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얼굴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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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호오로 따지면 부담스럽고 힘들어서 오히려 싫어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애써서 등산해서 나름대로 산 정상에 도달한 적이 있을 떄에도, 뿌듯함이 아니라 무의미하다는 허무함 같은 감정을 느끼는 감성이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개인적으로 등산을 기피하는 것을 넘어서,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도저히 이해를 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고독한 얼굴>이 등산을 소재로 하는 소설이라는 걸 알았다면, 어쩌면 전 이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등산이 소재라면 어차피 이해하지도 못하고, 재미도 느끼지 못할 거라고 단정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독한 얼굴>을 읽은 사람으로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등산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도, 책 속에 빠져들게 되고 몰입하게 되는 재미를 지닌 소설이라고 말입니다.


고독한 얼굴은 높은 산을 오르는 등산이라는 행동에 대해, 다양한 감정을 복잡미묘하면서도 생생하고 공감되게 묘사합니다. 등산이 대단하다는 식으로 묘사되는 대신, 주인공이 산에 오르는 것을 얼마나 어떻게 좋아하는지, 그 심정을 섬세하면서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그리고 그 심정 표현과 심리 묘사를 보다보면, 어느새 주인공이 등산을 좋아하는 그 감정선을 이해하게 될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토록 등산 애호가로서 산을 오르는 것을 좋아하는 심리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섬세하면서도 입체적인 묘사를 바탕으로 이 소설만의 재미와 이야기를 이끌어나갑니다.


이 소설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재미있을 법한 요소는 없다시피 합니다. 오히려 그런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 같다는 느낌마저 받을 정도입니다. 출판사에서 출판을 반려했다는 일화가 있는 게 이해되다 못해, 당연하게까지 느껴질 지경입니다. 주인공은 과묵하면서도 묵묵하고, 일반적인 의미에서 성실하기는 하지만 재미없다는 말을 들을 법한 성격입니다. 등장하는 다른 캐릭터들도 맛깔나는 입담이나 유머러스한 재치 등으로, 말 자체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내는 캐릭터는 없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다른 인물의 접점이나 교류 등도 겉으로는 무미건조하게 묘사됩니다. 다른 캐릭터와 대화하는 장면이 꽤 나오기는 하는데, 대화 분위기나 문체만 보면 비즈니스 대화라고 해도 믿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읽다 보면, 겉으로는 서로 할 말만 하는 것처럼만 보이는 무덤덤함 아래에,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상대를 이해하는 교감이 펼쳐지고 진행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부분을 포착한 순간, 이 작품의 재미와 깊이 등을 비로소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산이 있기에 오르는 사람, 산이 있기에 오르고 싶어하며 그것 자체를 더없이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느끼는 사람, 그리고 이른바 경제적 성취나 물질적 성공과는 거리가 있으며 성공하더라도 다시 내려오면 도루묵이 될 것만 같은 등산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으로서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이해되고 공감하게 되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신기하고 이례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동시에 이 소설이 그만큼 흡입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도 되겠지요.


어느새 고독한 얼굴의 이야기는 단순히 등산이라는 취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른바 돈 안 되고 경제성이 없는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서, 나아가 자신에게는 삶의 의미나 다름없기 때문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설사 성공하더라도, 이른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게 아닌 일. 무시당하지는 않을지언정, 그게 나름대로 인정받아서가 아니라 무신경함의 결과물이나 다름없는 상황. 그리고 그 상황에서, 고독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뚝심있게 밀고 나가며, 그것 자체에서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는 모습. 그것은 등산 이외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이 책이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이유이며, 나아가 이 소설이 등산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독하게 하려는 일을 꾸준히 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서 그 모습이 인상적인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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