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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쓰기 - 전방위 문화기획자를 위한
장상용 지음 / 해냄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만화 <미생>을 참 좋아한다. 나 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전국의 직장인들과 웹툰 독자들이 열렬히 사랑하는 것을 보면 작품의 매력이야 내 주관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당연히 매주 공짜로 받아보는 이 만화의 후광을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들이 없을 리 없다. 얼마 전 <미생>의 작가 윤태호 만화가의 한겨레21 인터뷰 글을 보니 드라마 제작진들이 <미생>의 판권을 구입하려고 참 많은 연락을 보낸단다. 그런데 덧붙인 작가의 얘기가 재밌다. "(드라마 제작진들이 전화가 오면) 그럼 전 그래요. '잘 할 수 있어요? 정말 관심 있어요?' " 작가는 만화 <미생>은 매회 에피소드와 갈등으로 시청자의 몰입을 추구하는 드라마 장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오늘의 책, <전방위 문화기획자를 위한 스토리텔링 쓰기(이하 전방위 스토리텔링)>는 장르별 요긴한 스토리텔링 수칙을 일러주는 지침서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만화를 원작으로한 스토리텔링의 다른 장르로의 각색의 유의점이 중점적으로 서술된다. 아마 책을 덮으면 윤태호 만화가가 왜 <미생>의 드라마화를 확신하지 못하는지 이해하게 될 지도 모른다. 물론 그에 앞서서 주요 인물들과 사건과 갈등을 전개해 나가는 스토리텔링의 기본 수칙을 알려주는 전반부도 매우 재미있다. 왠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내용도 깔끔한 텍스트로 확실히 정리를 해주니 이해가 쉽다. 사전 취재를 통해 스토리의 견고함이 형성된다는 지침이나, 무조건 멋지고 아름다운 인물보다 결핍이 존재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지침은 콘텐츠 생산자들이 알면서도 종종 간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만화'원작이 다른 장르로의 각색할 때 가져야 하는 스토리텔링 수칙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챕터 7에서는 미디어의 조건에 따라 스토리를 조정할 것을 가장 기본적으로 알려준다. 예를 들면 일상 속에 집안 풍경의 일부로서의 스토리텔링을 담당하는 '드라마'의 경우 지나치게 문학적이거나 주관적인 감정과 묘사를 피하라는 지침, 그리고 그것은 드라마 시청자의 입맛을 반영해야 한다는 점을 일러준다. 또한 게임 장르 같은 경우는 스토리텔링이 공간 중심적이지 시간 중심적이지 않다는 점도 재미있다. 원작이 <만화>이든 <소설>이든 간에 이러한 장르적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은 스토리텔링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잘 알려준다. 그렇다면 만화 <미생>이 드라마로 성공할 가능성도 있을까?
중요한 점은 인물의 장기적인 목표와 그로 인한 갈등의 설정이다. 드라마는 웹툰과 비교했을 때 작품을 구성하는 하나의 스토리가 분절적으로 노출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드라마와 웹툰은 타겟 대중이 다르다. 드라마는 보통 30대 이상의 여성이 주된 시청층이지만 웹툰은 인터넷 사용에 능숙하고 트렌드에 민감한 20,30대 젊은 층. 게다가 스마트폰으로 주로 이용하는 웹툰은 킬림타임 용이라는 점에서 스토리의 극적 장치가 단편적이어도, 또 자극적이지 않아도 집중력을 가질 수 있었다. 공감할 수 있는 갈등 요소가 직장 생활에 한정되어 있는 <미생>이 시청자들에게도 매력적일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윤태호 만화가의 인터뷰를 우연찮게 떠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이쯤되니 진짜 각색의 가능성이 궁금해진다.
일단 <미생>은 극적인 사건의 발생과 변화보다는 주인공 장그래의 성장과 그것을 짧지만 분명한 문장과 바둑의 이미지로 구현하는 게 매력이다. 매 회마다 화해와 성장으로 마무리되는 잔잔한 정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드라마로 이 매력을 살리기가 쉽지 않다. 드라마는 '대화 중심'의 대본 의존적인 구성물이며, 인물의 고민은 내레이션이 아니라, 갈등 상황에서 주고 받는 대사로 드러나야 훨씬 재미있다. 또한 시청자들은 인물이 플롯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미션을 응원하고자 할 때 채널을 고정할 수 있고, 그것을 방해 하는 인물이 등장할 때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장그래가 보통 사원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일을 스스로 기획하고 배우기 위하여 요르단 대사관에 직접 방문하는 행동만으로도 시청자가 드라마의 감동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보통 훌륭한 원작의 각색 작품은 잘해야 본전인 법이라 <미생>의 각색을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은 모양. 강풀 만화들이 극장에서 실패하는 것을 보며 원작의 매력을 의심해야 했던 독자들의 쓰라린 마음이 읽히는 대목이다. 물론 애독자 중 하나인 나의 마음은 그렇다. 재미있는 콘텐츠를 더 많은 방법으로 즐기고 싶은 마음도 져버릴 수 없다는 것. 그래도 MBC 드라마 <골든타임>의 나름의 성공을 보면 <미생>이 갖는 단편적인 에피소드가 인물의 성장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드라마로 구현될 가능성도 나름 있어 보인다.
<전방위 스토리텔링>의 챕터 13에서는 성공한 만화 <슬램덩크>을 각색한 애니메이션 <슬램덩크> 가 '최적의 발화점'을 잃지 않은 덕분에 역시 성공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장르가 바뀌더라도, 가장 핵심 주제의식을 갖춘 장면이 있어야 성공 자격을 갖춘다는 얘기. 정말 뻔한 얘기지만 그렇단다. 물론 <미생>은 따끔한 불꽃같은 발화점이 매 회 등장하니 더 다루기 어려울 수도. 첫편부터 마지막화까지 진행 되는 동안 가장 돋보이는 '발화점'이 어디인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영화나 연극이나 게임보다는 '드라마'가 제일 어울릴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