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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로하는 그림 - 나와 온전히 마주하는 그림 한 점의 일상
우지현 지음 / 책이있는풍경 / 2015년 4월
평점 :
나를 위로하는 그림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 봤습니다. 못오신 분들게 스팸을 함 날려봅니다. ㅋㅋ
나를 위로하는 그림/ 우지현/ 책이 있는 풍경/ 20150427
내가 고른 책속의 한 줄과 감상
(4) 프롤로그
세상은 눈물을 모이게 했고 그림은 눈물을 떨어지게 했다.세상으로부터 도
피하고 싶을 때마다 그림을 보며 그 시간을 버텼다.
; 어깨가 축 늘어질 때가 있습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무기력해질대로 무기력해져 있을 때 무언가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문든 생각해 보게 합니다. 저는 저를 누구보다 더 잘 아는 내 속의 자아인 내가 "괜찮아!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 뭐!"하거나 "기운내!" 한 마디일 수 있겠지만 이 글의 저자는 그 대상이 그림이라고 합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다독이는 것 같습니다. 하나의 작품으로 그림이 우리의 눈에 보여질 때 그 것은 그저 평면적으로 보이는 그 화면이 전부가 아닌 것 같습니다. 화가가 그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짧게는 몇 시간에서 몇 년이란 시간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구도를 잡고, 붓을 잡고 그 현상을 대상화하기 위해 어떤 경우 인고의 시간을 감내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의 물감을 짜 내려 튜브를 이리저리 쥐어 짜듯한 과정을 거쳐 결국 토해내는 마지막 숨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 모든 것이 용융되고 작품으로 승화되어 명화의 경우처럼 몇 백년에서 수천년에 이르기까지 후대에게 전해져 우리가 이를 감상하고 평가하기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그림 하나로 인해 작가가 말하는 위로와 격려, 새로운 힘을 얻게되고 가슴이 따뜻해지며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은 크게 4가지의 주제로 구분을 지어 놓았습니다.
1. 일상 - 그림처럼 머물고 싶은 날
ㅇ 미술관 느리게 걷기
(68)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는 니체의 말처럼, 걷는 일은 사유의 명상, 자유와 기쁨, 위로와 용기의 원천이 된다. 걷기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이자 마음을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이며 가장 빠르고 단순하게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자산이다.
; 저는 하루 2만보를 걸으려 합니다. 단지 만보걷기를 사람들이 이야기들 하지만 욕심을 내어 무리하게 목표를 늘려잡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탄소 녹색성장? ㅋㅋ 아닙니다. 자원의 유한화에 대한 경각심을 저도 실감합니다. 2018년 2월 중순 현재의 겨울 기온은 확실히 이상기온입니다. 들리는 소식에는 시리리아 북품이 제트기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층에 의해 남하하지 못하도록 갇혀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 세계 곳곳에서 이상 기온 현상으로 심각한 자연재해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결코 아니어서 예전 삼한사온(삼일은 춥고, 사일은 따스한 전형적 한국의 겨울 날씨)는 이제 그 레코드를 다시 써야만 할 것 같습니다. 출근길 심하게 부는 바람이 아님에도 얼굴이 찬 바람에 뜯겨져 나가기 직전의 고통을 느끼게 하고, 가장 여린 노출부위인 귓바퀴는 누군가 자글자글 씹고 있는 듯한 고통에 결국 제가 제일 싫어하는 패션 중 하나인 마스크 형태로 넥 워머를 뒤집어 쓰고야 말았습니다.
한 때 자신을 자유케 한다는 명목으로 런너스 하이를 경험하기 위해 미친듯이 마라톤에 몰입했던 적도 있었고, 재정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지금의 2014년식 차량을 구입하기 이전 35세의 3남매를 키우는 가장으로 생애 첫 차를 사기 전까지 최대한 미루어 차를 구입하기 전에도 걷는 것을 좋아라 했습니다. 마라톤이나 장거리 뜀박질을 해 보신 경험이 있으신 분은 이해하시겠지만 처음에는 아무생각없이 나름 열심히 뜁니다. 그러다 숨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1킬로 정도도 채 못되어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거지?'라는 후회가 몰려와 숨이 더 가빠지기도 하지만 어느시점이 되면 - 실제 마라톤 풀 코스의 경우 30킬로 전 후 지점 -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내 속의 자아와 단 둘이 그 자리에 무언가를 움직이고 있는 육체의 자아를 발견하게 됩니다. 유체 이탈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
그 때는 온전히 자신과의 독대만 이루어집니다.
