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51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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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 여기 재미있는 가정이 하나 있다. 만약, 누군가 어마어마하게도 “리처드 매드슨(<나는 전설이다>)과 조지 로메로(<시체 사부작>)에게 이 책을 바친다”며 좀비 소재의 소설을 썼다면 말이야. “아니 누가 그런 무모한 짓을” “잘 해봤자 본전이지” 따위 씨근덕거리는 뒷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하늘을 덮고 대지를 채우며 바다에 차올라 급기야 사이버스페이스를 가득 메울 것이 뻔하다. 아니, 사실 그런 반응이라도 있다면 고맙지. 그런데 그 소설을 쓴 저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무려 스티븐 킹이라면? 여러분께 스티븐 킹의 최신작 <셀>을 가슴팍 터질 듯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소개한다. 한날한시 휴대폰을 통해 쏘아 올려진 정체불명의 전파가 전 인류를 좀비로 만들어버린 디스토피아 세계. 살점과 피가 분리되고 뇌수가 튀어 오르는 대공황의 무아지경 속,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한줄기 희망은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았던” 소수의 영웅들에게 온전히 짊어진다. 9.11 이후 공히 잠재된 대중의 공포와 잠재의식들을 끌어낸 아비규환의 풍경이 종횡무진 펼쳐지는 가운데, 종전 좀비영화의 설정들을 역전시켜 풀어낸 묘사가 맛깔 난다. <호스텔>의 기특한 신예, 일라이 로스의 지휘 아래 내년 개봉을 목표로 이미 제작 중이란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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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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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 정수리 즈음에 박혀진 공란, 그 안의 반짝 반짝 빛나는 커서를 이리저리 움직여 박민규 이름 석 자를 쳐 넣어보면 모 일간지 기자 박민규와 광주의 의상 디자이너 박민규,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에서 이비인후과를 운영 중인 박민규와 넌 누구냐 김천의 얼짱 박민규, 아니 이렇게 반가울 데가 ‘바람꽃’의 보컬 박민규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작가 박민규가 역시 이리저리 사이좋게 검색돼 나온다. 흔한 이름 같으면서도 꼭 그렇지도 않은, 한 마디로 ‘평범한’ 이름 - 박민규다. 그 가운데 제일 관심이 가는 건 과연 김천의 얼짱 박민규,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작가 박민규다. <지구영웅전설>로 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을 수상하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쓰고 보니 어쩐지 “굴러다니는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어 적을 섬멸하시고” 정도의 어감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박민규는 이제 더 이상 생소하거나 파격적 신예에 머무르는 작가가 아니다. 그의 소설을 읽어본 이들은 대부분 입을 모아 “한국 문단에서 지금껏 본 적이 없는 글”이라 말한다. 나쁜 뜻일 수도, 좋은 뜻일 수도 있다. 구렁이 산 넘어가 듯 설렁설렁, 으쓱으쓱, 얼렁뚱땅, 스믈스믈 그렇게 끊이지 않고 미약하게나마 존재감을 이어가다 어느 순간 영문을 알 수 없는 ‘한 방’을 날리는 그의 문장은, 그래서 흡사 태껸의 어떤 동작 같아 보이기도 한다. <지구영웅전설>을 내놓은 직후 하성란 작가와 나눈 인터뷰에서 “몸매를 고루 발달시키는 헬스를 하기보다, 특정 근육이 기형적으로 발달하기 마련인 파이터가 되련다”고 하더니, 역시나 격투에 있어 태껸의 그 어떤 동작으로 나름의 도를 이룬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글 속에서 발견되는 지독한 위트와 긴밀한 사회적 맥락, 주류사회를 향한 급진적 시선, 그렇지만 방만한 듯 느슨한 서사의 ‘각’이 회를 거듭할수록 종잡을 수 없이 강렬해지는 걸 보면 그는 이미 한 떨기 고요한 도인이 됐음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아메리칸 코믹스의 해묵은 영웅들을 내세워 미국 중심의 세계화와 인종차별, 구제불능의 한국사회에 대해 발언했던 <지구영웅전설>과, 대한민국 야구역사에 영원히 빛날 기록적 최하위 구단 삼미 슈퍼스타즈를 통해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노력하지 말고 그저 평범하게,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를 하자’라고 이야기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그리고 “원래 단편부터 내놓고 장편 쓰는거야, 몰랐어?”라는 문예창작과 선배의 조언에 2년 동안 쓴 30편의 단편 가운데 10편을 골라 뒤늦게 내놓았다는 <카스테라>까지. 비교적 말하고자 하는 바가 또렷해 보이는 이들 작품들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언제나 ‘굳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임하실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이미 마이너 한’ 작가의 시선이었다. “해마를 사고 싶었지만, 실은 해마에게 부양받아야 마땅했던” 생활고 탓이었을까. 그의 글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의 생활과 버림받은 공간, 남겨지거나 도태된 모든 것들의 사정에 대해 흡사 그 공기로 쓰여진 양 솔직했을 뿐만 아니라, 감동을 위해 교묘하게 치장하거나 더욱 불행하게 허물어뜨리려 애쓰지 않았다. 당장 그의 단편 <갑을고시원 체류기>를 보더라도, 실제 고시원에서 4년 가까이 살아본 경험이 있는 내게 ‘고시원’ - 매우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매우 초현실적인 - 이라는 공간을 이토록 창피하거나 기분 나쁘지 않게 재구성한 글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건 소위 ‘쿨’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후끈거린다는 말이 어울릴걸, 이라고 중얼거리고 싶어지는 것은 그의 글이 대부분 이 사회의 미시적인 고민과 현상에 천착함으로써 결정적인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굳이 거대 담론을 꺼내지 않더라도 우주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 - 그것이 박민규의 글이다.

