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혼란스러운 - 사랑을 믿는 이들을 위한 위험한 철학책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박규호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안 읽어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요, 류의 책이 각 분야마다 한 권씩 있다면 단연코 이 분야-여성과 남성을 다루는-의 필독서는 [화성 남자 금성 여자]일 것이다. 남자의 뇌/여자의 뇌, 여자의 말/남자의 논리, 여자의 감수성/남자의 이성 등등...중요한 사실은 화성 아니라 화성 할애비, 금성 할머니를 읽는다 해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성과 남성의 본질을 알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보편적인 특징들을 뽑아낼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남자에 대해 '안다는' 것과, 그 남자를 '사랑'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사랑은 어쩌면 이런 짓이 아닐까. 소심하고 쪼잔하고 남의 눈만 중시하고 되도 않게 자존심만 세서 전전긍긍하는 A형 남자와는 절대로 사귈 수 없고, 말도 섞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던 어떤 여자가 '이유도 뭣도 모르는 채 트리플 에이일 것이라 짐작되는 극소심남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사건 같은 것. 그 여자에게 이것은 재앙과도 같은 사건이지만, 지극한 행복과 기쁨 원천이기도 하다. 내 모든 논리와 이성과 합리와 의지로 안 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기기묘묘한 사건이 아닐까.

[사랑, 그 혼란스러운]은 한 철학자의 그런 물음에서 출발한다. '사랑은 대체 무엇일까?', '사랑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과연 인류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사랑은 있었을까?' 등등. 누구나 다 하면서도 그것의 본질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걔는 원래 그렇게 모호하고 애매하고 불확실한 거야'라고 치부해버리는 주제인 '사랑'에 대해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매달렸다. 밝혀내기 위해. 이 사랑의 대상은 정확히 '남녀(남-남, 여-여도 포함)'간, 그러니까 인간들의 '성적인 사랑'이다. 어떻게 해서 생판 모르던 사람들이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성적으로 끌리게 되는지, 섹스를 통해서 쾌락뿐 아니라 감정의 완성까지 이루게 되는지에 대해 진화론부터 훑어가며 과학, 사회학, 철학, 인문학 등 여러 학문에 걸쳐 집요한 탐구를 해나간다.

이 책에 나오는 과학자, 철학자, 심리학자의 이름을 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 다윈은 물론이고 데스몬드 모리스,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제이 굴드, 리처드 르원틴 등 수많은 진화생물학자들, 지그문트 프로이드를 비롯한 심리학의 대가들 에리히 프롬, 미셸 푸코, 장 폴 사르트르, 등 사랑과 성에 대해 탐구했던 철학자들, 사랑과 섹스에 대한 논리를 설파한 다양한 사회학자들과 저널리스트들. 독서량과 공부량이 엄청나다는 생각과 함께, 이 책을 위해 지은이가 얼마나 오랫동안 공부하고 매달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최초 인류를 살피는 진화의 측면에서부터 인간 주위에 있는 다른 동물군들의 성애를 파악하고 시대별로 나타난 사랑과 섹스의 개념을 살피는 한편 현대 사회의 달라진 양상들-핵가족, 일부일처의 회의론, 페미니즘과 여러 사상 조류로 인한 성역할과 가치관의 변화 등등-도 다루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인류가 최초로 기원한 홍적세부터 2000년대까지, '사랑과 섹스를 탐구하는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는 느낌이다. 물론, 중간 중간 등장하는 수많은 이름과 개념과 이론들 덕에 멀미가 날 것 같기도 하지만. ^^

흥미로운 책이었다. 혈액형과 별자리에 의존해 사랑을 파악해버리는 세태에 염증이 난 사람이라면, 인간의 사랑과 섹스가 어떤 역사와 의미를 갖고 있는지 궁금한 이라면, 나뿐 아니라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관심 갖고 있구나, 라고 안심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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