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희 청소기
김보라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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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생 때 가장 기다리던 시간은 방학이었다. 아쉬운 건 학교에 가면 매일 만날 수 있는 친구들과도 방학이 되면 만날 수 없다는 점이었는데, 그럴 땐 친구 집에 전화를 걸어 "안녕하세요. OO이 있나요?"로 시작하는 인삿말과 함께 어느 아파트 놀이터에서 몇 시에 만날 건지 정하면 된다. 그마저도 귀찮을 땐 아이들이 주로 모이는 놀이터에 그냥 가보면 적어도 한 명은 그곳에서 마주친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그러나 3~4학년쯤 되자 하나 둘씩 폴더나 슬라이드 폰을 가졌음에도 집에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방학을 가장 기다렸던 이유도 매일 학교에서만 보던 아이들과 학교가 아닌 장소에서 공부가 아닌 다른 것에 웃고 떠들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조용희 청소기>의 첫 장면은 방학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용희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장면에 등장하는 아이들 모두 친구들과 모여 있거나 어디를 갈지 의논하고 있는 반면, 용희는 어딘가로 홀로 뛰어가고 있다. 누가 용희인지 확실하게 눈에 띈다. 용희의 양옆으론 '방학 특강 접수, 내신완성반 접수, 영어집중반 모집, 수학집중반 모집'을 홍보하는 어른들과 홍보물이 있다. 지방 소도시(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시골에 가까웠던 지역)에 살았던 내 기억엔 여름이나 겨울방학식 때 교문 앞에서 솜사탕이나 풍선, 병아리, 달고나, 뽑기 등을 팔던 어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신완성반이나 방학 특강 등에 대한 홍보 따윈 없었다. 방학 특강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텔레비전에서 봐야 했던 EBS 방학특강만 있었다. 아직 초등학생인 용희에게 '내신'이라는 말을 적어도 중학교 때나 가야 접할 수 있는 말인데, 초등학생들에게 학업이 주는 스트레스와 부담이 용희나 다른 아이들의 천진한 표정과 대비되어 씁쓸함을 안겨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용희의 방학 계획표는 하루의 3 분의 1이 자는 시간이다. 용희와는 반대로 나는 방학 계획표를 세우면 초등학생에겐 비정상적으로 이른 시간인 6시에 일어난다고 계획을 세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실한 방학을 보내고 싶다고 6시에 기상한다고 세웠던 계획을 한 번도 지킨 적은 없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너무 어른처럼 성실하게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그 땐 몰랐다.

<조용희 청소기>에는 '조용'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소리가 많이 등장하는데, 작가님이 소리를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지 고민을 많이 하신 것 같다. 강아지가 낑낑거리는 소리부터,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 밥이 지어지는 소리, 오토바이나 자동차 엔진 소리, 매미가 우는 소리 등 용희가 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책은 이 각각의 소리들에 대한 용희의 느낌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했다. 강아지가 내는 소리는 둥글고 부드러운 글씨체로 표현하여 용희의 강아지가 마치 옆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용희네 강아지는 순한 기질일 것이라는 짐작까지 하게 한다. 밥이 지어지는 소리는 거칠고 날카롭게 긴 글씨체를 활용하여 치키치키 칙칙거리며 밥이 지어지는 소리와 고소한 향까지 생생한 느낌을 준다.

용희의 방학 목표인 늦잠자기는 이런 다양한 소리들로 인해 방해를 받는다. 창의력이 풍부한(그림을 보면 상도 받은) 용희는 아이디어를 내서 조용희 청소기를 만든다. 조용희 청소기는 주변의 소리를 흡수해서 조용히 만들어주는 용희만의 발평품이다. 용희는 늦잠자기를 위해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주변 소리를 빨아들이고 소원대로 늦잠자기에 성공한다. (나는 지금도 종종 잠을 깨우는 주변 소음이 사라져서 푹 잘 수 있는 나날을 바라기도 한다.) 잠에서 깬 용희는 강아지가 내는 소리, 세탁기에서 나는 소리 등을 듣지 못한다. 조용희 청소기가 소리를 빨아들인 탓! 용희는 조용희 청소기의 커다란 (풍선처럼 생긴)주머니를 분리하고 세상에 여러 소리들을 돌려준다. 늦잠을 자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이 가진 소리들을 통해 경험을 키워나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걸 용희도 느낀 게 아닐까 싶다.

