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로시카 다이어리
메리 발렌티스 외 지음, 어윤금 옮김 / 마디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나는 '자기계발서'라는 장르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단 한 권도! 부자되기를 비롯한 경제 관련서는 물론이고, 착한 영혼 만들기 비스무레한 에세이류도 집어든 적이 없다. (영혼 어쩌고 들어가는 '착한 책 -_-' 들을 보면 몸에 닭살이 돋을 것 같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요리책이나 사진 강좌와 같은 실용서가 아닌 바에야, 인격과 자아를 키워줄 '고정된 레서피'가 어디 있겠는가, 라는 생각. 그리고 자아나 인격에 있어 결국 문제의 시작과 끝은 자신에게 있고, 그 깨달음은 억만금을 준대도 타인이 대신 감당해줄 몫이 아니라는 믿음이 너무 견고했던 것 같기도 하다.

올해 유난히 많이 쏟아져나왔다는 여성 계발서. 진지함보다는 가벼운 유행이 많은 듯해 역시 탐탁치 않았던 것도 사실. (읽지도 않은 채 이러저러할 것이라는 편견, 버려야 함다. ;;)

책 읽기를 방해하는 이런저런 편견들에도 이 책 마트로시카 다이어리가 강하게 끌렸던 것은 다름아닌, 표지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청승맞아 보이고 어찌 보면 요염해 보이는 마트로시카 인형의 얼굴이, 뭔가를 간절히 말하고 싶어하는 듯 보였다. 사실 '용기 있는 여자만이 운명을-' 어쩌고 하는 카피는 없는 게 더 좋았을 거란 불만도 살짝 섞어보지만.

다 읽고 난 뒤의 감상-괜찮은 책이었다. 글을 쓴 이들이 미국인이고, 내용에 담긴 사례, 경험들이 아무래도 '서양' 것이라는 한계는 있겠지만 그래서 자아나 여성의 사회성에 대한 인식이 우리 현실과는 차이가 있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던 것. 상상 외로 '그래, 맞아.'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았고, 인격을 키워줄 수 있는 레서피는 없다, 고 앞서 얘기했지만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는 게 이 책을 읽은 성과라면 성과겠지.

서투른 요리사를 순식간에 '맛의 달인'으로 만들어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어내게 할 수는 있다는 것. 요리책의 효용이란 재료를 다듬고, 양념을 만들고, 굽거나 찌거나 볶는 등 재료에 맞는 조리법을 통해 요리를 차근차근 완성해나가는 '성과'를 주지 않던가. 그렇게 따라 하다 보면 어느새 요리를 조금 알게 되는 나!

어쩌면 이 책 마트로시카 다이어리는 여성들이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재료들을 잘 빚어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만들어내도록 이끌어주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열 겹의 마트로시카 인형의 껍데기를 하나씩 벗어던지면서 여성들은 그 동안 자기를 구속해온 '어쩔 수 없음'이라는 편견, 사회가 은연중에(또는 대놓고) 강요해온 삶의 방식들, 자기가 미처 몰랐거나 발견하지 못한 채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자질들을 버리고 모아 '여성의 자아발견'이라는 요리를 만들어내게 된다.(그것이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물론 사람에 따라 요리의 재료도 조리방법도 맛도 다 다르겠지.

서두르지 말고, 첫 단계에서 좌절하거나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말고, 자아찾기라는 여정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디는 것, 그리하여 남의 시선이 아니라 순전히 나의 시선, 나의 판단, 나의 가치관으로 자신과 세상의 합일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아마도 이 책 마트로시카 다이어리가 전해주고 싶은 가장 중요한 메시지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슈퍼우먼 컴플렉스와 착한여자 컴플렉스, 외모 지상주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힘든 여성들에게 자그마한 삶의 휴식 내지는 부드러운 위로가 될 수 있는 책이다. 또 하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덕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