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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표면 아래 - 너머를 보는 인류학
웨이드 데이비스 지음, 박희원 옮김 / 아고라 / 2024년 6월
평점 :
처음 읽는 문화인류학자의 글
세상은 텍스트가 전부가 아니라 여전히 컨텍스를 읽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뼈저리게 깨닫게 해 주는 책이다. 캐나다 태생으로 미국 국적을 가진 작가는 200년 역사의 강대국 미국의 민낯을 가감없이 캐내어 적잖게 독자를 당황하게 한다.
팬데믹을 거친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의 백인우월주의적 정치행태부터 “나는 인간의 정신에 가해지는 모든 형태의 압제에 영원히 대적할 것을 신의 제단에 맹세한다” 던 미국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토머스 제퍼슨은 노예제를 인정하여 자신이 신의 힘을 거부한다. 자신의 틀니 제작을 위해 살아있는 노예의 생니 아홉 개를 뽑은 조지 워싱턴, 탈출한 노예가 어느 주에서 붙잡히건 노예 신분으로 복귀한다는 도망노예법의 집행을 천명한 에이브러햄 링컨 등 저자의 이 책이 없었다면 알지 못했을 미국의 흑역사를 엿볼 수 있었다.
미국의 건국사와 근대사를 포함하여 인류학자로서 인류학에 대한 소개 및 필요성을 기술했으며, 하마스 공격으로 전쟁이 지속 중인 이스라엘의 역사와 이를 둘러싼 열강 강대국들의 파렴치함과 유엔의 무능력함, 종교와 역사를 망라한 여러 사건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해 준다.
세계의 패권을 움켜쥔 자와 쟁취하려는 자와 국가간의 숨막히는 경쟁구도와 세계를 화마에 몰아넣은 전쟁국 당사자들의 이면, 그 전쟁의 양상과 차만 직시하지 못할 것 같은 참상, 전쟁의 이면에 보여지는 어처구니 없는 역사의 아이러니, 전장에서 꽃 피운 문학적 반전 시 문학, 전후 강대국의 면모를 만방에 떨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의 결과와 에베레스트 첫 등정 및 극점을 향한 도전 역사 등은 결코 세계사 시간에 배울 수 없는 내용들이다.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인도의 정체성과 역사적 부침과 인류학적으로 재 정립이 필요한 ‘원주민’이란 단어를 대신한 만한 명칭에 대한 단상, 코카인으로 인해 정작 인류가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가 마약 밀매업자, 생산자, 단속반의 묘한 커넥션에 의해 박탈당한 코카의 사용에 대한 내용이 매우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설명되어 지고 있다.
저탄소 녹색성장 및 재생에너지를 화두로 세계가 벌이고 있는 각축의 장에서 스웨덴의 소녀 툰베리의 등장과 세계 각국의 이해타산을 저울질 하는 행태, 인류의 경각심을 고취시킬 목적으로 인위적 설정된 캠페인 및 국제 저명 학술지 등재 이면의 모종의 거래까지, 기아에 허덕이는 세계에서 전체 식량의 무려 3분의 1은 사람 입으로 들어가지 않고, 빈곤국에서 낭비는 공급망에서, 부국에서는 식탁에서 낭비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구체적 숫자를 들어 계몽하는 글 등 인류가 한 번은 듣거나 읽어봐야 할 내용들이 다채롭게 기술되어 있다.
그럼에도 인류에게 희망을 이야기 하는 저자의 목소리와 딸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지금 당장 내 자녀와 그 보다 앞서 내게도 적용될 말이라 나눠본다.
“인생은 직선도 아니고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거야. 경력도 외투처럼 툭 걸치면 되는 게 아니지. 그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선택을 거듭하고 경험에 경험이 쌓일수록 널 둘러싸고 유기적으로 자라나는 거야. 모든 건 합쳐진단다. 네가 하기에 아까운 일은 없어. 네가 그렇게 만들지 않는 한 시간 낭비인 일도 없지. 나이 지긋한 뉴욕의 택시 기사가 인도에서 방랑하는 성인이나 사하라 사막의 광인 못지않게 네게 많은 걸 가르쳐 줄 수도 있는 거야. 대학교수 못지않을 건 더 없이 확실하지.
여러 기회가 있는 길에 자신을 올려놓는다면, 일단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고 하려던 바를 해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스스로를 둔다면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까마득해 보였을 새로운 차원의 경험과 상호 작용으로 끝내 너를 몰고 갈 동력을 만들게 된단다.
창의성은 행동의 결과지 행동의 동기가 아니야. 일단 해야 하는 일을 한 다음 그게 가능한 일이었는지, 허용되는 일이었는지 질문하렴. 자연은 용기를 사랑한단다. 미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짐 휘태커는 젊어서 벼랑 끝에 살지 않는 사람은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하는 거라고 했어.
불가능한 일을 꿈꾸거라. 그러면 세상은 너를 끌어내리지 않고 받쳐 올려줄 거다. 이게 크나큰 놀라움이고 성인들이 전하려던 말씀이야. 심연으로 몸을 던지고 보면 거기가 털 침대라는 걸 알게 될 거다.“ (31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