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시탐탐 - 숨은 차별을 발견하는 일곱가지 시선 ㅣ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4
김보통 외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창비인권만화 시리즈 중 <십시일反>을 고등학생 시절 읽고 생활기록부에 독서 기록을 남긴 기억이 있다. 인권에 관심을 두고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책이라, 그 후로 창비인권만화가 나올 때마다 찾아 읽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 소식이 끊기더니 11년 만에 신작이 나왔다. 나는 고등학생에서 성인이 되었고, 어느덧 서른을 앞두고 있다. 10년 사이 우리 사회의 차별과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배척하는 일이 일상처럼 되어버린 현실에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또한, 살아가기 힘든 시대다. 경제와 사회 전반적으로 병든 상황 속에서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고, 연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뉴스에 등장하는 사건들에 대해서조차 건강하게 의견을 나누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호시탐탐>은 우리가 주목하고 해결해야 할 인권 문제 일곱 가지를 다루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최후의 보호막>은 용사와 마왕, 마법이 존재하는 판타지 장르지만, 그 속에 현실을 담고 있다. 용사가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에테르를 채굴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전직 용사들이다. 마왕과의 싸움에서 큰 부상을 입어 더 이상 용사로서 활약할 수 없는 그들이, 에테르 채굴 노동자가 된 것이다. 동료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는 노동 환경, 그저 현실을 살아내기 바쁜 동료들,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상부와 회사. 마법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할 것만 같은 상상과는 달리, 판타지 세계 역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후의 보호막> 속 노동자들은 회사를 돌아가게 하는 부품일 뿐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내가 주문한 택배가 문 앞에 와 있는 것은 결코 기계가 한 일이 아니다. 그 뒤에는 사람이 있다. 에테르를 얻고 내가 원하는 물건을 간단히 버튼 하나로 받아들이는 그 단순한 절차 뒤에도 복잡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청첩장 도둑>은 동성애를 다루고 있지만, 단지 동성애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가족에 대해 묻고 있다.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동성애를 찬반의 문제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우리가 받아들이고 허용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일인데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느껴진다.
<섬>은 집주인이 월세를 올린다는 말에 놀란 주인공이 시골로 이사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서울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물가는 치솟고, 좁은 집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것은 결코 편리하지 않다. 그러나 시골이 정서적으로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골에서 살다 보면 그 ‘끈끈함’이 때때로 부담이 되기도 한다. 적은 인간관계 속에서 사생활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언제 결혼할 건지, 어디로 취업할 건지 묻는 질문들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힌다. 그런 이유로 도시로 이사 온 것이다. 하지만 도시에도 또 다른 문제들이 있다. 월세, 물가, 인구 밀도 등. 주인공은 시골에서 자연스레 살다가 도시에 돌아오면서 2040년의 현실을 맞닥뜨린다. 도시는 빠르게 움직여야만 유지된다.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살다 보면 순식간에 세월을 놓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언제까지 내가 도시에 살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도시만 살아남고 시골은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나는 과연 그곳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수수께끼>는 난생처음 듣는 수수께끼 질문으로 시작된다. 정답을 보기 전에 맞춰보려 했지만 도저히 맞출 수 없어서 다음 컷을 보니 ‘돌봄’이 정답이었다. 이 이야기는 돌봄이 ‘상품’, ‘엄마’, ‘도리’ 같은 이름으로 불려왔음을 보여준다. ‘돌봄’이 필요할 때, 나는 아빠보다 엄마를 찾았다. 아빠 집안 사람들도 며느리이자 동서이자 형님인 엄마를 찾았다. '우리가 이 무게를 조금만 더 나누어 뭉툭하게 만들 수 있는 힘(145쪽)'을 위해서는 돌봄이 한 사람의 희생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돌봄이 한 사람의 몫이 되지 않도록, 사회와 제도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폭염 속을 달리는 방법>은 2035년 4월 첫 열대야가 찾아오는 시점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고1 은호와 장래에 대해 고민하는 세진이는 각자의 시작점에서 출발해, '기후'라는 공통된 목적지에 도달하며 고민을 해결한다. 작가는 ‘행복이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요?(176쪽)'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으로 ‘안정적인 기후에서 다양한 동식물 그리고 사람들과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176쪽)’이라고 제시한다. 안정적인 기후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이미 기후 재난이 우리 현실의 일부가 되어 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작은 실천을 시작해야 한다.
<끄나빠>는 인도네시아어로 ‘왜’라는 뜻이다. 나는 평소 ‘왜’라는 질문을 잘 쓰지 않아서, ‘왜’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는 사람들이 신기하기도 했다. 닐루처럼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신기했지만, 막상 내가 ‘왜’라는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어려웠다. 선생님들의 강요로 밴드를 결성한 닐루, 노아, 지후, 그리고 고문이 된 교생 은지선생님은 서로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한마음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모였다. 그들은 번역 어플을 사용해 대화하며, 어느 순간 서로의 마음을 열고 소통하게 된다. 그들이 만든 음악은 대회에서는 엉망으로 들렸을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세상을 향해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한 첫 경험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과 하기 싫은 활동을 함께 하면서 자아를 찾는 주인공들의 성장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참교육>은 나에게 가장 인상 깊고 큰 도움이 된 이야기였다. 아이들이 ‘참교육’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마다, 그 의미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달라 충격을 받았다. ‘참교육’이 이제는 또 다른 폭력을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걸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학교 폭력 가해자의 신상이 공개되면 사람들은 열광한다. '불합리한 상황을 봐버린 자신들의 답답함을 누군가 풀어주길 바랐던(228쪽)' 것일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불합리한 상황을 해결하지 못해 답답하고 죄책감이 들었다. 신상 공개는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소화제를 먹은 듯 내 속이 시원해질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피해자를 잊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가 신상 공개를 원하지 않을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열광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여전히 그 방법에 대해선 고민이 필요하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다우의 친구(학교 폭력 피해자)는 가해자 아이들을 '참교육'해줄 친구보다는 자신의 학창 시절이 외롭지 않게, 곁에 함께 있어줄 친구를 바라지 않았을까(232쪽). 다우가 자신의 행동을 참교육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피해자인 친구를 향해 함께 있어줄 수 있도록,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행동할 수 있도록 교사로서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창비인권만화 #호시탐탐 #인권 #북스타그램 #최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