 

그의 세 번째 장편소설 <핑퐁>은 극심한 왕따와 폭력에 시달리는 중학생이 우연찮게 탁구를 치게 되고, 또 우연찮게 헬리혜성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나고, 또또 우연찮게 탁구를 통해 전 인류의 생존을 걸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라고 하려니 도대체 그게 뭔데?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만큼 <핑퐁>은 단순한 줄거리로 요약하기 힘든 서사와 이미지로 이뤄진 성장소설이다. 작가가 직접 그린 삽화 일러스트만큼 반가운 것은, 거실 안의 코끼리마냥 더 이상 망가졌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돌이킬 수 없이 붕괴돼버린 ‘인류’라는 이름의 주류 사회와 그 부조리에 대해 여전한, 아니 오히려 더 과격해진 의식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명색이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베.스.트.셀.러 다섯 글자는커녕 베.스 두 글자만큼의 타협도 보이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이건 아마도 ‘조까라 마이싱’의 자세다. 이른바 ‘대산문화 마이싱 사건’이라고 선배문인들이 문학의 위기를 운운하며 충고를 날린데 대한 박민규의 대답이 ‘조까라 마이싱’이었는데, 그 내용인 즉슨 “너희가 곧 문학이냐, 너희가 위기라고 우리까지 위기라는거냐, 조까지 마라, 글 쓰는 사람들에게는 위기가 아니다, 너희가 전부 다 망쳐놓고 누구보러 위기라는 거냐”라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문단’이라든지 ‘평단’이라든지 ‘주류’라든지 ‘인류’라든지, 뭐 이런 것들에 일말의 소속감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태도다. <핑퐁>은 바로 그런 소속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마흔 한 명의 학급과 육십억의 인류로부터 배제당해 소속을 잃어버린 주인공들이 논하는 “이 세계의 존재가치”란 다소 심드렁한, 동시에 매우 비관적인 표정이다. <핑퐁>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처럼 내일 지구가 망하더라도 오늘 한 번 더 읽고 싶을 만큼 입담과 끝이 좋은 소설이라기보다, 차라리 ‘지구적 위기’따위의 문제를 제기하는 주류 담론가 눈앞에 대답 대신 내밀고 싶은 작품이다. 그래서 더욱 힘겹고 절실하다. 이미 박민규는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무리를 훌쩍 뛰어넘어 이를테면 삼천이백구십사 광년의 우주 정도를 유영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과연, 그러거나 말거나.

 

허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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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09-28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민규의 소설만큼이나 재미있는 리뷰군요. 잘 읽었습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핑퐁'에 더 기대가 갑니다.

비로그인 2006-09-29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소설만큼이나 재미있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내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핑퐁> 마구마구 읽고 싶어지는걸요~
 
십각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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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물 장르의 현대적 복원과 해체,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

일곱 명의 미스터리 연구회 대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츠노시마라는 무인도로 여행을 떠난다. 츠노시마는 반년 전, 수수께끼의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와 그의 부인, 고용인 부부 등이 처참하게 살해된 곳. 이들이 머물기로 한 ‘십각관(十角館)’은 나카무라 세이지가 지은 십각형 모양의 건물이다. 곧 살인예고와 함께 한 명이 실제로 살해당하면서 ‘자신들 중 한 사람이 범인‘이라는 불안은 커져만 간다.