2, 관계 - 너와 나, 그리고 우리
ㅇ 아버지의 길
(128) 아이는 자라며 좌절을 겪는다.좌절하고 또 좌절하며 성장한다.이 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아버지의 믿음이다. 따뜻한 눈으로 마음 깊이 믿어주는 아버지만 있으면 아이는 씩씩하게 좌절을 이겨내고 어른이 된다. 나를 성장시킨 것은 아버지의 믿음이었다. 한 사람의 성장은 믿어주고 바라봐주는 아버지의 사랑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아버지가 평생에 걸쳐 내게 알려준 가르침이었다.
; 양산을 쓰고 앞에 서 가는 여인과 멀찌감치 뒤에서 뒷 짐 지고 걸어가는 중년의 풍채의 남자! 작업복 입은 사내로 그림 이름이 지어져 있지만 왠지 저자가 아버지의 길이라고 명명한 것처럼 딸 주시하며 뒤 따르는 아버지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에 공감합니다. 단지 관음증 남자가 아니라 말입니다.
이제는 대화할 수 없는 분이지만 제겐 아버지가 작가가 표현한 그대로의 인격체이셨던 것 같습니다. 나의 피할 피난처요, 산성, 요새, 언덕, 그늘...
어느 순간 이미 웃자란 저는 저희 삼남매에게 이러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지 항상 자문합니다. 그런데 제 대답은 언제나 글쎄요 입니다. 왜냐하면 저와 35년 차 나시는 아버지와 제가 저희 집 큰 친구와 28년차 나는데 묵묵하셨던 그 분과는 달리 저는 아이들이 닭 주둥이로 병아리를 쪼아대듯 다구치는 스타일이랍니다. 그래서 모든 대화가 그 친구들에게는 잔소리 여겨지는 부정적 측면이 강하다 보니 그 분이 자연스레 더욱 존경스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그 분도 저처럼 우리 친구들이 잘 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3. 여행 - 나를 찾으려 길 위에 서다
(176) 문득 영화(르누아르)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관절염으로 극심한 고통을 안고 살아가던 어느 날,다리는 물론 손가락도 쓰지 못하게 되자 르누아르는 손에 붓을 묶고 그림을 그린다. 이미 모든 것 그렸으니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는 아들의 걱정스런 만류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지. 아직 할 일이 남았어.힘이 다할 때까지 그릴 거야”
; 사랑하라 기뻐하라. 삶은 아름답고 행복한 것이다 (르느와르)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이 글을 통해 전달되어져 오는 떨림과 장렬하기까지 한 이 멘트는 단지 우리가 보기에 즐거운 이면의 다른 모습을 훔쳐 본 듯하여 가슴이 콩닥콩닥 뜁니다. 우리는 장인정신이라는 단어로 이를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에선 이조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어 왔던 단어이나 매우 낮고 저급하고 '쟁이' 등 천박한 대상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어감이 남아있는 것을 보니 저도 연식이 좀 된 것 같습니다. 그림 그리시던 분들을 '환쟁이'라고 불렀던 것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독일 같은 선진국에서는 마이에스트로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졌었죠? 우리의 시각도 조금의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전의 실업계고 (공고, 상고등)의 이름을 마이에스터교라고 바꾼 것만 해도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인정하십니까?
4. 삶 - 그래도 삶은 계속 된다
ㅇ 죽음을 향한 끊임없는 전진
(272) 구스타프 클림프 (죽음과 삶) 1910
클림트는 그림의 제목에 ‘삶과 죽음'이 아닌 ‘죽음과 삶’이라고 이름 붙였다. 삶 뒤에 죽음이 온다는 생의 결과론적 접근보다는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고 삶이 있기에 죽음도 온다는 생의 순환을 강조한 것이다.
; 닭이 먼저인가? 닭알이 먼저인가?
저자의 말처럼 삶 뒤에 죽음이 온다는 생의 결론적인 접근보다는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고, 삶이 있기에 죽음도 온다는 생의 순환을 강조한 것이라는 설명이 이 분은 죽음을 달관한 철학자가 아닌가 싶은 정도로 수려한 문체로 사람들, 독자를 홀리는 듯 합니다. 해골과 십자가, 죽음 앞에서 남여노소 인종도 별무소용이 없습니다. 구글에서 AI 이후 죽음(Death)를 연구하고 있다고 어느 분이 당신의 포스팅에서 말씀하신 것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모든 인간의 마지막 질문이 이것이 아닐까요? 우리모두가 자유롭지 못하기에 더 매달리고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아직까지의 의술과 과학의 발달로도 풀어지지 않는 미지의 방정식! 그래서 아마 그런 대기업에서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덤벼들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집니다.
일상의 모습부터 이해되지 않지만 희망이라는 그림까지 그림보다는 저자의 해설이, 꿈보다는 해몽이 더 나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