<조용희 청소기>는 귀엽고 따뜻한 그림과 아이다운 이야기를 통해 어릴 적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포근한 그림책이다. 한편으론 아이가 아이답게 뛰어 놀기 어려운 현대 사회의 모습들, 예를 들면 방학에도 공부나 사교육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모습을 그림으로 보면서 안타깝기도 했다. 늦잠을 자고 싶다는 마음, 주변 소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용희의 마음이 십분 이해됐다. 방학이라는 시간이 학기 중에는 아이들이 하지 못했던 여러 경험들을 이뤄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길 다시 한 번 바라본다.

※ 이 글은 창비 출판사의 <조용희 청소기> 서평단 활동을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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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위드 X 창비교육 성장소설 9
권여름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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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학교로 마인드맵을 그린다면 빠질 수 없는 것이 괴담이겠다. 오죽하면 <학교 괴담>이라는 제목의 만화영화가 있을 정도니. 나 또한 <학교 괴담>을 보고 자란 세대로서 학교와 괴담이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크게 느낀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 그 만화를 덜덜 떨면서 봤고 무사히 봤다 싶으면 꿈에 귀신이 나와 놀라서 깬 적도 수두룩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뻔한 무서운 이야기일 뿐인데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어났다는 것만으로도 공포는 배가 됐다. 괴담은, 특히 학교 괴담은 학생이라면 매일 만날 학교라는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익숙한 환경이 달라보이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갖는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스터디 위드 X>는 여러 단편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고 '스터디 위드 미'와 같은 공부 브이로그, 카톡 감옥, 트위터 일탈 계정 등과 같이 지금의 중고등학생들이 모를 수 없는 소재를 끌어왔다. 내가 중학생일 때 카톡이 생겼는데 그때는 친구들과 단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단 정도에 그쳤다. 그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카톡은 악용하려면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이 되었다. 코로나 시대 몇 년을 지나오면서 비대면이 일상이 되었고, 그렇기에 카톡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카톡 감옥>과 같이 단체 카톡방 속 누군가가 내가 생각하는 누군가가 맞는지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도상현이 맞는지'를 물었을 때, D가 맞다고 한 것처럼 상대가 긍정하면 더이상 의심하지 않고 긴장의 끈을 풀어버린다. 결국 D의 정체가 무엇인지, 사람인지 귀신인지는 끝까지 밝힐 수 없었으나 <카톡 감옥>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학교폭력 문제와 익명성의 위험성이라고 생각한다. '카톡 감옥' 개설은 학교폭력 가해자들을 벌주기 위한 누군가(D)의 행동이었고, 이 누군가는 D라는 익명에 가려진 알 수 없는 존재다. '나'는 'D'에 대해 이상함을 감지했을 때 담임선생님에게라도 물어보아야 했을 것이다. D가 도상현이 맞는지. 오픈채팅이나 인터넷 카페 등 익명성이 보장된 곳에서는 나를 숨길 수 있다. 또,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만연하고 우리로선 그가 정말 누구인지 알 방도가 없으니 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수구 아이>를 읽으며 나 또한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 학교에도 일방적인 소문이 따라다니던 아이가 있었고, 나는 그 아이(이하 A)와 6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짝이 되었고 시간이 지나자 나도 자연히 A와 짝이 되었다. A를 따라다니던 일방적 소문 중 하나는 A가 머리를 감지 않아서 이가 있고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는데, 짝이 되고 보니 그 소문은 거짓이 확실했다. 이전에 그 아이와 짝이었던 아이들도 분명히 A의 소문은 사실이 아님을 알았을텐데 아무 말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실은 말로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알았던 게 아닐까 싶다. 소문이 사실이 아님은 행동으로 보여줘야만 밝힐 수 있는 것이다. '나만은 그 아이를 차별하지 않았어!'라고 은근히 나를 치켜 올리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때의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 A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 그냥 A와 교실 안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복도를 같이 걷고 도서관에 함께 가서 책을 읽고 그랬던 게 다였다. 왜냐하면 A와의 시간은 재밌었고 우린 짝이었으니까. 다른 아이들이 걔랑 왜 다니냐고 물으면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A랑 다니는 게 재밌으니까. 시간이 지나자 A에게 다가오는 아이들이 생겨났고, A가 다가간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짝을 맞이했다. 그저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더 맞는 아이들과 다녔지만 같은 반에서 웃으며 인사하고 잘 지냈다.


