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청춘의 문장들](220p) - 김연수

나는 노예라고 하더라도 평생 한 가지 일만 반복해서 할 수 있다면 죽는 자리에서 어떤 식으로든 깨달음을 얻으리라고 믿는 사람이다. 떡볶이라 하더라도 평생에 걸쳐서 먹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깨달음은 들게 될 것이다. 나는 떡볶이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변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처음에는 달콤했지만, 이내 매워졌다가는 결국 쫄깃쫄깃해졌다, 뭐 그런 식의 맛의 변천사를 말할 생각은 아니다. 우리 얘기를 할 생각이다. 우리. 떡볶이를 사먹는 우리 말이다.

지난 4년간 나는 술에 취해서 집에 들어오는 길에 늘 원당 시내에 있는 분식점에 들러 떡볶이를 샀다. 술을 마시고 한 시간에 걸쳐 버스나 지하철이나 택시를 타고 돌아오다 보면 필연적으로 배가 고프게 마련인데, 그때 떡볶이를 먹으면 안성맞춤이었다. 원래는 신촌 전철역 일대의 떡볶이 맛을 제일 좋아하긴 하지만, 신촌을 지날 때는 배가 그다지 고프지 않은 데다가 떡볶이를 사들고 버스에 오르면 냄새가 나 다른 사람의 위장을 자극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는 그 집에서만 떡볶이를 사먹기 시작했다. 대단한 맛은 아니다. 떡볶이에 포함된 여러 맛 중에서 씁쓸한 맛이 제일 강한 분식점 스탠더드 떡볶이일 뿐이다. 매운 맛도 때로 감미로울 수 있다는 식의 철학적인 느낌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처음 그 집에서 떡복이를 샀을 때, 내게 떡볶이를 포장해준 사람은 고등학교에 다니던 그 집의 딸이었다. 교복 위에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으니 다른 사람에게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나 같은 사람마저도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때 나는 읽어야 할 책이 잔득 들어 있는 불룩한 가방을 멘 잡지사 기자였다가, 또 한때는 시장에 간 아내를 기다리던 차 안에서 이제 더이상 원고를 보내지 않아도 좋다는, 어느 백과사전회사의 일방적인 계약 중단 통고를 받고 살아갈 일이 막막해 절망하던 전업작가였다가, 또 한때는 소설을 위해 죽을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굶어죽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며 새 직장, 파티션이 쳐진 책상에 혼자 앉아서는 일주일 내내 책상 맞은편에 붙은 연예인 브로마이드만 하염없이 바라보던 과장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이제는 더이상 교복을 입지 않고 있었다. 그 아이는 학교를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집안의 사업을 도맡기 시작했다. 낮이나 밤이나 가게를 지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술에 취한 내가 들어가는 밤에는 꼭 그 아이가 장사를 했다. 처음 얼마간은 부모들이 도와주는가 싶더니 그 아이 혼자만 남아서 말라붙는 떡볶이 판에 물을 붓고 튀김용 기름의 온도를 맞춰놓는 일이 잦아졌다. 삶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 즈음에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만은 아닐 테지만, 나는 서서히 일하는 만큼만 돈을 받는 세계에 익숙해져갔다. 이 말은 곧 하루종일 일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가끔 술을 마시게 되면 고주망태가 됐다. 그 지경이었으면서도 나는 꼭 그 집에 들러 떡볶이를 샀다. 마지막 남은 떡볶이일 때도 많았고 떡볶이가 다 떨어져 그냥 돌아서는 일도 있었다. 안됐다. 꿈도 많을 텐데. 혼자서 일하는 그 아이를 두고 돌아설 때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 아니는 스무 살이거나 스물한 살이 아니겠는가. 벌써부터 밤 2시까지 일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세상 살아가려면 힘든 일이 많을 텐데. 지금은 친구들과 마음껏 밤거리를 활개치고 다녀도 부족할 텐데. 제 코가 석자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손님이 찾아오면 순대를 잘라야 하고 튀김도 기름에 넣어야 하고 떡볶이에 뜨거운 물도 부어야 하는 등, 두 손을 모두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 아이는 휴대폰을 목에 걸고 오른 쪽 귀에 이어폰을 낀 채 장사를 했다. 한 번은 그 앞에 서서 비틀 대며 떡볶이를 먹는데, 그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대충 내용을 들어보니 군대에 간 남자친구가 취침점호가 끝난 뒤, 공중전화로 걸어온 전화였다. 힘들어죽겠다. 보고 싶다. 뭐, 군대에 설치된 통신망을 통해 전해오는 표현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 실질적인 내용이야 다 그런 게 아니겠는가. 그 아이는 때로 달래기도 하고 때로 다그치기도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어휴, 조금만 지나면 다 나아지겠지. 원래 처음에는 다 그렇다잖아˝ ˝그래, 휴가 나오면 내가 사줄게˝, 고개를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하고 그 아이가 그런 말을 내뱉었다. 그 통화 내용을 들으며 떡볶이 한 그릇을 먹는 동안, 나는 위로받았다. 조금만 지나면 다 나아지겠지. 그렇겠지.

여전히 술에 취하면 나는 그 가게의 떡볶이를 즐긴다. 내가 먹어본 최고의 떡볶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떡볶이에 포함된 여러 맛 중에서 씁쓸한 맛이 제일 강한 분식점 스탠더드 떡볶이일 뿐이다. 하지만 그 집은 내 인생의 맛집이랄 수 있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교복 차림의 여고생이었던 그 아이는 이제 이십대 중반으로 넘어가고 있다. 맛과는 무관하게 떡볶이며 튀김이며 순대를 다루는 솜씨는 매우 탁월해졌다. 어떻게 무엇으로 바뀌든 바뀌어 간다는 것, 그게 바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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