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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고는 안이 더없이 소중하지만 상대의 상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닫고 안에게 말한다. 이제 달콤한 말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널 행복하게 해주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너 자신이라고. 그러니까 힘내라고, 지지 말라고. 너는 약하지 않다고.

-「그래서 소녀들의 연애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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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조금 더 먹어 중학생이 된 뒤 〈델마와 루이스〉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처럼 미국의 광활한 풍광을 담은 영화를 보고서야 유타주라는 만화의 배경에 담긴 정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미국 중부 외곽에 동그마니 자리한 호텔 아프리카를 드나들던 다양한 손님들이 어떤 소수성을 대변했는지, 주인공인 엘비스가 흑인 혼혈이자 사생아로 자란 것은 어떤 의미였는지, 엘비스의 좋은 친구이자 보호자가 돼준 손님이면서 결국 아델라이드와 사랑에 빠진 지오가 아메리칸 인디언이라는 건 또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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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조남주가 『호텔 아프리카』와 관련해 「채널예스」에 쓴 짧은 글은 보다 정확하고 유려하다.

"그런 삶이 있는 줄 몰랐다. 매일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가방을 메고 같은 버스를 타던 여고생에게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가르쳐준 만화다. 어떤 삶이든 사랑이든 틀린 것은 없다는 사실도."

-「그런 삶이 있는 줄 몰랐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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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더듬으며 알게 되었다. 성실하고 충실한 독자라 믿었던 나 또한 이 세계가 나와 멀어지는 걸 아주 무심히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또 알게 되었다. 여성 창작자들이 만든, 다양하고 반짝이는 여성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10대 시절을 보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를,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며 그들이 만들어놓은 세계를 넘나들 수 있었던 게 얼마나 호사스러운 경험이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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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잡지가 나오는 날에 맞춰 서점으로 뛰어 가던 때, 모두가 만화책을 돌려 보던 때, 격주 혹은 매월 작가들이 10대 20대 여자들을 위한 이야기를 그토록 부지런히 쏟아내던 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 당신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이 여자아이에서 어른이 된 수많은 ‘나’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닫혀버린 세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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