A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지금 A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A에게 어떤 아이였을까? 그 정답을 찾아간다는 마음으로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그 아이를 따라다니던 근거 없는 소문들은 6학년이 끝날 때쯤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그 아이 마음에는 그 소문으로 인한 상처가 남아있을테다. 지금은 소식조차 알 수 없는 A의 마음에서 상처가 많이 아물었기를 바랄뿐이다.


※ 창비 <스터디 위드 X> 가제본 서평단 활동을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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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눈뜰 때 소설Y
이윤하 지음, 송경아 옮김 / 창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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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루는 어쩌면 길게, 때로는 짧게 느껴질 신기한 시간이다. 나만 해도 오늘 하루에 있었던 일을 낱말 하나(예를 들면 남산)로 축약할 수도 있고, 장편소설을 쓸 수도 있다. <호랑이가 눈뜰 때>는 주황 부족 세빈이 겪은 해태호(전함)에서의 하루-뿐만 아니라 해태호에 오기까지의 과정-를 그린 장편소설이다.


나는 소설을 좋아하지만 SF 장르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소설Y 클럽에 연달아 당첨이 된 기쁨을 뒤로 한 채, 내가 과연 이 책을 완독할 수 있을까 걱정됐다. 다행히 걱정이 무색할 만큼 나는 하루만에 이 소설을 다 읽어버렸다. 토요일 하루 동안 나는 세빈과 함께 주황 부족에 있었고 해태호에도 있었다. 나는 세빈과 다른 공간에서 같은 하루를 맞이하며 그이(세빈은 논바이너리이기 때문에 소설에서처럼 ‘그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의 이야기를 읽어갔다.


세빈은 주황 호랑이 부족의 가장 어린 호랑이령이었고, 인간의 모습과 호랑이 모습을 왔다 갔다 하며 생활한다. 주황 호랑이 부족은 부족 간의 유대가 유독 긴밀했는데, 부모와 자식 사이의 유대는 개인과 부족 사이의 유대보다 약했기 때문에 부족을 등지는 행위를 했을 때 그 개인은 부모를 비롯한 부족 전체와 연을 끊게 됐다. 주황 호랑이 부족은 ‘천 개의 세계’라는 세상의 한 부족으로, 이곳에는 호랑이 부족 외에 인간, 구미호, 천인 등 여러 종이 살고 있었다. 천 개의 세계가 아닌 곳에 사는 존재들 또한 있고, 천 개의 세계에 대항하는 적도 있으며 우주라는 광활한 곳에서 대적하며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우주를 항해하는 전함들은 각자의 이름(해태호, 창백한 번개호 등)이 있고, 이 전함들의 지휘자인 선장, 그 아래로 여러 계급(세빈이 속한 생도는 그 계급 중 가장 아래다.)이 전함을 구성하고 있다. 소설을 읽으며 작가의 전작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SF 용어들은 둘째치고 마블이나 DC 영화에서 전작을 보지 않으면 줄거리 이해에 난항을 겪듯 소위 그런 어려움이 있어서다. 심완선 SF 평론가가 남긴 편지에 작가의 전작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그 전작들을 읽는다면 천 개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 우주군이 싸우고 있는 적은 도대체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 SF에 이제 갓 입문한 나에게 이만한 호기심을 들게 한 것만으로도 나는 <호랑이가 눈뜰 때>가 잘 쓰인 소설이라고 감히 평가해본다.


소설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주황 부족과 한국 가족의 연관성이다. 주황 부족과 한국 모두 가족이 가진 의미가 크다. 한국의 가족엔 유교가 큰 영향을 미쳤다. 주황 부족은 가모장이라는 부족의 지배자가 독재에 가까운 영향력을 행사하며 가족이란 크고도 높은 울타리를 만든다. 한국과 주황 부족에서는 가족과 부족이라는 울타리가 큰 만큼 그 안에서 튀는 행동, 집단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존재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신념에 가까운 정신적 지배는 개인의 주체성을 자연히 박탈하며 각각의 구성원을 집단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게 한다. 세빈이 삼촌인 환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처음에 갈등하는 것은 가모장이 한 말에서 비롯된다. 부족을 배신하는 행동을 하지 말 것. 그것은 세빈 개인의 신념을 위태롭게 한다. 모든 행동에 정답은 없지만, 가장 정답에 가까운 행동은 내가 내 신념대로 행동했을 때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세빈은 부족이 아닌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했고 이 결과가 하순 제독(세빈의 친척)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자신에게 등을 돌린 것이라 해도 세빈은 후회하지 않았다. 세빈이 속한 우주군과 그들이 싸우고 있는 적, 우주군 안에서도 해태호와 세빈의 삼촌인 환과의 싸움. 그 누가 선이고 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세빈이 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고 나아갔다는 것에서 이 소설은 성장을 말하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까지 나는 세빈을 응원했다. 세빈은 어른이 된지 한참이나 된 나보다 더 단단한 인물이었다. 내가 아직 벗어나지 못한 가족이란 틀을 세빈은 본인의 의지를 발판 삼아 벗어났다. 어쩌면 이 소설은 세빈을 통해 도약한 나의 성장이 아닐까.

