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는 비밀 심리학 - 지속가능한 연애를 꿈꾸는 당신에게
폴 도브란스키 지음, 나선숙 옮김 / 이레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돈다는, 중세 천동설보다 더 지독했던 믿음의 오류로 똘똘 뭉쳐 있던 20대에는 세상 그 무엇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없었다. 모든 것이 다 내 맘대로였고, 좌절이나 실망 같은 건 내 사전에 없는 말이었다.(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고? 내 뜻대로 되는 일만 골라서 했으니까!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어려운 일 같은 건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으니까! @@) '내맘대로 생각대로'의 범주 안에는 당연히 연애도 포함되었는데, '다다익선'이라는 신념 아래 닥치는대로 연애를 했고, 내 20대는 '연애생활자의 삶'이었다. 20대 때 내 연애는 늘 현재진행형이었다.(여기서 '닥치는대로'란 아무하고나 발정난 짐승처럼 연애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는 상대가 생기면 주저없이 달려들어 마음을 표현하고 그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기를 썼다는 말이다.)

단언컨대, 내 20대는 연애의 시대였다. 모든 에너지가 연애에 향해있었다. 연애로 행복했고, 연애로 아팠으며, 한 연애가 끝나자마자 어느새 다른 연애가 찾아왔다. 제대로 된 연애(란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여주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 진짜 연애하고 있구나'라는 마음이 드는, 주위 사람들도 다 아는 공식적인 연애. 한두 달 짧게 왔다 사라지는 것은 연애가 아니라 바람이라 생각했기에, 연애 지속 기간도 적어도 1년 이상은  되어야 했다. 모름지기 한 사람과 만나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은 함께 보내야 연애라고 할 수 있다고 믿었다.)를 몇 차례 겪으면서 훌러덩 세월이 흘렀고 30대가 되었고, 연애 또한 계속 되고 있다.

연애 말고도 중요한 것들-일, 친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취미들-이 생기면서 연애가 주춤 뒤로 물러난 적도 있었으나, 내 삶에서 연애는 여전히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하고 있다. 연애는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연애만큼 사람을 성숙하게 해주는 일이 또 있을까? 연애만큼 흥미진진하고 스릴 넘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르가 또 있을까? 연애만큼 복잡한 고도의 프로젝트가 또 있을까? 연애만큼 기기묘묘하고 스펙터클한(하루에도 열두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리고 기쁨의 산에 올랐다가 순식간에 절망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놀이동산이 또 있을까? 뭐 아니랄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나에게 연애란 이런 것이다. 그리하여 내 꿈은 평생 좋은 연애를 하면서 사는 것. (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20대 때는 연애가 '그저 열심히, 진심을 다해, 열과 성을 다해' 부딪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좋으면 좋은대로, 싫으면 싫은대로 솔직담백하게 부딪치면 상대에게 그 진심이 통할 거라 믿었고, 전략이나 잔머리는 애초에 내 몫이 아니라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성공한 연애 말고도 중간 중간 터무니없이 실패한 연애들이 있었는데, 지금까지는 연애 실패의 원인을 '내 가치를 몰라본 덜떨어진 남자들의 탓'으로 돌려왔다. 그게 마음 편했으니까. 그야말로 '파충류의 뇌'로 무작정 들이밀고 부닥치기만 하는 연애였던 셈이다. 왜 실패했는지, 왜 솔직함에 대한 대답이 그리 실망스러웠는지, [사랑에 빠지는 비밀 심리학]을 읽고 나니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철저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전략을 짜고 머리를 쓰는 것은 여성이고 남성의 역할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처음 이 책은 읽기가 무척 괴로웠다. 읽다 보니 이거 이거, '괜찮은 남성을 낚아채기 위해서 여자는 예쁘고 섹시하고 날씬한 데다가 머리까지 좋고 착하고 사려깊기도 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슈퍼우먼 콤플레스'의 주장 아닌가 싶었고, 군데군데 지은이의 '마초적인 시선'이 노골적으로 읽혀(자신은 마초도 페미니스트도 아닌 휴머니스트라 밝힌 것은, 어느 정도 이런 혐의에서 벗어나려는 수작 아닌가 싶기도 했다) 책을 집어던지고 싶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초반의 그 괴로움을 꾹 참고 견디며 책을 읽어나가다보니, 조금씩 '그래 맞아. 그렇군. 바로 이거야.' 싶은 대목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지은이가 하고 싶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남자는 어리석고 바보같은 동물이니, 무조건 오냐오냐 맞춰줘야 한다는 거야? 남자는 무조건 여자 하기 나름이란 거야?'라는 처음의 삐딱한 시선을 걷고 보니, 노력해야 하는 것은 여자 남자 마찬가지이고, 연애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과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파충류 뇌'/'포유류 뇌'/'고차원 뇌' 3가지 뇌는 여자 남자 모두에게 있고, 이 세 가지 뇌가 조화롭게 잘 작동해야 성적 끌림-우정-헌신의 단계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사랑에 빠지는 비밀 심리학]은 연애를 앞둔, 연애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연애를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서로 상처 주거나 받지 않고, 섣부른 행동과 그릇된 오해로 연애를 망치지 않고 오래 오래 잘 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다.

책에 나오는 여러 정신분석학에 바탕한 업계 용어들에 지레 겁먹거나, '나 이런 거 어려워' 하며 그냥 되는 대로 연애 하다 말래, 하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찬찬히 읽어가다 보면 자신에게 필요한 지점을 만날 수 있을 거라 본다. 소통이 힘든 연인에게는 소통하는 방법을, 연인이 썩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진즉 깨달아놓고도 마음이 모질지 못해 헤어지지 못하고 있는 못난이에게는 헤어짐의 확신을, 자신의 연애 성향을 몰라 번번이 연애의 멘홀에 빠지는 헛똑똑이에게는 '나는 어떤 연애를 하는 사람인가' 하는 고민을 던져주는 책이랄까.

나 또한 책을 읽으며 '섹스 앤 더 시티'의 네 주인공들과 비교해 내 연애 패턴과 연애 방식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었고, 지금의 연인과 더 좋은 연애를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몇 개의 힌트를 얻었다. 그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도깨비 방망이처럼 연애 나와라, 뚝딱! 하는 책이 아니라, 고민하고 노력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책이다. 연애 비법이 아니라, 더욱 중요한 기본은 연애에 임하는 나와 그의 자세,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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