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책 2 민음사 모던 클래식 6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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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헬렛은 말한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어떤 독자성이든 간에 그 무엇에도 영향받지 않은 유일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2장 16장의 오스만 제국의 왕자처럼. 그는 끊임없이 사물과 완벽히 유리됨으로해서 자기 자신으로서의 자신을 모색하려고 했지만, 결국 그가 남긴 것은 그의 복제인 노트였다. 늙은 서기가 밤낮으로 기록한 노트. 서기라는 거울을 통해 반영된 오스만 왕자의 상. 자기자신으로서의 자신을 위해 모두에게 고립된 왕자는 다른 누군가의 모방을 통해서만 의미를 찾는다.



2. 검은책은 결국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다. 인생만큼 경이로운 것은 없다. 유일한 위안인 글쓰기를 제외하고는. 평범한 변호사, 칼럼리스트인(작가에 가까운)갈립은 아내가 사라진 후 사촌형인 제랄을 모방하며 새로운 자신을 찾는다. 제랄을 모방하는 것은 제랄의 글쓰기를 모방하는 것이었다. 모방만이 자아를 모색하는 방법이고 자아를 찾는 유일한 길이다. 오로지 글쓰기만이. 끊임없이 누군가를 모방하는 글쓰기만이.



3. 갈립과 뤼야의 삶역시 휘순과 아속의 모방이었다. 매음굴에 있는 그 뛰어난 그림. 한장의 이스탄불 풍경과  그 반대편의 거울은 서로를 비추어가며 끊임없이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낸다. 거울은 그림을 반영할 뿐이지만, 그 반영은 새로운 의미의 생산이자 복제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거울은 (어린시절 양쪽으로 거울을 펼칠수 있는 화장대 앞에 앉은 뤼야의 모습처럼) 인생과 글쓰기가 누군가의 모방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모방된 것만이 오히려 더욱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4. 제랄은 아주 독자적인 작가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누군가를 모방한 산물이다. 그리고 제랄의 글을 읽는 독자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글쓰기를 창조해낸다. 그들이 포착한 칼럼의 의미는 거울처럼 같은 대상을 새롭게 비춘다.



5. 파묵의 소설 자체가 그렇다. 이 검은 책은 과거 이스탄불의 모방이다. 갈립과 뤼야는 휘순과 아속의 삶을, 제랄은 루미의 삶을 모방한다. 독자적인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스만 왕자가 실패하고 만 것처럼. 검은 책의 이야기는 이스탄불이라는 시공간안에서 창조된다. 삶의 위안이가 경이인 글쓰기는  현재의 이스탄불과 과거의 이스탄불에서 탄생한다. 그 모방과 변이.



6.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자신의 것을 가지지 못하고 자신으로 온전히 존재하지 못하면 왕국은 멸망한다. 고립된 왕국은(사람은, 혹은 왕자는) 멸망한다. 이 두 가지의 역설은 결국 삶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모방하는 것이며, 죽지 않기 위하여(혹은 생존하기 위하여) 자신의 것을 가지기 위하여 누군가를  계속해서 모방해야만하는 생존적 글쓰기를 보여준다.



7. 그렇다면 살인자는 갈립이 아니었을까.(유력한 용의자가 퇴역군인인것과는 별개로) 루미가 그 연인을 우물에 던져버린 후 연인을 찾아 온 세상을 다니고, 그로인한 글쓰기로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았다는 제랄의 칼럼은 갈립이 결국 살인자임을 암시하지 않을까. 갈립은 이미 모든 것을 모방했고, 글쓰기 방법을 찾았으니 글쓰기를 위해서, 갈립이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 해야할 마지막 과제는 제랄을 죽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8.끊임없는 반영이라니 보르헤스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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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병사들 - 평범했던 그들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죙케 나이첼.하랄트 벨처 지음, 김태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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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체 어떤 사람들이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거야? 여자를 강간하고, 어린아이를 죽이고, 전쟁 포로를 학대하고, 사체를 훼손하고,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웃을 고발하고,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불타는 로마를 구경하는 네로처럼 여유롭게 즐기고, 그러니까 대체 태어날 때부터 뭐가 어떻게 되면 그런 짓을 할 수 있느냐고? 와 같은 질문에 누구든 그럴 수 있다, 그런 상황에 처하기만 한다면, 나나 당신 역시 별 차이는 없을 테지, 라는 답이 돌아오게 된지는 한참 된 것 같다. 한나 아렌트가 그랬고, 스탠포드 대학교 감옥실험이 그랬고, 나치의 병사들과 같은 연구서들이 그랬다.