#호랑이가눈뜰때 #창비 #소설Y #소설Y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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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 종이접기 클럽 (반양장) - 천 개의 종이학과 불타는 교실 창비청소년문학 118
이종산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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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중학교의 도서부이자 종이접기 클럽 멤버인 세연, 모모, 소라. 이 세 명의 단짝친구들이 풀어가는 이야기인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은 그들이 과거로 여행한 것처럼 나를 십여년 전의 중학교 2학년 시절로 이끌었다. 중학교를 졸업한지 10년이 넘었기 때문인지 굵직한 기억들이 아닌 이상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그렇기에 내가 도서부원이었던 사실조차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2023년 풍영중학교의 도서부엔 세연, 모모, 소라 이 세 사람이 있었다면 2011년의 모 여자중학교의 도서부엔 내가 있었다.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고 (사실 내가 도서부에 가입한 게 중학교 2학년인지 3학년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도서부의 부원인지 부장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도서부였다는 것. 그 사실 하나를 떠올리자 잊고 있던 기억이 솨아아 몰려왔다. 당시 도서부 담당 선생님은 우리 학교로 발령받은 새내기 선생님이었고 국어를 담당하셨다. 나이는 생각해보면 지금 내 나이보다 어렸는데 그땐 선생님이 무척이나 어른같았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처음 선물해주신 책은 김려령 작가님의 <완득이>. 책마다 앞장에 학생 개개인에게 남기는 메시지를 써주셨는데 문구가 기억나지 않는데도 깨끗한 필체로 써주신 글귀가 흐릿하게 떠오른다. 다시, 나는 도서부 당번 책상에 앉아있다. 2층 맨 오른쪽 끝의 투명한 도서실 문을 열면 그 바로 오른쪽에 있던 도서실 대출반납 책상. 그곳은 각 시간마다 당번이던 도서부원이 대출이나 반납을 도와주거나 책을 정리하거나 하며 자리를 채웠다. 뭉터기로 떠오르는 기억이 있음에도 그것을 자세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내가 종종 그 자리에 앉아 친구와 수다를 떨고 반납된 책을 정리했던 기억은 또렷하다. 그땐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책을 지금만큼 좋아한 것도 아니면서 도서부엔 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 건 세연이가 소라를 동경하는 마음처럼 당시 내가 동경했던 친구(그 아이는 책을 굉장히 좋아하고 대식가처럼 책을 마음으로 먹으며 양분삼던 친구다)를 조금이라도 따라가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거다.

