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에 관한 큰 책 리처드 칼슨 유작 3부작 2
리처드 칼슨 지음, 최재경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나는 여태껏 완벽주의자이면서 평화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첫 문장부터 가슴을 쿠궁-하고 울리게 하더군요. 성격 탓으로 돌리면서 얼마나 많은 강박 속에서 살아왔는지. 그것이 나 스스로에 대한 강박으로만 끝나면 좋으련만, 소갈머리가 결코 너그럽지가 못해서 다른 사람들의 사소한 잘잘못은 또 얼마나 씹어대고 한심해하며 살았는지...ㅜㅜ '타인의 무능에 관대해져라'라는 꼭지 제목을 보는 순간 가슴 한 구석을 침으로 콕콕 찌르는 듯 아프더군요. 에궁...나라는 인간 하고는. 책에 나온 것처럼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쉬운 일을 못하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마음껏 경멸했던 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럽고 민망하더군요. 어떤 면에서는 내가 바로 그 '무능'의 당사자가 되어, 남들의 경멸어린 시선을 마음껏 받았을 거라 생각하니 그것 또한 뒤통수가 서늘해지고.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주인공 잭 니콜슨은 평생 인도의 선을 밟지 않고 살아갑니다. 지독스러운 강박이죠. 괴퍅함을 미덕으로 삼고 자신이 세운 선을 죽어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세상에서 지가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면서 남들은 개무시하고 허구헌날 붙어 싸우고 티격거리고 삽니다. 어디 영화 속 잭 니콜슨 뿐이겠어요. 영화 보면서 사람들은 마치 법정에서 리 판정이라도 내리듯이 '저 인간 저거 저거 완전 또라이 아냐?'라고 웃고는, 속으로 안심하겠지요. 나는 저러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천만에 말씀, 만만의 콩떡. [사소한 것에 관한 큰 책]은 정말 몽둥이 같은 책이었어요. 뼈를 부러뜨리는 폭력의 몽둥이가 아니라, 조곤조곤 내 몸의 근육들을 눌러주며 강박으로 뭉친 딱딱한 근육을 풀어주는 몽둥이. 몽둥이가 아니라 태국에서 만난 전통안마 아주머니의 세고도 부드러운 손길 같았달까. ><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가진 '완벽주의(강박) 또는 사소한 것에 대한 전전긍긍'을 생각하게 되더군요. 뭐가 있더라? 하며 굳이 머리를 싸매며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늘 신경 쓰고 늘 매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마치 지금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큰일 날 중대사인양) 기침처럼 절로 튀어나오더군요. 몇 가지 들어보자면, 젖은 수건은 절대 나무의자에 걸어놓지 않고(나무가 썩을까봐 ;; 이것 때문에 젖은 수건을 달력이든 의자든 아무 데나 던져 놓는 옛날 애인 때문에 무지하게 싸워댔지요. ㅜㅜ) 책장에 책과 씨디를 꽂을 때는 반드시 내가 세운 규칙(가령 문학 작품은 문학작품 칸에만 꽂고 씨디는 꼭 가수의 이름 ㄱㄴㄷ순대로, 외국 곡일 경우에는 알파벳 ABC 순서대로)대로여야지, 안 그러면 하늘이 무너지는 듯 가슴이 벌렁거리고 화가 나는 것이며, 요리를 할 때는 절대 다른 레시피는 참조하지 않고 오직 내가 알고 있는 대로만 하고(모험을 두려워하기보다, 내 입맛이 최고로 정밀하다는 일종의 오만에서 나오는 강박일지도...) 등등등.

책은 다만 강박에서 벗어나는 법, 여유 있게 사는 법들만을 기능적으로, 또는 처세술처럼(책을 읽기 전에 사실 처세나 성공에 대한 책이 아닐까 하고 슬그머니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거든요) 매뉴얼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 책은 오히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꼭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인간에 대한 예의,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보편적인 진실과 진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입니다. 당신은 혹시 '안내원'들을 막 대하는 못돼쳐먹은 인간은 아닌지, 가족이건 연인이건 남의 말은 죽어라 안 듣고 꽉 막힌 귀와 가슴으로 대하는 인간은 아닌지, 화난 채로 잠자리에 들어 꿈자리까지 분노로 뒤숭숭하게 만드는 인간은 아닌지, 모였다 하면 남의 험담하느라 침튀기는 치졸한 인간은 아닌지...를 묻고 있어요. 조곤조곤.

말할 것도 없이 나는 그런 인간이더군요. 책을 읽으면서 '그래, 어쩔 수 없이 이건 내 모습이야. 하지만...자랑할 건 못 되겠군. 고치지 않으면 안 되겠어.'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아주 구제불능의 인간은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위안이 됐달까요. 여튼, 이 책은 심리테스트도 아니고 처세에 대한 간편한 매뉴얼도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고, 삶에 대한 새로운 자세를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책입니다. 읽어들 보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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