‘아야츠지 유키토’와 ‘십각관’. 아무 생각 없이 신작 리스트를 훑어보던 중, 저 두 단어를 목격하고 오뉴월 송장마냥 얼어붙고 말았다. 뼈대 있는 추리소설 팬이라면 결코 잊지 못할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그 대망의 첫 작품인 <십각관의 살인>(87)이 드디어 재출간됐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는 기존 하드보일드 탐정 추리물들에 반기를 들고 ‘정통 미스테리로 회귀하자’는 기치아래 만들어진 ‘밀실살인’류 추리소설이다. 8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이 시리즈가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소년탐정 김전일>식의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관 시리즈’는 <십각관의 살인>을 시작으로 <수차관의 살인>, <미로관의 살인>, <인형관의 살인>, <시계관의 살인>, <흑묘관의 살인>등 총 6개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이미 시리즈 전체가 97년에 출간된 바 있으나, 절판된 이후로는 구해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금번 <십각관의 살인>을 시작으로 ‘관 시리즈’가 모두 재출간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게 되어 추리소설 팬의 한 사람으로서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메타 추리소설‘의 선구자, 아야츠지 유키토

아야츠지 유키토는 영화 <스크림>의 시나리오 작가 캐빈 윌리엄스와 비견될 만하다. 이 닮은 꼴 작가들은 특정 장르의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맹신도였으며, 동시에 그것을 파괴하고 재구성할 만큼 충분히 영민했다.

캐빈 윌리엄스가 <스크림>, <패컬티> 등의 작품들에서 ‘호러영화 10계명’ 따위의 법칙들을 거론하며 장르의 관습을 해체했던 장면을 상기해보자. 아야츠지 유키토도 다르지 않다. 대학시절 ‘미스터리 연구회’에서 활동하면서 <십각관의 살인>을 집필한 그는 기존 추리물의 관습화 된 밀실살인 트릭들을 열거하면서 또 한편으로 그것을 파괴하는데 주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는 일종의 메타 추리소설로 거론될 가치가 있다.

물론 아야츠지 유키토가 기존 추리소설의 관습을 완벽하게 뒤흔들어 놓았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그 자신은 과거 추리물이 ‘대접받던’ 영광의 시기를 충실히 재현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어진 해체의 미학은 ‘반전’이라는 흔하디흔한 표현으로 정리될 수 없는 장르의 묘미로 귀결되고 있다. 그러한 미덕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바로 ‘관 시리즈’의 첫 작품인 <십각관의 살인>이다.

<십각관의 살인>을 독해하는데 유용한 첫 번째 장치 - 구조의 이원화

이 흥미로운 소설을 좀 더 재미있게 독해하기 위해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두 가지 주요 장치를 염두해두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구조의 이원화’와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아가사 크리스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십각관의 살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개성은 ‘구분서술’이다. 이 소설은 한 개의 챕터를 ‘섬’과 ‘육지’ 두 가지 시점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으며, 섬 안에 있는 학생들의 이름 역시 ‘별명’과 ‘실명’으로 구분 짓고 있다. 이러한 이원화 구조는 서로 복잡하계 연계되면서 마지막 ‘의외의 결과’를 가능케 하는 결정적 요소이다.

이 중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특히 중요하다. 추리소설 팬이라면 너털웃음이 나올 만한데, 역사적으로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들의 이름 -아가사 크리스티와 코넌 도일, 앨러리 퀸이나 애드가 앨런 포 같은- 이 그대로 인용되고 있는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미스테리 연구회’ 학생들이 실명 대신 이 작가들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탓이다.

이러한 설정이 단순히 아야츠지 유키토 개인의 취향이나 선배 작가들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별명’의 사용은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익명성을 전재할 수 있게 함으로서, 텍스트 외부에서 범인을 ?는 독자들에게 혼돈을 야기 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실명과 별명의 구분서술은 ‘섬’과 ‘육지’로 나뉘어 진행되는 시점의 변화와도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육지가 실명이 통용되는 사회라면, 섬에서는 실명이 단 한 번도 거론되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육지의 A와 섬 안의 A가 동일 인물인지, 혹은 다른 인물인지 알 수 없는데, 이것은 매우 효과적인 트릭이다. 독자들이 섬 안에 고립된 학생들의 실명을 아는 순간, 진짜 범인은 정체를 드러낸다.

<십각관의 살인>을 독해하는데 유용한 두 번째 장치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추리소설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십각관의 살인>의 초반 설정이 ‘밀실살인’류 추리물의 대표작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아가사 크리스티)와 매우 닮아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십각관의 살인>에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대한 직접적 언급까지 수차례 등장한다.

