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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눈뜰 때 ㅣ 소설Y
이윤하 지음, 송경아 옮김 / 창비 / 2023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루는 어쩌면 길게, 때로는 짧게 느껴질 신기한 시간이다. 나만 해도 오늘 하루에 있었던 일을 낱말 하나(예를 들면 남산)로 축약할 수도 있고, 장편소설을 쓸 수도 있다. <호랑이가 눈뜰 때>는 주황 부족 세빈이 겪은 해태호(전함)에서의 하루-뿐만 아니라 해태호에 오기까지의 과정-를 그린 장편소설이다.
나는 소설을 좋아하지만 SF 장르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소설Y 클럽에 연달아 당첨이 된 기쁨을 뒤로 한 채, 내가 과연 이 책을 완독할 수 있을까 걱정됐다. 다행히 걱정이 무색할 만큼 나는 하루만에 이 소설을 다 읽어버렸다. 토요일 하루 동안 나는 세빈과 함께 주황 부족에 있었고 해태호에도 있었다. 나는 세빈과 다른 공간에서 같은 하루를 맞이하며 그이(세빈은 논바이너리이기 때문에 소설에서처럼 ‘그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의 이야기를 읽어갔다.
세빈은 주황 호랑이 부족의 가장 어린 호랑이령이었고, 인간의 모습과 호랑이 모습을 왔다 갔다 하며 생활한다. 주황 호랑이 부족은 부족 간의 유대가 유독 긴밀했는데, 부모와 자식 사이의 유대는 개인과 부족 사이의 유대보다 약했기 때문에 부족을 등지는 행위를 했을 때 그 개인은 부모를 비롯한 부족 전체와 연을 끊게 됐다. 주황 호랑이 부족은 ‘천 개의 세계’라는 세상의 한 부족으로, 이곳에는 호랑이 부족 외에 인간, 구미호, 천인 등 여러 종이 살고 있었다. 천 개의 세계가 아닌 곳에 사는 존재들 또한 있고, 천 개의 세계에 대항하는 적도 있으며 우주라는 광활한 곳에서 대적하며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우주를 항해하는 전함들은 각자의 이름(해태호, 창백한 번개호 등)이 있고, 이 전함들의 지휘자인 선장, 그 아래로 여러 계급(세빈이 속한 생도는 그 계급 중 가장 아래다.)이 전함을 구성하고 있다. 소설을 읽으며 작가의 전작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SF 용어들은 둘째치고 마블이나 DC 영화에서 전작을 보지 않으면 줄거리 이해에 난항을 겪듯 소위 그런 어려움이 있어서다. 심완선 SF 평론가가 남긴 편지에 작가의 전작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그 전작들을 읽는다면 천 개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 우주군이 싸우고 있는 적은 도대체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 SF에 이제 갓 입문한 나에게 이만한 호기심을 들게 한 것만으로도 나는 <호랑이가 눈뜰 때>가 잘 쓰인 소설이라고 감히 평가해본다.
소설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주황 부족과 한국 가족의 연관성이다. 주황 부족과 한국 모두 가족이 가진 의미가 크다. 한국의 가족엔 유교가 큰 영향을 미쳤다. 주황 부족은 가모장이라는 부족의 지배자가 독재에 가까운 영향력을 행사하며 가족이란 크고도 높은 울타리를 만든다. 한국과 주황 부족에서는 가족과 부족이라는 울타리가 큰 만큼 그 안에서 튀는 행동, 집단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존재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신념에 가까운 정신적 지배는 개인의 주체성을 자연히 박탈하며 각각의 구성원을 집단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게 한다. 세빈이 삼촌인 환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처음에 갈등하는 것은 가모장이 한 말에서 비롯된다. 부족을 배신하는 행동을 하지 말 것. 그것은 세빈 개인의 신념을 위태롭게 한다. 모든 행동에 정답은 없지만, 가장 정답에 가까운 행동은 내가 내 신념대로 행동했을 때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세빈은 부족이 아닌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했고 이 결과가 하순 제독(세빈의 친척)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자신에게 등을 돌린 것이라 해도 세빈은 후회하지 않았다. 세빈이 속한 우주군과 그들이 싸우고 있는 적, 우주군 안에서도 해태호와 세빈의 삼촌인 환과의 싸움. 그 누가 선이고 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세빈이 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고 나아갔다는 것에서 이 소설은 성장을 말하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까지 나는 세빈을 응원했다. 세빈은 어른이 된지 한참이나 된 나보다 더 단단한 인물이었다. 내가 아직 벗어나지 못한 가족이란 틀을 세빈은 본인의 의지를 발판 삼아 벗어났다. 어쩌면 이 소설은 세빈을 통해 도약한 나의 성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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