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 - 전2권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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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레슨 인 케미스트리라는 제목만 보면, 주인공이 화학 강의라도 하는 내용일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아주 틀린 예측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주인공 엘리자베스 조트는 넓은 의미에서 화학 공부에 해당되는 일을 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좁은 의미에서 레슨이라고 할 만한 영역에서는 타의로 쫓겨나지만, 이내 전혀 새로운 영역에서 화학 주제의 레슨이라는 분야를 개척하는 데 이른다.


1960년대라는 배경은 좀 생뚱맞아 보일지 모른다. 작중 스토리에서, 1960년대에여만 물리적이나 기술적으로 고증에 들어맞을 요소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꼽자면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TV 방송에 출연하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TV가 보급된 이후여야 한다는 점이나, 휴대전화가 있다면 성립되지 않을 스토리 전개가 많으니 휴대전화가 보편화된 이전 시대여야 한다는 점 정도? 하지만 그 정도가 고작이고, 하지만 그 외에는 배경이 1960년대이건, 혹은 1980년대쯤이나 그 이후이건 딱히 상관 없어 보일 것 같다. 물리적, 기술적 관점에서는 말이다.


1960년대라는 배경을 굳이 작가가 선택한 지점을 이해하고 분석하게 되면, 그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작중 배경국인 미국에서는 아이비리그 등 여러 명문대학교가 오랫동안 남자만 입학할 수 있다가 1960년 즈음부터 여성도 입학할 수 있게 바뀌었는데, 엘리자베스 조트가 작품 초반 활동하는 곳은 바로 그런 곳이다. 연구소, 특히 이른바 여성스러운 학문과는 거리가 멀다는 인식이 있는 순수과학 연구 쪽의 화학 분야. 그 곳에서 사실상 유일한 여성.


작중에서 엘리자베스 조트는 아인슈타인의 첫번째 부인인 밀레바를 언급하는데, 아인슈타인과 캠퍼스 커플이자 모교인 취리히 공과대학에 다니던 시절 유일한 여학생이었던 밀레바의 처지가 겹치는 부분이 많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밀레바는 아인슈타인과 결혼하게 된 후 가정주부 노릇에만 머무르게 되었고, 훗날 아인슈타인과 이혼한 뒤에도 옛 공과대학 경력은 전혀 살리지 못한 채 피아노 교사 같은 직업만 맡을 수 있는 정도였는데, 엘리자베스는 그런 길을 굳게 거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1960년대에서 그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엘리자베스는 전도유망하고 유능한 연구원과 사랑에 빠졌지만, 결혼하면 남편의 이름에 가려지고 자신의 연구가 남편의 이름에 귀속되는 것처럼 여겨질 거라면서 청혼을 받았는데도 거절했고, 그것으로 완전히 남남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연인의 아이를 가지고 연인이 죽었어도, 연구하던 노트에 손을 댈 자격조차 없는 남남 취급을 받으면서. 그리고 타의로 아예 쫓겨나게 되고 만다.


엘리자베스의 화학 경력은 공식적으로는 거기에서 끊겼다. 공식적으로는 말이다. 연구소에서는 엘리자베스의 도움을 받아야만 진행할 수 있는 연구가 여럿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연구소 측의 해결방법은, 엘리자베스를 다시 불러오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잠깐씩 일을 맡긴 후 매절처럼 돈을 좀 던져주고 끝내는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화학 연구 자체를 그 무엇보다 큰 의미가 있다고 여긴 게, 연구소 측에서는 궁극적으로 다행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이 소설의 결말까지 감안하면 모호할 지점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엘리자베스는 바로 그 때문에 그런 일을 겪고도 스스로 불행하게 여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새롭게 일어나는 것까지 포함해서. 엘리자베스는 그 모든 일을 겪고도 꿋꿋했다. 꿋꿋하게 화학 연구를 계속하는 것도 포함해서.