 

2. 서론의 관련 연구사 정리부터 각 쟁점들을 도청 기록에서 이끌어내는 본론 등, 책 자체에서 연구에 들인 품이 느껴진다. 폭력을 만드는 건 이데올로기가 아니고 역시 괴물을 만들어내는 건 이데올로기가 아니다,라는 주장 자체는 한나 아렌트나, 밀그램, 스텐퍼드 대학교 수감자 실험의 보론일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이 무척이나 치밀하고 흥미롭다. 이 책은 나치의 병사들이 인류사에 뚝 떨어진 불가해한 악의 응집체가 아니라 전쟁 노동자로서 그의 의미를 다했을 뿐인, 평범한 악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또한 전쟁은 그 극단적인 폭력을 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프레임일 뿐 우리의 역사는 항상 극단적인 폭력이 분출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한다. 


3. 폭력은 시동이 걸리면 끊임없이 이유를 찾으며 그 폭력에 합리성과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전쟁의 폭력과 전쟁 외부의 폭력이라는 차이점만 있을 뿐, 그 메커니즘은 같다. 복수일 수도 있고, 악에 대한 응징일 수도 있다. 폭력은 일어난 일에 대한 합당한 응분으로 작용하는데, 폭력의 에스컬레이터 위에서는  그 일은 일어날법한 일이었고, 일어나 마땅한 일.


4. 이데올로기는 전시 개인이 저지르는 폭력에서 미미한 자리를 차지한다. 폭력을 이끌어내는 것은 전쟁 그 자체이고, 전쟁, 군대라는 시스템이자 프레임의 결과이다. 


5.프레임 바깥에 대한 무지. 제 아무리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도 프레임 안에서는 무지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나, 프레임 안에 갇히면 프레임 외부에 대해 무지해지거나 신경도 쓰지 않게 된다는 이야긴데, 이로서 몇 가지 지난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다. 예를들어 디워 논쟁때 김모 교수님의 "장르영화치고 나쁘지 않았다. 장르영화가 다 그렇지. 디워의 이무기는 여성성으로의 회귀다, 디워에서 아리랑의 선택은 지워진 어머니를 복원하는 과정이다." 등의 발언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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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뽑기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셜리 잭슨 지음, 김시현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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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이스 캐롤 오츠가 좋아한다는 이야기에 구입했다. 사실 요즘 구매하는 책마다 번역과 오탈자에 고생을 했던 터라, 번역서를 구매하기가 망설여졌지만 번역자인 김시현씨가 번역한 매카시 국경 삼부작, 핏빛 자오선 들을 괜찮게 읽어서 일단 구매. 살모사의 피를 찍어 빗자루 끝으로 쓴, 20세기 영문학의 마녀라는 수식에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2. 거의 마지막에 실린 제비뽑기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읽을 때는 심드렁하니 '그 땐 엄청 좋았나본데, 글쎄 작금에 와서는 그렇게까지 엄청나게 의미가 있나, 더욱 과격한 알레고리를 사용하는 소설(예를 들어 공개 증오대회라든가, 비슷한 시대 소설이지만 보르헤스의 바빌로니아의 복권) 들도 많잖아?' 싶었지만 읽고 몇 시간쯤 손끝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불편했다. 그러나 제비 뽑기의 불편함은 다른 단편들에 비하면 불편한 것도 아니었다는, 무척이나 더욱 불편한 진실.

 

3. 동생을 잔인하게 죽이는 방법을 속삭이는 푸른 옷의 노인이 나오는 마녀나, 닭을 잡아 죽인 개를잔인하게 죽이는 법을 알려주는 마을 사람들이나, 그 말을 듣고 천진난만하게 개와 놀아주면서 살해법을 구구절절하니 읊어대는 아이들, 젊은 시절 가난함으로 책을 읽지 못했다는 열등감에 찌든 부자는 친절하게 책을 소개해준 대학생 청년이 가장 원하던 책을 가로채가고, 흑인에게 호의를 베풀었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소외되는 과부,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열등감에 시달리며 그 분노를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푸는 여성 등등 단편 단편 모두 너도 속마음은 이 사람들하고 별 차이 없잖아, 이렇게 남루한 정신상태를 지니고 있잖아, 라고 들이대는 것 같아서 무척이나 독서가 우울했다. 면전에 너도 똑같아, 라고 외치는 책은 힘들다.

 

4.  맨스필드 단편의 지옥버전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맨스필드가 연옥에서 일상의 아이러니와 불편함을 툭툭 드러내주는 작가라면 셜리잭슨은 지옥에 앉아서 일상의 사악함을 펼쳐보이는 감각.

 

5 읽은 직후보다 독서 후 일상을 영위할 때 문득문득 생각나는 소설이다.

 

6. 우리들은 언제나 성에 살았다를 읽을 차례인데, 이번에 구입한 책들이 다는 아니라도 상당수  지옥불에서 활활 불타는 책이라 쉽게 읽을 용기가 안난다. 

 

 

.........이번에 구입한 책, "별도 없는 한밤에"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부서진 사월." "돌의 연대기." "우리들은 언제나 성에 살았다." "선셋 리미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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