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의 중심에 너 홀로 서라 - 내 생에 꼭 한번 봐야 할 책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강형심 옮김 / 씽크뱅크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아, 이 당혹스러움이라니! 모르겠다. 무엇이 문제인가. 내가 문제인가 책이 문제인가. 새삼스레 난독증이 찾아왔을 리는 없을 텐데, 이리도 안 읽히다니! 어려워서가 아니라 너무 쉬워서 책이 안 읽힐 수도 있다는 귀한 경험이었다. 읽고 나서 화가 나다니, 정말 오랜만의 경험. 문제는 나와 이 책의 삐걱거리는 궁합에 있을 것이다. 다분히 '오바마에 대한 한국인들의 모호한 판타지'를 겨냥한 광고 문구에 화딱지가 난다. 출판사는 각성하시라. 아니 광고에는 죄가 없다.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성경과 이 책이 닮은 꼴이라는 사실을. 성경 다음으로 어쩌고 할 때부터 짐작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성경을 전혀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허구와 판타지로 점철된 '픽션'인 그 책을 절대진리인 것처럼 떠받드는 사람들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별로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러므로 광고 문구를 통해 진작, 알아봤어야 했다. 내게 성경이 세상에 널리고 널린, 감동 없는 하나의 텍스트이듯, 이 책도 그럴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에머슨이라는 커다란 이름에 기대를 걸었던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겠다. 그렇다. 첫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에머슨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엄청난 무게와 깊이에 비해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가벼운 울림이어서, 읽는 내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번역의 문제인가? 아니, 번역은 오히려 괜찮다. 애초 원고가 딱 이 수준이었던 게다. 몇 마디 문장으로 끝내도 될만한 내용들을, 중언부언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있다.
1장 나를 찾아서, 2장 나의 길, 3장 나의 사랑 세 부분이 장으로 구분되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장마다 크게 다른 내용도 아니고 앞에서 나오지 않은 커다란 발견이나 교훈을 주는 것도 아니다. 읽으면서 "그래서 뭐? 어쨌다고?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삐딱한 불평이 쏟아져나오다니. 부끄러울 정도로 불손한 책읽기였다. 차라리 류시화의 잠언집이 낫겠다. 이건 뭐, 감동도 없고 재미도 없고. 그냥 낡디 낡은 서부 개척 시대 미국인들에게 주절거린 내용을 2009년에 되살리기에는, 무리지 않겠느냐 말이다. 출판을 결정하기 전에 숙고했더라면. "왜 지금 이 책을 내놔야 하나? 사람들은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나"라는 고민.
자아와 시대의 불화/세상에 홀로 서야 하는 나라는 주제는 이미 많이 나와 있지 않은가. 문학으로도 영화로도 사람들은 고민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떤 것이 진정한 자신인지. 심리학과 철학, 심지어 처세 실용책에서도 중요한 것은 '오롯한 나 자신'이라고 친절하게 이야기해주는 시대에 에머슨의 이 책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자 했을까. '전혀 몰랐던' 영혼의 각성을 깨우는 구절이 단 한 구절이라도 있었다면. 단 한 구절이라도! 그러나 불행히도...없었다.
시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군데군데 에머슨의 시대와 지금 이 시대가 맞지 않은 부분도 눈에 띄었다. 가령 "여행에 대한 갈망은 우리의 병이 깊어졌다는 반증이며 이는 지적인 활동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구절. 과연 그럴까? 이 대목에서 한창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처럼 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대에 여행은 그야말로 일생 일대에 한 번 올까말까 한 큰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에게 여행은 하나의 삶이고 취미고 오락이다. 승용차를 몰고,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이웃집 드나들 듯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병이 깊어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 느끼기 위해.
번드르한 양장본으로 만들었지만, 짧은 내용을 어떻게라도 늘려서 책 한 권 만들기 위해 애썼다, 라는 생각 말고는 드는 생각이 없으니...내가 너무 가혹하고 못돼처먹은 독자인 것인가. 미안하지만, 백 번 양보해도 솔직함 심정은 이렇다. 슬프다. 에머슨의 이름값이, 이런 단순하고 가벼운 생각을 인생의 지침으로 삼았다는 오바마의 짧은 식견이.(미국인과 한국인의 지성 채널은 이렇게 다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