도서부에 얽힌 본인의 이야기를 쓰다보니 너무 장황해졌다. 그때는 세연, 모모, 소라 삼총사의 경험처럼 환상적인 일이 아니었어도 갈색빛이 감도는 고요한 도서실이 주는 이미지 자체로서 이미 환상 속에 들어와있는 기분이었다. 그때의 기억 덕분에 굳이 책을 빌리는 목적이 아니어도 도서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도서관, 책엔 항상 친구들이 있었다.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서로가 읽은 책을 소개하거나 책을 선물하거나. 우리는 책으로 이어지고 통하고 있었다.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에 나오는 ‘일심상조불언중’이란 말은 중학교 한문수업 때 고어를 해석했던 시간을 떠오르게 하며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나중에 이 뜻을 알고 나니 중학교 시절부터 내 곁에 계속 머물러주는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한마음으로 말이 없는 가운데 서로 비추어 주는 사이. 친구란 그런 관계를 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세연이의 말에 동감하게 된다. 과부하 상태에 빠진 것도 모른 채 지내다가 어제 기어이 내 안에서 무언가가 폭발했는데 이것을 멈춰주고 덜어내준 사람이 바로 중학교 친구였다. 1937년의 풍영중학교로 향하는 세연이에게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용감하다.’며 응원을 건네는 소라처럼 어제의 나는 세연이가, 내 친구는 소라가 되어 우리만의 응원을 해주었다. 덕분에 오늘의 나는 어제처럼 여전히 힘든 상황에서도 무언가에 든든히 업혀 있는 것처럼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소설Y 클럽의 첫 미션인 인증을 위해선 종이접기를 해야 했다. 미션이었던 팬더와 단풍, 물고기, 새 접기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종이접기의 세계가 이리도 다채롭구나 느끼면서 한편으론 소설 속에서 팬더가 세연이의 길잡이를 해주고 단풍이 풍영중학교를 상징하는 것 등 소설의 숨은 묘미를 찾는 재미가 있었다. 그처럼 도서부가 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면, 종이접기 클럽은 사건을 해결하는 실마리이자 중요한 상징이 된다. 종이학을 접어 달라는 종이학 귀신(윤경희 선생님)과 그와 함께 보이는 어떤 여자아이(수이)가 붉은 기운(거짓말 탐지)을 느낄 수 있는 세연이에게 나타난 이유는 약속을 이어나갈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약속은 수이와 세연, 윤경희선생님 세 사람의 개인적인 약속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일제강점기를 겪었던 과거의 우리(수이, 삼정, 혜민, 윤경희선생님 등)를 잊지 않겠다는 현대의 우리(세연, 모모, 소라 등)의 약속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우리가 계속해서 기억해야 할 것은 현재를 있게 한 과거의 우리다. 책의 끝에 다다르면 세연이는 붉은 기운에 휩싸인 삼정이와 아이들을 일본군에게서 재치있게 구해낸다. 책엔 세연이의 이러한 행동이 역사를 바꾸었는지, 혹은 사람들 개인의 인생을 변화시켰는지 서술되어 있지 않다. 또, 세연이가 이들을 구해내지 않았어도 역사적, 개인적으로 지금과 달랐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세연이의 행동은 과거와 현재를 연대하게 만드는 용기있는 행동이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태도이자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은 역사의식이 사라져가고 인간 불신이 기본이 되는 현대사회에 따뜻한 연대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 아닐까.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은 나의 전성기(?)였던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따스한 소설이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들이 대부분 중학교 시절에 갖추어졌고, 그때의 사람들이 지금껏 곁에 남아 내가 나로 있을 수 있게 버팀이 되어 주었다. 누구에게나 힘든 지금이다. 지금을 버티게 하는 건 어쩌면 다가올 미래보다는 지나온 어제인지도 모르겠다.


#도서부종이접기클럽 #창비 #소설Y #소설Y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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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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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우없다.’는 말을 요즘 꽤 자주 쓴다. 누구에게나 기본적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경우 없는 경우를 자주 마주한다. <경우 없는 세계>란 분명, 내가 겪은 것처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계를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출 청소년, 학교밖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우리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대학교까지 포함하면 그 햇수는 늘어나겠지만, ‘학생은 학생답게’ 지내야 한다는 말은 보통 이 초중고 12년 동안에 많이들 들었을 것이다. 공부머리쪽은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던 어렸던 시기에는 두들겨맞는 수준으로 나에게 핀잔이 날아왔다. 집이 싫었다. 그러면 집을 나가면 된다. 선택지가 있음에도 집에 계속 머무른 것은 용기의 문제였을까, 아니면 집을 나가면 더 고생한다는 암묵적인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차라리 부담스러운 기대를 받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을 땐, 스스로가 한심해서 속상했다. <경우 없는 세계>의 ‘인수’에게 초장에 안타까움을 느낀 건 이런 이유 때문이겠다.


소설에선 10대와 30대의 인수가 함께 등장한다. 사람의 본질은 그대로겠으나 30대의 인수는 10대를 지나오며 후회했던 것들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의 기억 속 A라는 인물을 떠올리게 한 ‘이호’는 과거의 자신처럼 가출 청소년이다. 이호는 일부러 차에 뛰어들어 다친 다음 운전자에게 받아낸 돈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인수가 이호를 모른척할 수 없던 이유에도 분명 A가 있었다.


