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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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키건의 소설인 푸른 들판을 걷나는 처음 몇 장을 펼쳤을 때에는, 소설을 읽는 것인지 일기나 수기를 읽는 것인지 순간적으로 헷갈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풍경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그 평범해 보이는 일상 풍경 아래에서 등장인물의 감정이 깊은 곳 어딘가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은 절묘하게 포착해내면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푸른 들판을 걷다의 첫 장면을 글이 아니라 이미지로 표현한다면, 마치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흔한 전원적인 일상 풍경 정도로만 보일지도 모릅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따지면 사람 한 명이 산책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인물을 묘사하는 키건의 필치 끝에서는, 그 인물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마치 끓어오르는 듯한 감정이 요동치기 직전이라는 것을, 그 일상적인 풍경 안에서 더없이 일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모습 안에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 인물은 누구이며, 그 끓어오르기 직전의 감정은 과연 어떤 것이며, 어떤 일이 그 인물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게 만들었으며, 그 감정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나갈까요? 그리고 푸른 들판을 걷다는 작품 전체는 그에 대한 이야기일까요?


푸른 들판을 걷다를 언뜻 보면, 사건의 직접적인 진행과 별로 관련 없어 보이는 일상적인 모습을 묘사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고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독하다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난 감정을 가지고, 거기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식사 시간에 식사하는 것이나 잠자는 시간에 잠자는 것, 건물 밖으로 나가서 다른 곳으로 갈 때 걷는 모습조차, 반복되는 일상과 무언가 달라진 모습을 그려내는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일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겉모습과 그런 인물의 드라마를 인상적이면서도 치밀하고 절묘하게 그려내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일상적인 스케일의 이야기는, 저 독특한 분위기에 안에서 흔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법한 공감되는 이야기로 그려집니다. 책을 덮는 순간, 깊은 여운이 밀려오는 결말과 함께 말입니다. 이른바 거시적인 시점에서는 항상 반복되던 일상이 또다시 반복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한 인물에게는 인생의 방향 자체가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야기에 대한 그 모든 것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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