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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평점 :
하여간 ‘대중적 글쓰기’에 재주는 있는 사람이다. 새로운 책을 내자마자 알라딘 집계 기준으로 2위로 뛰어올랐다. 그만큼 유시민을 따르는 매니아들이 존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유씨는 얼마 전 정계를 떠난다는 몇 줄 짜리 글을 남겼다고 한다. 직접 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언론에 몇줄씩 소개가 되었기에 안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책이 나왔다. 선언은 최근에 했지만 그의 마음 속 정계은퇴는 이 책을 쓰기 직전에 이미 결심이 섰을지도 모른다. 유씨는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라는 별칭답게 노무현 정권에서 승승장구했다. 만 47세의 나이에,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아도 50대 중반은 되어야 될까말까한 자리에 오른 것이다.
국회의원도 지냈다. 노무현씨가 민주당을 깨고 만든 정당인 열린우리당에서 최고위원인가도 지냈다. 유씨 자신의 표현대로 정치생활 10년 중에 5년은 더 할 수 없이 잘 나간 셈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의 퇴진과 더불어 그는 쇠락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튀는 언행으로 주목받기는 했지만 그의 정치적 승부수는 언제나 완전한 실패로 귀결되었다.
그가 결정적으로 실수한 것은 이정희와 손을 잡은 것이다. 이런 실패는 우연이 아니다. 유씨의 현실적 정치인으로서의 자질과 큰 흐름을 읽지 못하는 판단력의 한계 때문이다. 혹자들은 유씨의 실패 원인을 부족한 국민들에게서 찾지만 그건 언어도단이다. 국민이 그를 버린건 그가 늘상 헛다리를 짚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절대적 지원에 힘입은 5년 동안의 승승장구, 소위 끈이 떨어진 그 이후 5년 동안의 처절한 실패와 좌절이 마침내 유시민을 원래의 제자리로 돌려놨다. 그는 이 책에서 하고픈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진심일까? 그가 과연 경기지사로서 혹은 정당인으로 성공했어도 저술이야말로 하고픈 일이라고 고백했을까?
솔직히 의심스럽다. 아니 나는 그의 정치 은퇴선언 자체를 여전히 신뢰하지 않는다. 쉽게 떠난 정치판을 언젠가 다시 돌아오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지난 10년간 그가 정치에 대해 주장해온 거창한 담론들에 비하면 몇 줄의 은퇴선언은 좀 무책임하다는 생각까지 들지 않는가?
유시민은 일중독자로 박원순을 들면서 여전히 정치적으로 편향된 시각을 노출시키고 있다. 전임시장 즉 오세훈이 계획하고 실행한 일은 토목공사로 몰아붙인다. 여전히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현재 밥벌이로 하고 있는 일이 여하하든 간에 언제나 정치의 세계를 기웃거릴 것 같다.
노무현은 그에게 “자넨 정치를 하지 말고 책이나 쓰고 강연이나 하게”라고 했다던가? 노무현이 정말 정치를 혐오해서 아끼는 사람에게 정치를 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일는지, 아니면 같이 일을 해보니 나름 잘난 사람이긴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대성할 그릇이 못된다고 판단한 건지 그 내막은 오직 노무현씨만 알 것이다.
특히 주위에 사람이 붙지 못하는 것이 그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유시민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분열이 있었다. 그가 주도했던 노무현의 정당 즉 열린우리당은 결국 ‘도로민주당’이 되었다. 그때 민주당은 이미 유씨에겐 남의 정당이었다. 국참당도 그렇고 이정희와 손을 잡고 만든 정당도 결국은 파괴되었다.
그는 논리적 정합성에도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동아일보에 2년이 넘도록 글을 쓰고 그 신문사에서 원고료를 받아 생활비에 보탰을 것인데도, 결국 동아일보를 사악한 언론으로 매도했다. 얼마나 모순인가? 사악한 신문을 글을 쓰는 그 자신은 악마인가? 그는 동아일보에 마지막으로 쓴 글에서 감사의 뜻을 표했다.
어느 신문 칼럼이 지적한대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합당설이 나올 시점에서는 “싫다는 상대에게 계속 결혼하자고 우기는 건 지극히 부적절하다”고 하더니,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에 대꾸조차 않는 한나라당에 대고는 “열 번도 찍어보지 않는 것은 나무꾼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나는 유시민이 위대한 학자나 사상가 혹은 이론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대중적인 글을 쓰는 데는 상당한 재주가 있다. 또 일정한 수(물론 그 수가 유씨가 정치적으로 성공하는데 디딤돌이 되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숫자지만)의 나름대로 견실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책을 쓰는 사람으로서 큰 자산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스스로 고백했듯이 지식소매상의 역할이다. 있는 것을 취합하고 가공하고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한 10%쯤 얹어서 자기의 문장으로 글을 엮는 일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나 인류에게 새로운 지표를 지시할 수 있는 이론을 그에게 기대하는 것은 솔직히 무리다.
유시민씨가 앞으로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DJ가 정계를 은퇴했다가 다시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호남이라는 견고한 지지층과 그의 걸출한 정치적 자질 때문이었다. 유시민에게는 그 어느 것도 없다. 흔들리지 말고 대한민국에서 제법 쓸만한 지식소매상으로 성공하길 바란다. 비록 정치인으로는 쇠락하고 말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