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록밴드를 결성하다 - 사는 재미를 잃어버린 아저씨들의 문화 대반란
이현.홍은미 지음 / 글담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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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록밴드를 결성하다>를 읽는 데 1시간 가량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읽히는 책은 두 종류다. 무척 재미있어서 책장이 휙휙 넘어가거나 너무 재미없어서 설렁설렁 대충 넘어가거나. 안타깝게도 이 책은 두 번째 경우다. 눈길을 확 끄는 제목과 깔끔한 디자인이 아까울 정도로 내용이 부실해서 읽는 내내 어이쿠, 이런,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책의 큰 틀은 이렇다. 1부-새로운 취미에 빠진 40, 50대 남성들과의 인터뷰 / 2부-피부미용, 성형, 옷, 와인 등 40, 50대 남성들에게 권하는(실제로는 강요하는) 트렌드 소개. 남성들도 멋과 맛을 찾아 움직이는 시류를 타고 한몫 잡아보겠다는 의도가 빤히 엿보였달까. 내용이야 그렇다 치고 1부와 2부가 따로 노는 이 삐거덕거리는 느낌을 어쩔 것인가. 일과 성과에 치어 허덕허덕 살던 중년 남성들이 새로운 취미를 만나 인생의 즐거움과 삶의 생기를 되찾았다는 책의 기획에 충실했더라면 오히려 좋았겠다. 2부를 떼어내고 1부에만 집중했더라면 책 내용이 훨씬 알차질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안타까운 것은 또한 여덟 명의 '취미생활자'에게서 어떤 절박함이나 진정성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이는 취재 대상자의 문제라기보다는 인터뷰를 풀어낸 글쓴이의 문제로 보인다.)

요트, 패러글라이딩같은 비교적 돈 많이 드는 취미 말고 진짜로 서민 중년 남성들이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아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크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제대로 놀줄도 모르는 이 땅의 아자씨들, 쉬는 날이면 드르렁거리며 소파에 드러눠 처자다가 마누라한테 욕 바가지로 얻어먹는 아자씨들, 삼겹살에 쐬주 한 잔이 그저 보약이고 재미인 아자씨들, 어쩌다 자식들하고 좀 친해보려 얼쩡대다가 공부 방해된다고 쿠사리먹고 머쓱해지는 아자씨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이 땅의 아저씨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야, 이사람들 정말 재미나게 사는걸? 나도 한 번 따라 해볼까?"라는 생각보다는 "어이쿠, 돈 많고 팔자 좋은 사람들 얘기네. 색소폰을 배우기는커녕 색소폰 연주 들을 여유도 없다규~"라고 하지 않을까?

이 책의 대상은 아무래도 한국의 보편적인 40, 50대가 아니라 비교적 성공한, 연봉이 꽤 높고 벌어둔 돈도 있고 집도 있는 중산층 이상의 남자들이다. 1부에 소개된 취미들과 2부에 나온 '꽃중년이 되기 위한 머스트해브' 등등을 연결해보니 알겠다. 비교적 넉넉한 아저씨들의 주머니를 열겠다는 그 마음은 가상하나, 여성잡지나 지하철 무가지 한 켠에 어울릴 법한 가벼운 트렌드를 늘어놓는 것으로 과연 아저씨들의 굳은 심지를 건드릴 수 있을까? 

책이 재미없게 된 또 하나의 큰 이유는 읽는 재미가 덜하다는 것. 이런 종류의 실용서가 가진 큰 미덕이어야 할 '글맛'이 없다. 소박한 즐거움이 없다. 읽다가 아무래도 이상해 들춰보니 아니나다를까, 지은이들이 스포츠신문 기자 출신이다. 스포츠신문을 싸잡아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가벼운 취재와 발빠른 글쓰기에 오래 젖어있다 보니 이런 글이 나올 수밖에 없겠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신문의 글쓰기와 책의 글쓰기는 엄연히 다른 세계로구나, 하는 하나의 깨달음을 주었달까.

기획의 의도가 빤히 드러나는 실용서의 분명한 한계를 인정한다 해도 안타까움은 여전한다. 조금 더 진정성 있고 감동적으로 풀 수 있었을 내용들이 너무도 가볍게 다뤄진 듯해 안타깝다. 책에 계속 나오는 된장녀, 핸드폰, 와이프 같은 비표준어와 비속어들이 내내 거슬린 것도 그 때문이리라. 조금 더 고민하고 조금 더 숙고했더라면, 그랬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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