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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평점 :
우리가 쓴 것에 담긴 이야기들은 아주 흔하고 일상적인 스케일의 일들이 많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이야기들을 마침내 입에 담으며 말하게 된 것이 어떤 것이지, 느끼게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별 것 아니라고 외면당하고 무시당하고는 했지만, 엄연히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시대의 이야기를 이 책은 담담하게 담아내는 동시에, 정면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쓴 것에서는 여러 인물이 등장하며, 거의 챕터별로 중심인물이 바뀌는 전개를 보여준다. 하지만 묘하게도 산만하다거나 시점이 바뀐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도대체 왜 그런지 궁금해지고, 어느새 생각하게 될 지경이다. 그리고 그 대답은 어렵지 않게 찾게 된다. 이 책의 주요 인물들은 나이대가 다양하고 태어나고 성장기를 보내며 자란 시대도 제각각이지만, 넓게 보면 누구나 겪을 법한 일을 겪은 표상 같은 캐릭터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청년 캐릭터는 지금 시점에서 청년인 세대가 겪었을 법한 일을 겪고, 청년 세대가 공감할 만한 모습을 보이며, 노인 캐릭터는 지금 시점에서 노년인 세대가 지난 수십년 동안 나이대별로 겪었을 법한 일을 겪고 흔히 노인의 스테레오타입이라고 할 만한 면모를 보여주는 식이다. 등장인물들은 제각기 마음고생을 많이 하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은 과거와 개인사가 있는데, 그 개인 드라마를 따로 떼어내면 개인을 찾기 힘들 정도로 흔했던 사례들이 주로 나온다.
이 책에서는 세대별 간극이 절묘하게 표현된다. 우선, 태어난 시대와 성장 세대 등에 따라 사고관, 일명 상식처럼 여기는 내용 등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등장인물들이 자기 딴에는 진리처럼 여겨지는 이야기를 각자 하는데, 그게 대놓고 충돌하는 게 눈에 보일 때에는 이러다가 말싸움이라도 하게 되는 게 아닌지 조마조마해질 지경이다. 자기 세대에서는 당연한 상식처럼 여겨지던 일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세대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 등을 스포트라이트라고 비추듯이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서 그쳤다면, 이 책은 그저 다른 나잇대끼리는 말이 통하기 힘들다는 것이나, 그만큼 한국 사회가 수십 년 동안 격정적일 정도로 극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에서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쓴 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렇게 서로 다른 세대들도 서로 이해하며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공통점이 있으며 그 공통점을 찾는 것에서 공감대 형성 및 상호교류와 이해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준비물은 그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자세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이때까지 이 책의 주요인물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무시당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환경을 제공하는 셈이 된다.
이 책은 겉으로 볼 때에는 현상을 줄줄이 설명하고 나열하기만 한 것처럼 보일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조금만 더 깊이 읽어보면,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은 이유를 단번에 이해하게 된다.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뻔한 이야기, 하지만 이때까지 당연하다는 듯이 간과되어왔던 이야기.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알아차리고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 그런데 막상 그걸 하지 않고 결국에는 묻혔다는 것, 하지만 이제는 하겠다는 것, 그 수많은 이야기들이 마치 메시지처럼 들리는 듯하다.
이 책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언뜻 보면, 수많은 이야기가 중심축 없이 어지럽게 얽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중심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여러 등장인물들이 각자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나아가 그 모두가 주인공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군상극처럼 되면서 굵직한 스토리라인은 없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하지만 없는 것처럼 보일 뿐, 정말로 없는 건 아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서로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 그리고 독자가 그 인물들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 자체가 이 책의 주요 흐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