“...(이 섬에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식의 연속살인이라도 일어나면 얼마나 좋겠어요?” (본문 35페이지)

“범인이 탐정까지 죽이고 자살한다고 해봐요, 그야말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처럼 되어버리겠네요” (본문 109페이지)


<십각관의 살인>의 기본적인 플롯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완벽하게 닮아있다는 것은 (등장인물들이 직접 이야기 했듯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수차례 언급하며 이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은 독자를 향한 일종의 트릭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테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식의 결말을 예상케 함으로써 또 다른 생각의 여지를 은연중에 봉쇄하는 것이다.

또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이후 수많은 밀실트릭들이 정형화된 가운데, 이 장르의 관습을 해체하는 쾌감을 배가시키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십각관의 살인>을 이해하는데 절대적인 텍스트인 동시에, 그 자체가 매우 설득력 있는 미스테리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현대 추리소설의 대안을 모색하는 아야트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사실 아야츠지 유키토의 작품들은 유난히 작위적인 설정과 매력 없는 탐정 캐릭터로 인해 극의 재미가 반감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는데, <십각관의 살인>도 예외는 아니다.

‘관 시리즈’를 살펴보면 밀실트릭 자체의 논리적 구성은 탁월하지만 그러한 상황을 이끌어내는 주변 전개가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연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시리즈의 탐정 캐릭터 ‘시마다’에게서는 홈즈나 뤼팽, 포와로 같은 명탐정들의 치밀함이나 섹시한 매력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관 시리즈’는 20년 가까이 사랑받아왔다. 여기에는 아야츠지 유키토의 탁월한 장르 이해가 한 몫하고 있다. 아야츠지 유키토는 동일한 사건 패턴과 인물(탐정 캐릭터 ‘시마다’와 6개의 건물을 지은 ‘나카무라 세이지’)을 반복적으로 제시하여 고전적인 긴장감을 조성해놓고, 사건의 전개를 통해 이러한 ‘장르적 익숙함’을 배신한다.

다시 말해, ‘관 시리즈’에는 고전추리 장르의 충실한 복원과 해체가 동시에 존재한다. 여기에서 기인하는 전복의 에너지는 여타의 문제들을 희석시킬만한 장르적 쾌감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마치 프로레슬링 경기가 뚜렷한 인공성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반전’이나 ‘폭력성’에 함몰된 현대 추리소설에 식상함을 느끼는 독자라면 그 대안을 <십각관의 살인>에서 찾아볼 만하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여름 밤, 반드시 일독을 권한다.


허지웅 ozz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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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5-08-25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주의 마이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이 책, 읽어봐야겠군요. 추리소설 리뷰를 참 잘 쓰셨네요..^^
 
내 인생의 영화 ㅣ 내 인생의 영화
박찬욱, 류승완, 추상미, 신경숙, 노희경 외 지음 / 씨네21북스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일상을 채우는 수많은 질문들 가운데 가장 까다롭고 난해하며 또한 그 의도가 한없이 얄팍한 것은 무엇일까. 역시 “네 인생에 있어서 가장 ~ 했던 것은 무엇이냐”식의 질문이 아닐까 싶다. 내 인생의 오만가지 경험들 가운데 단 한 가지를 꼽아 뱉어내라는 요구는, 그러한 경험에 이르기까지 감수해야 할 심적, 물적 비용 없이 엑기스만 뽑아먹겠다는 심보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 자체가 무의미한 것 또한 자명하다. 그 사람의 인생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며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없는 이상, ‘인생의 베스트’를 찾아 따먹었다 해도 유익할리 만무한 것 아니던가. 물론 현대소비사회의 촉진시스템은 무언가 크게 변화할 것처럼 떠들어대겠지만.

<내 인생의 영화>의 기획의도 역시, 앞서 설명한 ‘얄팍한 상술’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는 않아 보인다. 모두에게 다행인 사실은 이 책의 필자들이 단순한 ‘베스트 영화 리스트’를 작성하려 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한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내 인생의 영화>는 “이 영화가 말이지...”가 아닌 “내 인생이 말이지...”에 방점이 찍는 전략적 영민함을 통해 일독을 권해볼만한 책으로 발돋음한다.

<내 인생의 영화>는 ‘씨네 21’에 연재되었던 동명의 칼럼들을 갈무리해 엮어낸 책이다. 50명의 필진들은 제각기 자신의 영역에서 괄목할만한 자리매김에 성공한 이들이며, 그 범위는 시나리오 작가에서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성공한 이들이 재미있게 본 영화를 나도 보고 똑같이 성공해야지” 따위의 헛된 망상, 마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읽을 때와 동일한 기대치로 접근하는 우를 범하지만 않는다면 이들의 잡문이 머금고 있는 삶의 단면, 그 순간의 페이소스를 충분히 즐겨볼만 하다.

