극적인 행태가 유선상에만 머무른다면 좋으련만 현실의 벽까지 넘보니 통탄스럽기가 그지없다.


 내가 이들의 오이 혐오를 '패션'이라 부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 표현이나 단어 선정이 동일하다.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른 감각과 지식, 경험을 가졌다. 설사 무언가를 보고 동일하게 '불쾌하다'라는 감정을 느꼈다고 해도 각자가 느끼는 불쾌함의 정도, 정확히 불쾌한 지점,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어휘는 저마다 다르기 마련인다. 그런데 이 오이 혐오자라 주장하는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분명 다 다른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정해진 몇 개의 문장만을 돌려 사용하며 새로운 문장이나 표현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 몇 개의 문장은 다음과 같은데,

-오이는 향만 맡아도 써서 삼킬 수가 없다.

-자신은 어릴 때부터 오이를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오이가 들어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오이를 넣었다가 뺀 것도 향이 그대로 남아서 다 구별할 수 있다.

여기에서 어미나 말투가 살짝 바뀌는 정도이고 이외의 새로운 문장은 찾아보기가 힘들더라.


 두 번째, 과거에는 오이를 잘만 먹다가 인터넷상에 오이 혐오가 유행한 이후로 갑자기 자신도 오이 혐오자라 주장하는 이를 주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건 최근의 일인데, 오랜만에 대학 동창들과 식사 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식사 장소는 삼겹살 집이었는데, 삼겹살 집에 가면 보통 고기가 구워지기 전에 먹으라고 생당근과 오이를 썰어 쌈장과 함께 내어 주지 않나. 분명 예전에 자신은 생당근은 먹기 힘들다며 내 몫의 오이를 다 받아가고 나는 당근만 먹게 했던 동기가 오랜만에 만나니 갑자기 이번에는 자신은 오이를 못 먹는다 하더라. 내 기억속에는 나는 생당근도 괜찮으니 너 오이 다 먹으라 했을 때 당근을 먹는 나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이 구경하던 모습이 또렷이 남아있는데 그리 말을 하니 황당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러면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그 표현 그대로 자신은 어릴 때부터 오이 향만 맡아도 써서 참을 수가 없어 오이를 먹지 못해왔다 하던데, 그렇다면 대관절 내가 과거에 오이를 내어주었던 그치는 누구란 말인가?


 분명 최초의 진실된 오이 혐오자가 실제로 존재하기는 할 것이다. 그러니 그 사람이 묘사한 오이의 불쾌함이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런 것을 읽고 그저 저런 사람도 있구나-하고 받아들이고 넘어가면 될 일이지, 그것을 대사처럼 외워 자신도 마찬가지라는양 연기를 하려 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부디 우리 사회가 타인을 모방하는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취향과 가치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덧 붙이는 글

 그 오이 혐오에 의문을 표하면 보통 오이를 쓰게 느끼는 유전자가 따로 있대!라며 논문이 있다더라라는 말을 들먹이던데, 그 논문은 대체 무슨 논문인가. 오이 혐오라는 것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흥미로운 주제일지 몰라도, 논문의 주제로써는 시간을 투자할만한 것이 아니다. 혹여나 누군가가 호기심으로 이를 연구했다손 치더라도, 국내에 오이 혐오자가 있다는 개념 자체가 퍼진지 몇 년 되지 않았고, 이 기간은 논문이 완성되어 나올 수 있을 만한 시간이 아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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