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과 동물원 - 리얼리티TV는 동물원인가
올리비에 라작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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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영화를 보며 그런 감탄을 내뱉을 때가 있다. 스펙터클 하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그럴싸한데! 라고 할 수 있는 말을 스펙터클이라고 표현하면 어쩐지 더 박진감 넘치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가상현실에서나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과 연기력으로 재현해내는 영화를 두고서, 진짜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 관객이 주는 찬사라고 하겠다.

 

「텔레비전과 동물원」의 저자 올리비에 라작이 언급한 '리얼리티 스펙터클'은 이와 조금 다르다. 창작물에서 스펙터클이란, 보통 세상에 없는 것을 세상에 있을 법한 것으로 구현해내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리얼리티 스펙터클은 자신들의 결과물이 가상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예를들면, <스타 다큐>, <인간 극장>, <1박 2일>과 같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듯한 프로그램들의 상품 전략이다. 이들은 충분히 구성이 가미되어 있으면서도 철저히 진짜라고 속인다. 여기서는 간단히 말해 '연출' 나쁘게 말하면 '조작'인 노력들이 선의의 속임수를 탑재한 것이다.

 

책에서도 다수 언급했지만, 이것은 보통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전략이다. '리얼리티'라는 텔레비전의 키워드는 시청자들에게 결코 익숙하지 않았던 타인의 세계를 전시하면서 그것에 대한 동경, 때로는 질시, 감정이입과 찬사를 화제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SBS <정글의 법칙>이 인기를 낳은 기획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리얼리티 스펙터클을 확연히 강조할 수 있는 오지의 야수성과 야생의 생존기를 의도한 것이 크다. MBC <무한도전>에서 정형돈과 하하의 친해지길 바래, 특집에 드러난 출연자의 어색한 표정들이 가짜라고 믿었다면 어떤 시청자가 그 특집을 이리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을까?

 

 그런데 문제는 그 리얼리티 스펙터클의 속임수가 들킬 때다. 프로그램의 과도한 시청자 기만이 민낯을 드러낼 때, '진짜 같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진짜' 를 원했던 시청자를 실망시킨다. 최근 SBS <정글의 법칙>에서 일어난 일련의 '개뻥 프로그램' 해명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리얼리티 스펙터클의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서 얼마나 과장된 자막을 썼느냐, 실제로 그 오지가 관광 상품은 아니었냐 하는 사실 여부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리얼리티를 표방하는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리얼리티 스펙터클의 판타지를 해체시켰다는 데 있다. 자막을 '거짓말'로 표현했다거나 관광상품을 오지 개척으로 포장한 것은 시청자의 기대치와 동경 혹은 찬사를 배반하는 지경까지 이르는, 언제든 들킬 수 있는 기만이었다.

 

 어쩐지 당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도 제작자 탓만을 돌릴 수는 없는 형편이긴 하다. 시청자는 리얼이 아닌데도 리얼리티를 갖춘 어떤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선호하고 있다. 라플란드 인의 인종 전시를 보기 위해 입장료를 지불했던 옛 독일인들이나 일반 동물원이 아닌 사파리 동물원에 갔을 때 진정한 야생을 체험한 것과 같은 착각으로 기뻐하는 우리들의 욕망은 텔레비전 앞에서도 그대로 유효하다. MBC <우리 결혼했어요>가 충분히 설정극인 줄을 알면서도 우리는 가상 부부의 쑥스러운 애정 표현이 진짜이길 기대한다. 오연서와 이장우의 스캔들 대처야 경솔한 행동이었을 지 몰라도, 오연서의 가상 남편 이준을 걱정하고 그 앞에서 오연서가 눈물로 사과하는 장면이 연출되어야 하는 것은 결국 리얼리티 스펙터클에 대한 시청자의 판타지의 공고함을 만족시키기 위한 미디어의 눈물겨운 노력이니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MBC <아빠, 어디가>의 활약은 '리얼리티 스펙터클'에 가장 충실한 예능이다. 어린이 출연자들은 성인보다 자기 방어력이나 거짓말 척도가 낮다. 게다가 이들을 통제하는 어른들도 기존의 연출력으로 아이들의 돌발 상황을 제어하기 어렵다. 지아와 후의 러브라인이나, 맏형 민국이가 텐트 앞에서 눈물보가 터진 모습이 연출이라고 생각할 잔인한 시청자는 없다. 우리는 기존 리얼리티에서 해체되거나 실망스러웠던 리얼리티 스펙터클의 판타지를 아이들의 순수한 행동을 통해서 만족시킬 수 있게 된다. 아빠 미소 엄마 미소가 절로 나는 프로그램이 주는 만족감이 '순수, 무공해, 동심'이라는 키워드로 표현되는 것도 이것이 가장 '리얼리티 스펙터클' 아니 '리얼리티'에 가깝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이 다른 매체보다 시청자를 빠르게 흡인하고 만족시키는 이유는 아마 시각 지향적인 매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현실 세계에서 사물과 사람들을 바라보듯이, 텔레비전에 드러나는 세계도 현실 세계 날 것의 모습을 그대로 투사한다. HDTV를 넘어 UHD TV가 등장하는 요즘이다. 앞으로 우리가 기대했던 '리얼리티 스펙터클'은 어떤 선의 혹은 악의를 만나, 훌륭한 창작이 되거나 교묘한 속임수가 될 것인가. '리얼리티 스펙터클'의 장난을 피할 수 없는 것이 미디어의 특징이라면, 적어도 그것이 안일한 언론 보도나 연예인의 면죄부를 주기 위한 거짓 아침 프로 보다는, 동심과 가족애를 회복해주는 예능이라면 좋겠다.

 

* 추천하기 전에

사실 읽어 내려가는 스토리텔링의 재미는 없지만 관련 분야의 고전이다. 그래서 그런지 읽는 내내 어? 어디서 많이 읽고 들은 내용인데? 싶은 사례가 있을 것. 미디어 및 대중 문화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읽어두면 좋을 책이다. (c)forested-islan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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