엘리자베스는 소중한 딸이 학교에서 겪은 해프닝을 계기로, 방송 코너 하나를 맡게 된다. 그리고 방송국에서는 대놓고 애정으로 요리하는 주부를 연출하며, 적당한 요리를 만들라는 청사진을 제시한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그 상황에서, 화학자로서의 면모를 한껏 선보인다. 요리의 재료, 요리가 만들어지는 과정 등을 화학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해 이야기하는 방송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과감하다 못해 터무니없게 느껴질 정도의 시도. 다행히 새롭고 독특하고 개성적인 발상 정도로 받아들여져, 프로그램의 인기는 높아진다. 그리고 여기에서, 엘리자베스를 은연중에 쭉 제한했던 시스템 요소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방송 책임자 측에서 이른바 가정주부 스테레오타입에 충실한 모습을 연출해야 인기를 끌 테니 그렇게 연출하라고 했으면서, 화학 관점 요리 기획으로 훨씬 더 인기를 끌어도 오히려 처음 기획을 계속 밀어붙이는 것이다. 마치 거기에서 벗어나는 건 용납할 수 없고, 벗어나서 더 성공하는 건 더욱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엘리자베스는 이때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굽히지 않고 꿋꿋하게 맞선다. 꼿꼿하게 맞설수록 상대가 오히려 더 위협하는 한이 있어도 말이다. 그리고 엘리자베스의 진정성 있는 노력이 끝내 보답받으면서, 그 동안 부당한 대우를 받아온 것도 모두 밝혀지는 후반부와 결말은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에게 선물 같은 이야기였다.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호감으로 조금씩 인연을 쌓았던 것이 후반부에서 엘리자베스가 도움을 받거나 뜻밖의 사실이 밝혀지는 전개로 이어지는 대목은, 선량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마음씨 넓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더욱 좋았다. 그리고 그 구성이 촘촘하면서도 정교해서, 새로운 인연과 상호 호감과 함께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성이라서 엘리자베스의 이야기에 더욱 공감하고 이해하며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는 눈앞에 그려질 듯이 생생하고, 엘리자베스라는 인물과 그 주변의 상황 등도 입체적이고 생생한 모습을 보여 준다. 도식적인 구도는 꽤 단순한 편인데, 막상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게 딱히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그리고 남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게 아니라, 심리묘사가 섬세하고 상황 묘사도 인상적이어서 마치 엘리자베스의 심정이나 각오가 그대로 느껴지는 듯한 서술 역시 책에 더욱 몰입하도록 이끌고 있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는 1960년대같은 시대에 화학을 연구하고 싶어한 여성 엘리자베스의 이야기이자, 유능한데도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등 성공하며, 부당하게 빼앗겼던 업적을 나중에 비로소 당당하게 인정받게 되는 등 누릴 수 있었던 행복을 뒤늦게나마 누리면서 해피엔딩을 맞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엘리자베스가 추구하던 것을 모두 얻게 된 결말은, 엘리자베스에게 합당한 대가이자 독자를 위한 선물처럼 느껴지게 만다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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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덩, 공룡 수영장
이정아 지음, 김혜원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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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덩, 공룡 수영장은 청량함이 느껴지는 듯한 재미있고 활기찬 그림책입니다. 더운 날씨에 공룡 모양 수영장을 만들고 그 안에 물을 채워서, 여러 아이들이 재미있게 물놀이를 하면서 노는 모습을 보는 사람마저 행복해질 정도로 즐겁고 재미있는 분위기를 잘 살려서 묘사합니다. 청량한 여름 물놀이에 잘 어울리는 색감으로 그려낸 삽화 역시 작품 내용 및 분위기와 잘 어울려서 더욱 좋습니다. 조금씩 분위기가 고조되는 듯한 구성도, 아이들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 표현 등도 좋습니다.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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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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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속에서는 다양하고 인상적인 이야기가 역사와 문화 등의 영역에서 중요한 지점을 기점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물리학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기고, 인류의 문화와 문명 등을 바꾼 활약을 한 사람들의 시점에서, 그런 과학적 업적 등에 대한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다채롭고 생생하게 전개합니다.


현대 물리학에 대해 알고 있다면 친숙해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유명한 물리학자의 이름이 우선 줄줄이 나옵니다. 그리고 중요한 물리학 연구가 막 진행되고 성공하던 시점에서, 그 곳에 있었고 그 연구를 이끌었으며 방금 막 그 연구를 성공시킨 사람의 시점에서 여러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전체적으로 여러 단편을 옴니버스처럼 묶은 구성인데, 궁극적으로 물리학 세계를 다루는 만큼 은근히 서로 이어지는 느낌이 드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현대 물리학 연구나 연구자에 대해 알고 있다면 더욱 의미 있게 와닿고 이해하며 공감할 수 있을 내용이 많지만, 사전지식 없이도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쓰여져서 더욱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새로운 발견, 새로운 발명, 새로운 연구와 이론,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세상, 새로운 세계처럼 많이 바뀐 세계. 하지만 그건 과연 모든 면에서 진전이자, 예전보다 무조건 나아진 것이기만 했을까요? 오히려 악화된 부분이 있지는 않을까요? 그리고 그런 부분이 있다면, 어쩌면 일부러 어두운 면을 지우고 밝은 면만 강조하며 때로 과장하지는 않았을까요? 설사 연구자 개인은 몰랐거나, 알았어도 의도한 부분은 아니라고 해도?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그저 찬란한 과학 발전이자 연구로만 묘사되던 부분에서 이때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혹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부분을 짚어냅니다. 그것도 세밀하고 치밀하게 느껴질 정도로 속속들이, 과학자가 직접 독백을 기록한 자서전같은 기록이라고 해도 납득이 될 것 같을 정도로 공감할 수밖에 없을 치열하고 생생한 심리묘사와 함께.


이 책은 이런 테마를 다루는 책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과학을 재앙을 부르는 괴물처럼 마냥 부정적으로만 묘사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주요 물리학 업적이 얼마나 많은 발전과 개선을 이끌어냈는지, 대놓고 강조하는 부분이 더 많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양면적 면모를 지니고 있기에 물리학이 자칫 더욱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도 아울러 묘사합니다. 마치 그걸 직시하고 잠시도 잊지 않는 사람만이, 세계에 해악을 끼치는 쪽이 아니라 세계를 발전시키는 쪽으로 과학 연구를 이끌 수 있다는 듯이. 그런 면에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라는 제목은 세상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고 과학 연구에만 매달리게 될 때, 모두가 두려워하는 재앙이 도래할 가능성이 생겨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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