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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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 정수리 즈음에 박혀진 공란, 그 안의 반짝 반짝 빛나는 커서를 이리저리 움직여 박민규 이름 석 자를 쳐 넣어보면 모 일간지 기자 박민규와 광주의 의상 디자이너 박민규,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에서 이비인후과를 운영 중인 박민규와 넌 누구냐 김천의 얼짱 박민규, 아니 이렇게 반가울 데가 ‘바람꽃’의 보컬 박민규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작가 박민규가 역시 이리저리 사이좋게 검색돼 나온다. 흔한 이름 같으면서도 꼭 그렇지도 않은, 한 마디로 ‘평범한’ 이름 - 박민규다. 그 가운데 제일 관심이 가는 건 과연 김천의 얼짱 박민규,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작가 박민규다. <지구영웅전설>로 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을 수상하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쓰고 보니 어쩐지 “굴러다니는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어 적을 섬멸하시고” 정도의 어감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박민규는 이제 더 이상 생소하거나 파격적 신예에 머무르는 작가가 아니다. 그의 소설을 읽어본 이들은 대부분 입을 모아 “한국 문단에서 지금껏 본 적이 없는 글”이라 말한다. 나쁜 뜻일 수도, 좋은 뜻일 수도 있다. 구렁이 산 넘어가 듯 설렁설렁, 으쓱으쓱, 얼렁뚱땅, 스믈스믈 그렇게 끊이지 않고 미약하게나마 존재감을 이어가다 어느 순간 영문을 알 수 없는 ‘한 방’을 날리는 그의 문장은, 그래서 흡사 태껸의 어떤 동작 같아 보이기도 한다. <지구영웅전설>을 내놓은 직후 하성란 작가와 나눈 인터뷰에서 “몸매를 고루 발달시키는 헬스를 하기보다, 특정 근육이 기형적으로 발달하기 마련인 파이터가 되련다”고 하더니, 역시나 격투에 있어 태껸의 그 어떤 동작으로 나름의 도를 이룬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글 속에서 발견되는 지독한 위트와 긴밀한 사회적 맥락, 주류사회를 향한 급진적 시선, 그렇지만 방만한 듯 느슨한 서사의 ‘각’이 회를 거듭할수록 종잡을 수 없이 강렬해지는 걸 보면 그는 이미 한 떨기 고요한 도인이 됐음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아메리칸 코믹스의 해묵은 영웅들을 내세워 미국 중심의 세계화와 인종차별, 구제불능의 한국사회에 대해 발언했던 <지구영웅전설>과, 대한민국 야구역사에 영원히 빛날 기록적 최하위 구단 삼미 슈퍼스타즈를 통해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노력하지 말고 그저 평범하게,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를 하자’라고 이야기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그리고 “원래 단편부터 내놓고 장편 쓰는거야, 몰랐어?”라는 문예창작과 선배의 조언에 2년 동안 쓴 30편의 단편 가운데 10편을 골라 뒤늦게 내놓았다는 <카스테라>까지. 비교적 말하고자 하는 바가 또렷해 보이는 이들 작품들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언제나 ‘굳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임하실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이미 마이너 한’ 작가의 시선이었다. “해마를 사고 싶었지만, 실은 해마에게 부양받아야 마땅했던” 생활고 탓이었을까. 그의 글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의 생활과 버림받은 공간, 남겨지거나 도태된 모든 것들의 사정에 대해 흡사 그 공기로 쓰여진 양 솔직했을 뿐만 아니라, 감동을 위해 교묘하게 치장하거나 더욱 불행하게 허물어뜨리려 애쓰지 않았다. 당장 그의 단편 <갑을고시원 체류기>를 보더라도, 실제 고시원에서 4년 가까이 살아본 경험이 있는 내게 ‘고시원’ - 매우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매우 초현실적인 - 이라는 공간을 이토록 창피하거나 기분 나쁘지 않게 재구성한 글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건 소위 ‘쿨’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후끈거린다는 말이 어울릴걸, 이라고 중얼거리고 싶어지는 것은 그의 글이 대부분 이 사회의 미시적인 고민과 현상에 천착함으로써 결정적인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굳이 거대 담론을 꺼내지 않더라도 우주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 - 그것이 박민규의 글이다.

 

그의 세 번째 장편소설 <핑퐁>은 극심한 왕따와 폭력에 시달리는 중학생이 우연찮게 탁구를 치게 되고, 또 우연찮게 헬리혜성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나고, 또또 우연찮게 탁구를 통해 전 인류의 생존을 걸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라고 하려니 도대체 그게 뭔데?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만큼 <핑퐁>은 단순한 줄거리로 요약하기 힘든 서사와 이미지로 이뤄진 성장소설이다. 작가가 직접 그린 삽화 일러스트만큼 반가운 것은, 거실 안의 코끼리마냥 더 이상 망가졌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돌이킬 수 없이 붕괴돼버린 ‘인류’라는 이름의 주류 사회와 그 부조리에 대해 여전한, 아니 오히려 더 과격해진 의식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명색이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베.스.트.셀.러 다섯 글자는커녕 베.스 두 글자만큼의 타협도 보이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이건 아마도 ‘조까라 마이싱’의 자세다. 이른바 ‘대산문화 마이싱 사건’이라고 선배문인들이 문학의 위기를 운운하며 충고를 날린데 대한 박민규의 대답이 ‘조까라 마이싱’이었는데, 그 내용인 즉슨 “너희가 곧 문학이냐, 너희가 위기라고 우리까지 위기라는거냐, 조까지 마라, 글 쓰는 사람들에게는 위기가 아니다, 너희가 전부 다 망쳐놓고 누구보러 위기라는 거냐”라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문단’이라든지 ‘평단’이라든지 ‘주류’라든지 ‘인류’라든지, 뭐 이런 것들에 일말의 소속감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태도다. <핑퐁>은 바로 그런 소속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마흔 한 명의 학급과 육십억의 인류로부터 배제당해 소속을 잃어버린 주인공들이 논하는 “이 세계의 존재가치”란 다소 심드렁한, 동시에 매우 비관적인 표정이다. <핑퐁>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처럼 내일 지구가 망하더라도 오늘 한 번 더 읽고 싶을 만큼 입담과 끝이 좋은 소설이라기보다, 차라리 ‘지구적 위기’따위의 문제를 제기하는 주류 담론가 눈앞에 대답 대신 내밀고 싶은 작품이다. 그래서 더욱 힘겹고 절실하다. 이미 박민규는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무리를 훌쩍 뛰어넘어 이를테면 삼천이백구십사 광년의 우주 정도를 유영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과연, 그러거나 말거나.

 

허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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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09-28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민규의 소설만큼이나 재미있는 리뷰군요. 잘 읽었습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핑퐁'에 더 기대가 갑니다.

비로그인 2006-09-29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소설만큼이나 재미있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내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핑퐁> 마구마구 읽고 싶어지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