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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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책을 못 읽는 병에 걸려서(?) 사 놓고 일 년을 책장에 묵히다 4월에 읽었다; 두서없이 쓰는 독서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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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나기의 저 말은 너를 마지막으로 본 지 오래되었단 걸까. 너를 바라본 지 오래되었다는 걸까. 둘 다가 아닐까요, ㅈㅇ는 대답했다. 그치. 역시 그런 거지? ㅈㅇ의 말을 듣고나서야 아아, 그래서 내가 저 말이 나올 때마다 마음이 아린 거구나 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너무’는 사실은 부정하는 의미로 말할 때 써야 하는 부사다. 그래서인지 나기의 ‘너무’에서는 그럼에도 널 그리워하고 너의 소식이 궁금한 자신에 대한 자조 섞인 감정이 묻어난다.
잊을 만하면 반복해 저 말을 하고 ‘너무’라는 부사를 꼬박꼬박 사용해 널 본 지 오래됐단 사실을 강조하던 나기는 이야기의 말미에야 단 한 번 너무를 빼는데

‘너를 본 지 오래되었다.’

너무가 빠져 너무 담담한 저 말이 내 귀엔 이렇게 들렸다.

‘너를 사랑한 지 오래되었다. 너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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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바’라는 말을 만들며 소라와 나기는 어린 시절에 살던 데칼코마니 같은 두 집을 떠올렸겠지. 데칼코마니, 하면 나비가 떠오르니까.
나는 ‘소나기’도 괜찮을 것 같다. 소제목을 읽다가 떠올랐다. 소라에서 라를 빼고 나나에서 나를 하나 빼고 나기에서 나를 빼서 소나기. 작고 아름다운 그릇,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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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는 흰 종이에 똑 떨어뜨린 간장 물방울 같은 보름달, 겉표지를 벗기면 파란 물고기 비늘 무늬의 속표지다.
간장을 좋아하는 부족, 소라. 간장을 싫어하는 부족, 나나. 간장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부족, 나기.
소라의 비늘. 나나의 비늘. 나기의 비늘.


하지만 모세씨를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것과 모세씨를 이 집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별개,라고 단호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집으로 모세씨를 불러들여 소라에게 소개한다는 것은 나나의 세계에서 가장 연한 부분을 모세씨와 만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나기 오라버니만이 접근하고 접촉할 수 있던 그 세계를, 금주씨의 죽음과 이미 상당히 죽어버린 애자와 뒤틀림이 담긴 세계를 열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나나의 내면에서 그 부분은 잠잠한 듯 보여도 끊임없이 떨고 진동하는 곳. 가장 민감한 비늘이 돋은 곳. 무엇보다도 나나는 소라를 애자를 나나 본인을, 실제라기보다는 나나 내면의 그들을 모세씨에게 열어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한 건지 좀처럼 확신할 수 없습니다. - P119

소라, 나나, 나기가 합체하면, 나비바.
나비바가 되지.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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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록 2021-02-13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상을 조금 더 계속해보자면...

엄마가 이런 얘기를 했다. 결혼해서 부모가 되면 나란 사람은 사라지고 그때부턴 이름도 그냥 누구 엄마가 되는 거야. 네가 태어난 순간 엄마도 누구 엄마로 다시 태어난 거지.

그러니까 소라와 나나가 애자를 엄마가 아니라 애자라 부르는 건 애자가 누구 엄마가 아닌, 부족민이 하나인 애자란 부족으로 멸종하길 택했기 때문이다.

천록 2020-07-23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5년 6월 15일부터 `너무`를 긍정의 의미로도 쓸 수 있게 됐다.

국립국어원 묻고 답하기 답변
http://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61&qna_seq=4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