이호를 자신의 집에서 기꺼이 지내도록 한 30대의 인수를 만든 것은 10대 시절에 만난 친구 ‘경우’다. 경우 또한 가출 청소년이었으나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훔치거나 부당하게 얻은 돈으로 생활하지 않았다. 가게에서 사람들의 신임을 받으며 생활비를 떳떳하게 벌었다. 똑같이 먹고 살기 힘든 입장에서 경우가 정도를 잃지 않은 것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수를 포함한 성연, 지민 등의 아이들은 살아가고 있었으나 그저 시간에 삶에 자신을 맡겨 수동적으로 끌려가고 있었을 뿐이다. 다른 아이들이 시간과 삶의 존재를 위한 수단이 되었다면 경우는 달랐다. 경우는 언젠가 엄마와 함께 살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떳떳하고 깨끗한 삶을 만들기 위해 주체적으로 살아간 경우. 이런 그가 인수에겐 눈부실 수밖에 없다. 그때부터 경우는 인수 삶의 기준이 되었다.


‘경우 있는 세계’에서 경우를 닮아가려던 인수는 다양한 사건에 휘말린다. (휘말렸다기에는 본인이 선택한 것이지만)악덕 사장에게 열정페이를 받아가며 의심없이 무보수로 일한 것, 같이 생활하는 여성 가출 청소년의 성매매 현장을 급습하여 성매수자에게 돈을 받아내는 것에 가담하는 등 경우라면 하지 않을 일들에 스스로 가담하게 된다.


인수는 점점 살이 빠진다. 20kg이나 빠지며 홀쭉해지지만 마음의 허기는 커져만 간다. 자신이 집을 나오게 된 계기인 아버지. 인수는 그를 마주하기 싫지만 어떻게든 가족이 자신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가족의 삶에 자신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남기고 싶은 욕구에 몇 번씩 집을 찾아간다. 집에는 자신의 대체재인 (대체라기엔 인수보다 더 대접받으며 사는) 고양이가 살고 있었다. 마주한 현실에 허기는 커져만 가고, 인수는 가출한 동료들이 있는 ‘우리집’으로 돌아간다. ‘우리집’은 주영이라는 인물이 소유한 반지하방이다. 정작 집주인인 주영은 밖을 배회하며 살았고, 그 집은 잘 곳 없는 가출 청소년들이 오고가며 생활하는 터전이 되었다. ‘우리’라는 말이 주는 친근감과 소속감에 비해 ‘우리집’에 사는 아이들에게 유대감은 없었다. 그저 생존을 위해 ‘우리집’에 머무는 아이들. 인수에게도 ‘우리집’ 현관문에 붙은 구름 모양의 ‘WELCOME! 행복한 우리집’ 스티커는 거슬려 눈에 밟힌다. 단 한 명, 경우만이 더럽고 쓰레기가 넘치는 ‘우리집’을 청소하고 그곳에서 요리도 하며 생활한다. 살아간다는 것과 생활하는 것이 주는 미묘한 차이를 경우가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일상은 앞서 언급했던 A의 죽음으로 인해 끝을 맞는다. A 또한 누구나 올 수 있는 ‘우리집’에 몇 번씩 머물렀지만 더럽고 냄새나는 외관으로 인해 다들 그를 멀리했다. 인수는 예전에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A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들었다. 30대의 인수가 만난 이호처럼 A는 움직이는 차에 몸을 들이받으며 운전자에게 돈을 뜯어냈다. 생존 방식이라기엔 너무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한 방법이었다. 그날도 A는 차에 몸을 내밀었지만 운전자는 멈추지 않고 A를 그대로 밟고 지나갔다. 뺑소니였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것처럼 ‘우리집’을 찾은 A는 분명 길바닥에서 쓸쓸하게 죽기는 싫었을 것이다. 죽더라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길 바라지 않았을까. 바깥에서 상처를 입고 들어왔지만 결국 ‘우리집’에서 죽은 A. 그의 몸에 남아있는 흔적들은 가출 청소년이라는 ‘우리집’ 멤버들의 취약성과 더불어 그들이 폭력적일 것이라는 편견에 맞물렸다. 경찰은 분명 ‘우리집’ 아이들이 A를 때려서 살해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모두가 A의 죽음 이후의 삶을 두려워했다. 이 모든 두려움은 인수의 결정적 한 마디로부터 시작됐다.
“믿어줄까? 안 믿어줄 것 같아. 우리가 죽였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


결국 몇 명의 아이들이 주도하여 A의 시체를 유기한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경우가 있었다. 어쩌면 경우는 A가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우리집’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엄마와 함께 하는 삶은 끝났을 것이라고 예감했을테다. 아이들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상황도 예상했을까? 시체를 유기하기로 했을 때 아이들은 경우가 허튼 짓(아마도 신고)을 하지 못하도록 그를 데리고 갔으나, 결국 경우에게 시체 유기 장소를 알려주는 게 되었다.


