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즈카 오사무는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창작법》에서 만화를 그릴 때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으로 기본적인 인권만은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며, 다음의 세 가지를 주의하라고 썼다. 전쟁이나 재해의 희생자를 놀리는 것. 특정 직업을 깔보는 것. 민족이나 국민, 그리고 대중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꽤 명쾌하지 않은가. 이 정도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의 글을 굳이 읽어야 할지 의문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글에 대하여」에서

에세이의 시대는 그 ‘관계성‘에 방점이 찍힌 글쓰기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보통의 경험과 공감이 문제의 근본 해결책을 가르쳐 온 전문가의 조언보다 높은 선호를 받게 한다. 지식의 종언인가. 에세이는 원래 학술서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신뢰할 수 없는 전문가의 시대를 누가 열었을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환자의 말을 듣지 않는 의사, 가짜뉴스 같은 지상파 뉴스, 환경파괴 정책을 자문하는 교수, 주례사 비평을 하는 평론가. 이전에 문자화된 지식을 만들고 유통할 수 있던 이들은 소수였지만 이제 그렇지 않다. 권위와 문자는 분리되는중이다. 읽고 쓰기, 혹은 쓰고 읽기는 이전 어느 때보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중심으로 발전하는 중이다.

-「에세이 시대의 글쓰기」에서

파커 J. 파머는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라는 책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마음이 부서진 사람들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부서져 조각나 흩어진 게 아니라 ‘부서져 열린 것‘이라고 말이지요. 열린 마음을 통해 많은 것들이 들어옵니다. 이런 경험을 표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용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 역시 언젠가는 글로 옮기고 싶은, 아직은 용기를 내지 못해 쓰기를 망설이는 글이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경험이 글의 형태로 눈앞에 보여도 저 자신이 괜찮을지, 아직은 망설이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작업 자체가 용기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소소한 궁금증 클리닉 Q&A」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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