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꿀벌의 세계 - 초개체 생태학
위르겐 타우츠 지음, 헬가 R. 하일만 사진, 최재천 감수, 유영미 옮김 / 이치사이언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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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문득 집안을 둘러보았습니다. 부엌 찬장에는 꿀이 있고 침실 화장대 위에는 자그마한 프로폴리스 농축액 병이 놓여있네요. 피곤해서 입가에 염증이 생기거나 피부에 뾰루지가 날 때 상비약으로 씁니다. 뿐인가요, 목욕탕 세면대 위에는 프로폴리스 성분이 들어있는 치약과 비누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선물 받은 수삼을 잘게 썰어 꿀에 재어놓았습니다. 몸이 허하다 싶을 때, 뭔가 쌉쌀하면서도 달콤한 것이 먹고 싶을 때 간식처럼 퍼먹고는 하지요. 생각해보니 먹는 것, 위생과 미용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꿀에서 얻고 있더군요. 정확히는 벌을 키우는 사람들의 노동에서, 더 자세히는 꽃꿀을 모으느라 애쓰는 꿀벌들의 노동에서 얻는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꿀을 무척 좋아합니다. 지구상 꿀을 가장 좋아하는 생물인 곰 '푸'에는 결코 미치지 못하겠지만, 꿀을 굉장히 좋아해요. 술 진탕 마시고 난 다음 날 뜨끈하게 끓인 북어국 한 그릇 밥 말아먹고 들이켜는 꿀물 한 사발처럼 시원한 것이 또 있을까요. 여름이면 날마다 토마토를 갈아 마시는데요, 거기에 꿀을 한 숟가락 정도 넣어 같이 갈면 그야말로 최고의 맛이 탄생합니다. 신선하고 달콤한 나만의 토마토주스랄까요. 이렇게 꿀을 즐기기만 해왔지, 그 꿀을 나에게 전해주는 일꾼들인 꿀벌의 생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습니다. 사실 그렇잖아요. 도시민들의 비극 가운데 하나는, 내가 먹고 있는 것이 어디서 만들어져서 어떻게 내 밥상까지 전달되는지를 잘 모르는 것 아닐까요.

[경이로운 꿀벌의 세계]는 그야말로 꿀벌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가 꿀벌에 대해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이라는 제목을 덧붙여도 될 것 같아요. 두세 가지 것들이 아니라 수백 가지 것들이긴 하지만요. 꿀벌과 사랑에 빠진 나머지 전 생애를 꿀벌 연구에 바친 위르겐 타우츠는 아마도 '꿀벌주의자'가 아닐까 싶네요. 이 책에는 꿀벌을 '일개 곤충' 운운하며 무시하는 사람들이 뜨끔할 내용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꿀벌은 곤충이되 단순하고 멍청한 곤충이 아니요, 포유동물과 같은 수준의 두뇌와 행동을 보이는 '초개체 생물'입니다. 초개체란 말 그대로, 하나하나의 개체가 모여 유기적으로 거대한 집단을 이루며 '전체가 마치 하나의 개체처럼 행동하는' 생물을 말합니다.(저도 이 책 덕에 처음 알게 되었네요.) 지구상에 초개체 생태 동물은 몇 없습니다. 꿀벌, 개미 정도이지요.

하나로 떼놓고 보면 지극히 작고, 약하고, 하찮아 보이는 꿀벌은 거대한 꿀벌 군락으로 살아갑니다. 그야말로 커다란 집단인 것이지요. 여왕벌-일벌-수벌들은 각자 자신의 역할을 해나가며 벌집이라는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갑니다. 꿀벌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라 지식으로 전달되는 고도 진화의 산물이지요. 여왕벌의 혼인비행에서부터 '필요한 순간에' 벌들을 부화시켜 새로운 구성원을 채워나가는 일, 분봉 시기를 정확히 알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일, 사회를 유지하고 키워가는 일 모두가 고도로 발달된 '꿀벌 두뇌'의 '짓'입니다. 꿀벌은 우왕좌왕하지 않고 우발적으로 행동하지 않지요. 꽃을 찾아 날아가고, 그 꽃의 위치를 동료에게 전달하고, 꽃꿀을 모아 집에 저장해두는 일련의 행동들이 철저히 계산되어 있습니다.  

지은이는 꿀벌이 사라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합니다. 어떤 생물인들 안그렇겠습니까만, 지구상 모든 꽃들이 사랑하는 '평화로운 씨앗 전달자'로서 꿀벌의 위치는 이 생태계에서 가히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자연 생태계에도 그렇고 인간에게도 그렇고, 그야말로 '백익무해'한 존재인 꿀벌.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꿀만 핥고 있을 때 꿀벌들은 묵묵히 자신들의 생(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짧은 생이지만, 그들에게는 아마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시간일)을 살고 있었습니다. 지구를 더욱 아름답고 평화롭게 만들어주면서 말이지요. 앞으로 산이나 들로 놀러가서 혹시 꿀벌을 만난다면, 다른 눈으로 바라봐주세요. 아, 그리고 그들을 쫓으려고 팔을 휘젓거나 큰 소리를 지르지는 마세요. 그러다 물리는 수가 있어요. 꿀벌은 진동과 바람, 움직임에 반응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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