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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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을 상상할 수 없다.

저 얼굴의 안쪽에 '마음'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 마음에는 무수한 시공간과 관계와 또 당신이라 할 만한 것들이 한데 엉켜 직조된, 고유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것이 '마음의 역사'일 것이다. 이 한 사람의 마음을 상상하는 일의 중요성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또 쉽게 잊는가.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상상하지 않는다. 내 마음을 연장해 가공의 당신을 만든다. 그러니 그가 자신을 드러낼 때, 그가 그의 마음을 온전히 보이는 드문 순간에, 우리는 당황할 뿐이다. '대체 왜 그래. 이건 너 답지 않잖아'라며.

어떤 소설은 그 마음들을 복기하려는 간절한 시도다. 그래서 당신 앞의 그가, 당신이 무수히 스쳐 지나간 또 다른 그가, 복잡하고 고유한 무늬를 가졌다고 알려준다. 섬세하고 조곤조곤하고 웃기고 때로는 울리는, 수천 개의 발이 달린 다정한 문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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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내기들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우열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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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버를 미니멀리즘의 대가라고 하는데, 사실 카버는 그렇게까지 미니멀 하지 않았다? 읽다보면 허리 부분에서 뚝 끊기는 특유의 느낌은 확연히 약해졌고, 그러다보니 제한된 상황에서 몇몇 인물의 대화나 회상만으로 이끌어가는 카버식의 장면에서는 간혹 지루함마저 느껴지기도 했다. 굳이 지금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있을까 싶게 주변 사물들을 하나하나 지시하는 방식에서와 같이.

불행으로 점철된 책 같다. 치명적인 상황으로 이어지는 미세한 균열들. 파국으로 치닫을 것을 알면서도 굳이 그 끝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야 마는 인물들. 넘치기 직전의 수면이 만들어내는 일시적인 긴장감. 안간힘으로 버티는 가득찬 물그릇을 여지없이 엎어버리고 마는 우연들. 삶의 필연적인 불행들. 그러나 간혹 마른 나무껍질 같이 곪고 아문 흉터 자국을 비추는 저 창백한 햇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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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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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고통에 대해 평가하기 어렵다면 정확히 같은 이유로, 이 소설을 평가하기 어렵다. 이 소설의 호오를 말한다면, 그것은 한 사람이 겪은 고통에 대한 소감을 밝히는 것과 같으니까. 도저히 알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있다. '제야'들의 고통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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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언어 - 민주주의로 가는 말과 글의 힘
양정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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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언어를 통해 우리 사회에 채워야할 생활 속 민주주의가 무엇인지함께 고민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서문에서 밝힌다. 왜 굳이 언어냐면, 저자는 언어가 의식과 사고를 지배한다는 이른바 언어결정론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민주주의는 생활 속에서 시작한다는 신념을 가졌는데, 그 생활을 채우는 것에는 우리가 늘 사용하는 언어가 있다. 그 언어가 바뀌면, 우리 의식과 문화도 바뀐다. 그가 생각하는 언어 민주주의.

 

그러면서 책의 상당 분량을 이 잘못 사용된 언어를 바로잡는데 할애한다. 잘 모르고 있던 게 많다. 혼혈이 차별적 표현이라는 것을 무식하게도 몰랐다. ‘사과 잘하는 법같은 챕터는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부터 언론, 정치, 행정, 사법 분야까지 망라한다. 분야가 넓다보니 언어 사용에 조금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상식적인 수준에 머무는 면도 더러 있겠지만, 우리가 큰 고민 없이 사용하는 말과 글이 어떤 차별을 담고 있으며 또 어떤 욕망으로 빚어져 있는지 살피는데 도움이 된다.

 

사실 읽으면서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저자가 현 대통령과 함께 일한 것을 굳이 모신다고 표현한 점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흔히 듣게 되는 과장님을 모신다는 표현이 평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저자가 현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인 것은 알겠지만, 언어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책에서 굳이 이 모신다는 표현을 거듭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모신다의 사전적 의미(웃어른이나 존경하는 이를 가까이에서 받들다.)로는 틀린 표현이 아니다. 저자의 선의도 이해된다. 그러나 이 모신다는 말에는 이미 주종관계가 확립되어있다. 동등한 관계에서 사용하는 표현이 아니다(무협지에 나오는 말 같다. “괘념치 마라는 표현처럼). 저자 또한 당시에는 업무 관계에 있었을 텐데, 업무 관계에서는 직상 상사도 동료다. 함께 일하는 것이지, 누가 누구를 모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한 대단히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고 노무현 대통령 유서에 대해 저자가 너무나 잘 짜인 시적 구조라며, 다른 시인의 무섭토록 탁월한 절명시라는 찬사마저 인용하는 것은 조금 어리둥절하다. 저 짧은 유서를 단락으로 나눠서, 첫 단락은 절박함과 비장함을 담고 있고, 두 번째 단락은 결심의 사적 이유를, 세 번째 단락은 공적인 당부를 담고 있다는 식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은 다소 지나쳐 보인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그의 죽음은 충분히 비극적이고 유서는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또 각별하기 때문이다. 분석하는 순간, 유서는 그의 생을 담은 육성이 아니라 어쩌면 문학의 일부가 되고 만다.(그의 분석은 수험서에 나오는 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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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카페의 노래
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열림원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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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이 과장되어 있지만 그들이 겪는 고통이나 욕망은 우스꽝스럽지 않다. 다만 ‘사랑은 불가능 하다는’ 식의 사랑에 관한 다소 뻔해 보이는 인식은 동의하기 힘들다. 그 불가능성을 넘어 ‘가능한 사랑‘ 을 보여주는 것이 작가의 의무는 아닌가. 그러나 작가의 불행한 삶을 생각하면 왠지 이해가 가기도 한다. 쉽게 읽히고 때로 엉뚱하지만 기억에 남는 소설. 악몽으로 쓴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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