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언론인의 고백 - 위선과 경계 흐리기, 특종이 난무하는 시대에 저널리스트로 살아간다는 것
톰 플레이트 지음, 김혜영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Confessions of an American Media Man :

마지막 책장을 덮고 표지에 쓰인 원제를 보니 책을 읽는 내내 고개가 갸웃거려졌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언론인의 고백'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책의 지은이는 언론인이 아니었던 것! 언론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가 제일 먼저 떠올리는 영어 단어어는 저널리스트(journalist)다. 다른 말로는 리포터(reporter) 정도랄까. 그런데 media man은 대체 뭘까. 사전을 찾아보니 대중매체, 매체라는 뜻이란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매스미디어, 의 그 미디어 맞다. 여기서부터 사알짝 속은 기분이 든다.

[어느 언론인의 고백]이라는 책은 제목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사뭇 진지한 저널리즘을 상상하게 했으나,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는 게 맞겠다. 아무래도 내 머릿속에 든 언론인의 범주가 너무 좁은 탓일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언론인은 누구인가. 알리는 사람이다. 무엇을? 세상의 진실을. 전쟁터를 누비고, 기아의 참혹함을 전달하고, 폭력의 현상을 고발하는 것. 내가 알고 있는 언론인의 모습이다. 이 책에도 나오는 워싱턴포스트의 두 기자들-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해 미국의 정치 지형을 바꾼-, 1980년 광주에서 군홧발에 처참히 짓밟히는 민중의 모습을 담은 몇몇 외신 기자들, 삼성왕국의 추악한 뒷모습을 집요하게 쫓은 MBC 이상호 기자, 죽음의 현장을 넘나들며 분쟁지역을 취재하는 전문기자와 프리랜서들...내게 떠오르는 '언론인'의 모습이다.

톰 플레이트가 살아온 30년은, 분명 이들 기자들과는 다른 삶이다. 취재하고 캐내는 기자로서보다는, 일찌감치 '고위직'에 올라 편집하고 관리하는 일을 해왔다.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 엉뚱하고 재기발랄한 지은이는 미국의 주류 언론들을 여러 군데 거치면서 편집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착실히 경력을 쌓았다. (이쯤에서 '상업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미국 언론이 어디 언론이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애머스트와 프린스턴(책에는 학벌 이야이가 왜이리 많이 나오는지! 자신의 학벌을 왜이리 강조하는지! 이 아저씨, 조금 속물스럽다는 느낌도 받았다. 잘난 체와 있는 체도 어쩌면 미국인의 하나의 특성 아닐까...;;)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을 오가며 살아온 이 사람, 전형적인 주류 백인 남성이다.

그것은 곧, 그의 시각이 '미국'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 스스로가 인정하듯이 미국 언론은 자신들만의 시각에서 벗어나기 싫어하고, 또 그것이 옳다고 믿는다.(어리석은 미국 백성들이 기독교와 물질만능에 빠져 부시 같은 대통령을 뽑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듯이!) 톰 플레이트는, 일찌감치 미국 언론의 '미국적 사고에 치우친 시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하나의 방법으로 '아시아'에 눈을 돌렸다. 그리하여 자타가 인정하는, 미국 내 아시아통이 되었다는데. 불행히도 그의 칼럼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스스로가 자부하듯 '아주 오래 전부터 아시아에 관심 갖고, 아시아를 좋아하며, 아시아를 제대로 이해하려 노력해온' 몇 안 되는 미국 언론인인 그가 쓴 아시아의 칼럼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다.

꽤 두꺼운 책이지만, 글을 재미나게 잘 써서인지 술술 잘 읽히는 반면에, '내가 읽은 내용이 뭐였더라?' 하는 느낌도 든다. 서문에 밝혔듯 교훈이나 훈계를 늘어놓으려 하지 않아서일까. 그냥 자기가 살아온 삶. 병아리 언론인이었던 중고딩 시절부터 대학언론, 인턴 시절을 겪으며 칼럼니스트로서 세계 지도자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이런저런 언론사를 거치며 경험한 이야기들이 가볍게 펼쳐진다. 목숨 걸고 취재하지 않으니 인생의 큰 위기가 없고, 스스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모양인지라 깊은 반성이나 깨달음도 그닥 없다. 모르고 있던, 세계 언론의 중심이라는 미국 언론-언저리-의 모습을 대충 본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제목이 주는 기대에는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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