얼마가지 않아 모두가 재판에 회부되었다. 경우가 자수했기 때문이다. 인수는 아버지를 통해 ‘우리집’ 아이들 중 유일하게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다. 변호사는 인수가 무죄를 받을 수 있도록 질문을 퍼붓는다.
“그래. 그럼 네가 그애 시신을 묻자고 했니?”
인수는 생각했다. ‘내가, 그랬나? 그런 적은 없었다. 나는 다만,’


아마도 뒤에 올 말은 ‘경찰에 신고하려는 경우를 말리고 다른 아이들의 약점을 끌어올려 시체를 묻을 수밖에 없도록 유도했다.'는 것일테다. 시체를 직접 묻지 않았어도, 인수가 그때의 어수선했던 ‘우리집’ 분위기를 전환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로인해 결국 A의 시신은 땅에 묻혔다.


인수는 무죄를 받았다. 경우는 이 일을 최초로 신고하여 자백한 것을 감안하여 8호 처분을 받았다. 그날은 엄마와 함께 살기로 한 경우 삶의 목표가 끝나는 날이기도 했다.


A의 시체를 묻고 난 후로 인수는 귀신을 본다. 몸에는 알 수 없는 추위가 몰려들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가 된다. A가 자신을 묻도록 유도한 인수를 저주했다는 오컬트적 사고보다는 인수 본인의 죄책감 때문에 귀신을 보게 됐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A는 죽었고 그런 A를 계속 떠올리며 자신의 죄를 상기하기 위해서는 이미 죽은 존재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경우 없는 세계>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경우는 죽었다. 경우는 오토바이로 치킨을 배달하다가 차에 치여 즉사했다. 인수는 경우가 죽은 후에도 경우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경우와 가장 친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오래 같이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경우가 집을 구하고, 그애의 소원대로 어머니와 함께 지내게 되더라도 그때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두운 마음 한편에는 저렇게 가식적이고 답답한 애는 도무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고, 그애에게 과하게 의미부여를 하는 나를 부끄럽게 여기며 경우에게 정을 떼기 위해 마음속으로 고군분투했다.’


분명, 경우 없는 세계를 슬퍼하고 그의 죽음이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경우 없는 세계를 살아가는 30대의 인수는 이호를 만난다. 그가 A처럼 죽음을 맞지 않도록, 연약한 삶을 지지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수는 자신의 죄를 덜 수 있을까. 다만 그는 기회를 바랐다.
‘부디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지기를. 햇볕을 쬐면 정화되기를. 경우 없는 세상에서도.’


<경우 없는 세계>를 읽으며 떠오른 동창이 있다. 사실 동창이라 하기엔 애매한 것이 그 아이는 우리 학교에 3개월 정도만 있다가 다른 학교로 다시 전학갔고, 계속 그 아이와 연락을 이어오던 몇명을 통해 그 아이가 가출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반만 알고 있던 그의 가출 소식은 전교로 금세 퍼졌고, 전학을 올 때부터 심상치 않았던 그에 대한 소문은 그가 학교에서 사라지자 더 무성해졌다. 나도 그랬듯, 중학교 2학년이라는 나이는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소위 노는 아이가 되는 것이 더 멋지다고 생각하는 시기였다. 전체가 정해놓은 규율의 장에서 혼자 균열을 일으켜 틈을 만드는 그 아이의 존재는 멋져보이기까지 했다. 미성년자임에도 담배와 술이 익숙하고, 성인 남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그때는 우리와 다른 경지에 있는 존재로 느껴졌다. 그때로부터 십여년이 지난 지금, 그 아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나는 모른다. 한참 잊고 있던 한 사람이 떠오른 게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그 아이에게도 경우같은 아이가 곁에 있었기를, ‘경우 없는 세상’에서도 그가 무사히 살고 있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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