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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 종이접기 클럽 (반양장) - 천 개의 종이학과 불타는 교실 ㅣ 창비청소년문학 118
이종산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평점 :
백 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중학교의 도서부이자 종이접기 클럽 멤버인 세연, 모모, 소라. 이 세 명의 단짝친구들이 풀어가는 이야기인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은 그들이 과거로 여행한 것처럼 나를 십여년 전의 중학교 2학년 시절로 이끌었다. 중학교를 졸업한지 10년이 넘었기 때문인지 굵직한 기억들이 아닌 이상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그렇기에 내가 도서부원이었던 사실조차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2023년 풍영중학교의 도서부엔 세연, 모모, 소라 이 세 사람이 있었다면 2011년의 모 여자중학교의 도서부엔 내가 있었다.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고 (사실 내가 도서부에 가입한 게 중학교 2학년인지 3학년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도서부의 부원인지 부장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도서부였다는 것. 그 사실 하나를 떠올리자 잊고 있던 기억이 솨아아 몰려왔다. 당시 도서부 담당 선생님은 우리 학교로 발령받은 새내기 선생님이었고 국어를 담당하셨다. 나이는 생각해보면 지금 내 나이보다 어렸는데 그땐 선생님이 무척이나 어른같았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처음 선물해주신 책은 김려령 작가님의 <완득이>. 책마다 앞장에 학생 개개인에게 남기는 메시지를 써주셨는데 문구가 기억나지 않는데도 깨끗한 필체로 써주신 글귀가 흐릿하게 떠오른다. 다시, 나는 도서부 당번 책상에 앉아있다. 2층 맨 오른쪽 끝의 투명한 도서실 문을 열면 그 바로 오른쪽에 있던 도서실 대출반납 책상. 그곳은 각 시간마다 당번이던 도서부원이 대출이나 반납을 도와주거나 책을 정리하거나 하며 자리를 채웠다. 뭉터기로 떠오르는 기억이 있음에도 그것을 자세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내가 종종 그 자리에 앉아 친구와 수다를 떨고 반납된 책을 정리했던 기억은 또렷하다. 그땐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책을 지금만큼 좋아한 것도 아니면서 도서부엔 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 건 세연이가 소라를 동경하는 마음처럼 당시 내가 동경했던 친구(그 아이는 책을 굉장히 좋아하고 대식가처럼 책을 마음으로 먹으며 양분삼던 친구다)를 조금이라도 따라가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거다.
도서부에 얽힌 본인의 이야기를 쓰다보니 너무 장황해졌다. 그때는 세연, 모모, 소라 삼총사의 경험처럼 환상적인 일이 아니었어도 갈색빛이 감도는 고요한 도서실이 주는 이미지 자체로서 이미 환상 속에 들어와있는 기분이었다. 그때의 기억 덕분에 굳이 책을 빌리는 목적이 아니어도 도서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도서관, 책엔 항상 친구들이 있었다.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서로가 읽은 책을 소개하거나 책을 선물하거나. 우리는 책으로 이어지고 통하고 있었다.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에 나오는 ‘일심상조불언중’이란 말은 중학교 한문수업 때 고어를 해석했던 시간을 떠오르게 하며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나중에 이 뜻을 알고 나니 중학교 시절부터 내 곁에 계속 머물러주는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한마음으로 말이 없는 가운데 서로 비추어 주는 사이. 친구란 그런 관계를 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세연이의 말에 동감하게 된다. 과부하 상태에 빠진 것도 모른 채 지내다가 어제 기어이 내 안에서 무언가가 폭발했는데 이것을 멈춰주고 덜어내준 사람이 바로 중학교 친구였다. 1937년의 풍영중학교로 향하는 세연이에게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용감하다.’며 응원을 건네는 소라처럼 어제의 나는 세연이가, 내 친구는 소라가 되어 우리만의 응원을 해주었다. 덕분에 오늘의 나는 어제처럼 여전히 힘든 상황에서도 무언가에 든든히 업혀 있는 것처럼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소설Y 클럽의 첫 미션인 인증을 위해선 종이접기를 해야 했다. 미션이었던 팬더와 단풍, 물고기, 새 접기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종이접기의 세계가 이리도 다채롭구나 느끼면서 한편으론 소설 속에서 팬더가 세연이의 길잡이를 해주고 단풍이 풍영중학교를 상징하는 것 등 소설의 숨은 묘미를 찾는 재미가 있었다. 그처럼 도서부가 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면, 종이접기 클럽은 사건을 해결하는 실마리이자 중요한 상징이 된다. 종이학을 접어 달라는 종이학 귀신(윤경희 선생님)과 그와 함께 보이는 어떤 여자아이(수이)가 붉은 기운(거짓말 탐지)을 느낄 수 있는 세연이에게 나타난 이유는 약속을 이어나갈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약속은 수이와 세연, 윤경희선생님 세 사람의 개인적인 약속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일제강점기를 겪었던 과거의 우리(수이, 삼정, 혜민, 윤경희선생님 등)를 잊지 않겠다는 현대의 우리(세연, 모모, 소라 등)의 약속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우리가 계속해서 기억해야 할 것은 현재를 있게 한 과거의 우리다. 책의 끝에 다다르면 세연이는 붉은 기운에 휩싸인 삼정이와 아이들을 일본군에게서 재치있게 구해낸다. 책엔 세연이의 이러한 행동이 역사를 바꾸었는지, 혹은 사람들 개인의 인생을 변화시켰는지 서술되어 있지 않다. 또, 세연이가 이들을 구해내지 않았어도 역사적, 개인적으로 지금과 달랐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세연이의 행동은 과거와 현재를 연대하게 만드는 용기있는 행동이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태도이자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은 역사의식이 사라져가고 인간 불신이 기본이 되는 현대사회에 따뜻한 연대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 아닐까.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은 나의 전성기(?)였던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따스한 소설이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들이 대부분 중학교 시절에 갖추어졌고, 그때의 사람들이 지금껏 곁에 남아 내가 나로 있을 수 있게 버팀이 되어 주었다. 누구에게나 힘든 지금이다. 지금을 버티게 하는 건 어쩌면 다가올 미래보다는 지나온 어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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