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2
박해천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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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의 주부들은 종교 모임이나 반상회를 통해 정기적으로 만나 주부 교양, 일상 생활, 자녀 교육, 재산 투자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스스로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결속한다. 바로 이 주부들의 네트워크, 수다와 소문의 사교 공동체가 거실의 프레임을 응시하는 타자이다. 그녀들은 관상학자의 눈매로 이웃집의 생활 수준과 행복 지수를 가늠해본다. (p.82)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이 가져온 고성장의 신화는 시중의 유동 자금을 증가시켜 주가와 더불어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부추기고 있었다. 특히 가파른 상승의 그래프를 그리던 아파트 가격의 폭등세는 중산층으로의 진입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기능했다. 그로 인한 피해는 1955년 이후 출생해 이제 막 내 집 마련을 준비하고 있던 베이비 붐 세대의 몫이었다. (p.94)


- 콘크리트 유토피아 (박해천) 본문 中 - 







 자, 여기. 경기 북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음모론이 있다. - 휴전선 근방에 왜 하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을까? 그건 바로 남북전쟁시 북침에 대비한 수도 방위 방패막이야! - 이 음모론에서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에 건설된 아파트 단지의 존재는 팩트요, 도시 계획의 숨은 군사 전략은 픽션이다. 


 하지만 그 속에 내재된 두려움과 동시에 발생한 유머는 시대 정신이다. 안타깝게도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한민국 아파트 공화국의 가장 큰 넌센스 퀴즈는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인지 하거나 인지해볼 엄두도 못냈던 수많은 아파트의 시대적 의제를 이끌어내고 긁어 주며 논의 한다. 


 아파트가 읽어주는 사회는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콘텐츠들이 서로 가까이 혹은 멀리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예를들면, 아파트의 공간 구조가, 텔레비전 드라마라는 문화콘텐츠를 소비하는 새로운 방식을 낳았다고 보는 일견을 살펴보자. 텔레비전 드라마의 수많은 장면들이 쌍방 클로즈업을 반복적으로 비추며 대화로 70%의 이야기의 비밀과 복선을 개진 하는 이유의 한 켠에는 아파트가 자리 한다는 논리다. 


 아파트에서는 기존의 주택에서 마루 밖에 독립적으로 위치하던 부엌이 거실과 붙어 있다. 설거지하며 요리를 하는 주부는 거실의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일일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주부를 배려하는 아파트 거실 구조의 매카니즘은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끌어 내고 주부에게 멀티태스킹의 묘미를 학습 시킨다. 


 결국 드라마를 적절하게 시청하며 거실에서 생활을 영위하는 주부의 생활 경험치가 확장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은 물론 드라마의 매카니즘과도 연계될 수 있다. 텔레비전 연속극은 주로 가정에 머물러 있는 주부들을 공략해야 하는 형편이고, 매일 방영하다보니 아주 신속하게 제작되어야 한다. 수많은 부연설명을 위해, 찻집에서 벌이는 두 여자의 날서린 한판승 한 장면이면 충분할 것을, 수려한 앵글 전환으로 수고를 늘릴 필요는 없다. 


 한때 설거지 하는 동안에도 주인공이 복수를 위해 어떤 모략을 펼치는지 다 외우고 있는 어머니를 보며 그녀의 뒤통수에 경외감을 표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두고 공간 구조학적이고 매체 특수성 반영적인 고찰을 시도한 것은 이 책이 나보다 먼저가 아닐까, 음? 하고 펼쳐 들어 오! 하고 읽게 되는 책이다.



콘크리트로 보는 사회학, 우리 시대의 성찰


  이처럼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주는 재미는 다채롭고 또 깊이 있다. 시대 문물을 통해서, 개인의, 가계의, 사회의 유토피아를 꿈꿨던 사람들의 욕망과 소비의 발현이 어떤 주소를 거쳐왔는지 살펴 보는 일은 즐겁다. 이는 작가의 박학다식함과 다방면에 걸친 사료 수집 능력으로 견고하게 도움 받는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하기 위해 김영하와 유하를 오가는 문학적 감수성과 배경 지식은, 작가가 건축 디자인 분야의  전문가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에 자기의 전문 분야로 시대를 읽어 내기 위한 지식과 통찰력을 가진 지식인에 대한 경외감 까지 느껴지게 한다.



 그렇다면 아파트로 읽는 현 시대는 어떤 사회학적 콘텐츠들이 유기적인 모습으로 존재하며 동시대 과제를 반영하고 있을까? 부동산 가격은 치솟고, 직장 5년차 봉급 모아서는 서울 근교에 집 한채도 사지 못하는 형편이니 집 사서 장가 가고싶은 예비 신랑들의 초혼 연령대는 자꾸만 높아 진다. 점진적으로 집을 마련하지 못하고 결혼을 꿈꿔야 하는 남성의 상대적인 기존 권위는 낮아진다. 이는 건강한 남녀평등의 정착이 아니라 건전한 논의를 생략한 기형적인 젠더 균형의 맹점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한편 높은 집 값은 장성한 성인 자녀가 부모의 경제적 원조를 받아야 하는 순간이 잦아졌다는 것을 동시에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개인의 부모로부터의 독립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어렵다.


 집값, 양육비, 교육비, 겨우 겨우 모으고 나면 노후 대책할 시간도 없이, 다시 자녀 아파트 값. 이렇게 평생 하는 일이라고는 예정 되어 있는 소비를 위해 빚지고 돈 버는 일 뿐인 시대. 정해진 인생 주기의 소비 패턴은 개인의 만족감이 돈 버는 데서만 급급하도록 만들었으니 직장 생활 틈틈이 어렵게 확보한 여가 시간에도 빠르고 쉽게 재미를 주는 것은 소비이고 소유다. 놀이 문화의 상실. 자기 표현의 소외. 속도 숭배와 물질 만능 주의! 유토피아는 콘크리트 처럼 딱딱하게 굳어간다. 


 아파트라는 키워드로 살펴 본 사회의 어느 단면은, 그저 일면으로 그치지 않는다. 때문에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짚어주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흥미롭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 사회를 읽어준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가 반드시 '아파트'로만 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오늘의 팩트는 무엇이고 픽션은 무엇이며 시대 정신은 무엇인가? 오늘도 우리는 농담을 한다. 당신의 그것이 아파트에 관한 것은 아닐지라도. 

 


* 추천하기 전에


 일단 책을 읽게 되면 작가의 박식함에 놀라고, 그 박식함이 새어 나갈 틈 없는 그의 문장력에 놀란다. 덕분에 주관적인 시대 기호 읽기가 거부감 들지 않을 만큼 공신력있게 느껴진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아파트와 대한민국 사회학이 '픽션' 이라는 재미있는 구성으로 살아나 여가 시간에 신선한 사회 참여를 독려할테니, 적지 않은 책의 두께에 미리 겁 먹지 말았으면.


   forested-islan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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