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의 절반은 뉴욕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야마 도모히로 지음, 강민정 옮김 / 서해문집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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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의 절반은 뉴욕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야마 도모히로 지음 / 서해문집 펴냄

 

대재앙이 시작되었고

지금으로부터 9년 전, 지구 멸망을 앞당기는 대 재앙의 싹이 텄다. 2000년 12월, 미국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그 해를 우리는 영원히 기억해야 하리라. 미국의 재앙과 더불어 온 세계의 재앙이 시작된 날로서. 술주정뱅이 망나니에 지독한 파파보이인 2대 부시가 대통령이 됐을 때 절망하며 읽었던 기사 하나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우주의 중심이 미국인 줄 아는, 지극히 미국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시(를 비롯한 수많은 미국 사람들)의 형편없는 국제 감각을 걱정한 유럽의 어느 신문 만평. 유럽 지도를 그려놓고는 콕 찍어 "헤이, 부시! 우린 여기 살아!" 했었지. 

그땐 그저 재미있어서 킬킬 웃어댔다. 부시의 무식함이, 유럽인들의 유머 감각이 두루 두루. 그런데 그 킬킬거림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문제가 빵빵 터졌다. 그가 미국을(아울러 지구를) 착실히 말아먹어온 8년 동안 지구촌 식구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해야 했다. 
"헤이, 부시! 우리 여기 살아. 그러니 제발 여기다 폭탄 떨어뜨리지 마, 이 나쁜 자식아. 여긴 우리 땅이야, 그 거지 같은 군대 데리고 썩 꺼져버려. 달러 갖고 장난 그만쳐. 미친 소는 너나 먹어. 우리 땅에다 쓰레기 버리지마, 이 미친 소같은 자식아 !"
미국의 저지레에 고통받고 괴로운 나라가 어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한국, 남미 뿐이었겠는가. 

미국의 추악한 본질이 만천하에 드러나버렸는데

세계 평화와 정의라는 이름을 뒤집어쓴 채 미국이 벌여온 일들은 대략 전쟁, 테러, 암살, 납치, 살해, 민주 정부 뒤엎기, 군부독재 지원 등등 온갖 악행과 관련된 것들. 쇠똥에 파리 끓듯, 세계에서 벌어지는 나쁜 짓에 미국이 끼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 이쯤 되면 저들(미국)이 믿고 있는 신은 대체 누구고 저들이 달달 외운다는 복음은 대체 무엇이냐 싶다. 무시무시한 미국의 복음주의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들의 모습이 우리 5년 뒤, 10년 뒤에 미래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 그것이다. 

지은이 마치야마 도모히로 또한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이런 두려움이 그에게 이 책을 쓰게 한 것은 아닐까. 신문도 안 읽고 인터넷도 안 하고 해외여행도 그 어떤 국제 교류도 하지 않은 채 오직 햄버거 먹으며 TV 쇼나 보며 낄낄대는 '미쿡살람'들의 무지가, 부시같은 대통령을 뽑아놓고도 창피한 줄 모르고 정치에는 나 몰라라 손 놓고 있는 그 무책임함이(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가 딱 이 꼴이지 않은가), 대책없이 소비하고 미친 듯이 먹어대는 그들의 탐욕이 꼭 우리(나에게는 한국, 지은이에게는 일본)의 미래인 것 같아 읽는 내내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무거웠다.

이렇게 웃겨도 되는 걸까

하지만! 어쩌면 이리 유쾌할 수 있을까. 심각하자면 한없이 심각해야 할 내용들을, 어쩌면 이렇게 재미나게 쓸 수 있을까. 노엄 촘스키와 하워드 진의 근엄하고 통렬한 자기(미국) 비판이 미국 비판의 한 축이라면, 그 반대쪽 가볍고 유쾌한 진영에 마이클 무어가 쓴 '멍청한 백인들'이 있었다. 이제 '멍청한 백인들' 옆에 이 책 '미국인의 절반은 뉴욕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를 사뿐히 얹어놓을 수 있으리라. 종교, 정치, 전쟁 등 미국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키워드들을 골라 쏙쏙 다루면서도 시종일관 유머와 조롱을 버무려낸 솜씨가 탁월하다. 

무척이나 재미있기에 책을 한 번 잡으면 멈출 수가 없다는 것, 이야말로 굉장한 미덕. 책의 내용이 뿜는 암울한 독기를, 지은이의 유머와 재치가 살살 덮어준다. 웃다가 심각해지다가 웃다가 암울해지다가 보면 어느새 책의 끝머리에 와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듯. 부시가 과연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미쿡살람'들은 유머를 아는 인종이라 하니, 킬킬거리며 함께 웃어댈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는 책장을 덮고 되묻겠지. '근데 이 책, 무슨 내용이야?' 오 마이 갓.

웃음을 멈추고 진심으로 생각해보자구

지은이는 이 책을 왜 썼을까. 미국이 얼마나 나쁜지 고자질하려고? 패스트푸드의 나라답게 100년만에 망해가는군, 하며 고소해하려고? 그것만은 아니지 싶다. 미국을 보며 달려온 일본, 미국을 보며 달려온 한국, 그리고 미국을 보며 달려온 온 세계를 향해 외치고 있지 않은가. '자, 그 달리기를 멈추고 그 자리에 서. 그리고 돌아가! 앞은 천길 낭떠러지라고!' 진짜 위기는 경제위기가 아니라 미국화된 삶, 미국식 세계관 그 자체이다. 미국식 세계화, 그것이 바로 재앙의 실체다. 

천년 만년 옳다고 믿었던 '아메리칸 드림'의 환상을 걷어낼 때다. 불편하겠지만 진실을 마주할 때다. '리틀 미국'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우리 속에, 국민의 안전보다 미국과의 허울뿐인 관계에 목 매는 어리석은 대통령의 뒤틀린 신념 속에, 영어를 잘 해야 잘 먹고 잘 산다고 믿으며 미친 듯이 달려가는 맹목적인 성공 집념 속에 또 하나의 미국은 무럭무럭 자란다. 온 세계에 뿌리 내린 수많은 미국들은 오늘도 인간을, 평화를, 지구를,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짓밟으며 커간다. 괴물처럼. 더 늦기 전에 우리 안에 꿈틀거리는 괴물을 처치해야 하지 않을까. 망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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