거듭 확인하자면, <내 인생의 영화>는 손석희가 ‘알파치노의 뜨거운 오후’를, 박찬욱이 ‘복수의 립스틱’을 들고 나와 이 영화들이 얼마나 재미있고 뛰어난지 술회하는 책이 아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그 영화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이유를 마치 술자리에서 그러하듯 살갑게 들려줄 뿐이다.

그 형식에의 자유로움을 무한히 허용하는 오지랖은 <내 인생의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이 ‘날 것 냄새나는’ 글들을 통해 우리는 영화 같은 인생을 사는 화려함 따위가 아닌, 사소한 것에서도 의미를 찾고 고민할 줄 아는 이들의 속 깊은 감수성을 발견하게 된다.

<내 인생의 영화>는 잡문으로 만나보기 힘들었던 이들의 영화를 둘러싼 우문현답이다. 이 선문답이 삶의 향기를 양껏 머금고 피어나는 그 순간, 우리는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인생의 가치를 부지불식간에 물려받는다. 그 예측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깨달음이야 말로 우리네 인생과 영화의 닮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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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ㅣ 내 인생의 영화
박찬욱, 류승완, 추상미, 신경숙, 노희경 외 지음 / 씨네21북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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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채우는 수많은 질문들 가운데 가장 까다롭고 난해하며 또한 그 의도가 한없이 얄팍한 것은 무엇일까. 역시 “네 인생에 있어서 가장 ~ 했던 것은 무엇이냐”식의 질문이 아닐까 싶다. 내 인생의 오만가지 경험들 가운데 단 한 가지를 꼽아 뱉어내라는 요구는, 그러한 경험에 이르기까지 감수해야 할 심적, 물적 비용 없이 엑기스만 뽑아먹겠다는 심보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 자체가 무의미한 것 또한 자명하다. 그 사람의 인생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며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없는 이상, ‘인생의 베스트’를 찾아 따먹었다 해도 유익할리 만무한 것 아니던가. 물론 현대소비사회의 촉진시스템은 무언가 크게 변화할 것처럼 떠들어대겠지만.

<내 인생의 영화>의 기획의도 역시, 앞서 설명한 ‘얄팍한 상술’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는 않아 보인다. 모두에게 다행인 사실은 이 책의 필자들이 단순한 ‘베스트 영화 리스트’를 작성하려 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한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내 인생의 영화>는 “이 영화가 말이지...”가 아닌 “내 인생이 말이지...”에 방점이 찍는 전략적 영민함을 통해 일독을 권해볼만한 책으로 발돋음한다.

<내 인생의 영화>는 ‘씨네 21’에 연재되었던 동명의 칼럼들을 갈무리해 엮어낸 책이다. 50명의 필진들은 제각기 자신의 영역에서 괄목할만한 자리매김에 성공한 이들이며, 그 범위는 시나리오 작가에서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성공한 이들이 재미있게 본 영화를 나도 보고 똑같이 성공해야지” 따위의 헛된 망상, 마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읽을 때와 동일한 기대치로 접근하는 우를 범하지만 않는다면 이들의 잡문이 머금고 있는 삶의 단면, 그 순간의 페이소스를 충분히 즐겨볼만 하다.

거듭 확인하자면, <내 인생의 영화>는 손석희가 ‘알파치노의 뜨거운 오후’를, 박찬욱이 ‘복수의 립스틱’을 들고 나와 이 영화들이 얼마나 재미있고 뛰어난지 술회하는 책이 아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그 영화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이유를 마치 술자리에서 그러하듯 살갑게 들려줄 뿐이다.

그 형식에의 자유로움을 무한히 허용하는 오지랖은 <내 인생의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이 ‘날 것 냄새나는’ 글들을 통해 우리는 영화 같은 인생을 사는 화려함 따위가 아닌, 사소한 것에서도 의미를 찾고 고민할 줄 아는 이들의 속 깊은 감수성을 발견하게 된다.

<내 인생의 영화>는 잡문으로 만나보기 힘들었던 이들의 영화를 둘러싼 우문현답이다. 이 선문답이 삶의 향기를 양껏 머금고 피어나는 그 순간, 우리는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인생의 가치를 부지불식간에 물려받는다. 그 예측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깨달음이야 말로 우리네 인생과 영화의 닮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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