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 지혜의 시대
김현정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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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잡힌 시각이 중요하다. 눈에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재판의 과정을 들여다 봐도 원고와 피고의 증언이 있듯이 뉴스에도 눈에 보여지는 것과 현장의 목소리를 같이 담아야 한다. 그러나 실재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 결국 받아들이는데 제약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여기 하루 24시간 중 20시간 이상을 뉴스와 생활하는 김현정 피디의 강연을 글로 만남으로 대리 만족과 그녀의 사고의 중심의 이동, 그녀가 견지하는 뉴스 전달의 자세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진 하나로 경찰서장을 죽였다고 고뇌한 한 퓰리처상 수상 작가의 말처럼 순간을 표착한 사진이 그 사진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와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옆에서 지켜본 증인의 메시지가 각각 다름에도 우리는 우리가 처음 접한 메시지에 함몰되어 그 이상의 것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보거나 들으려하지 않고, 심지어 찾아보려 하는 시도 조차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귀막고 눈막고 스스로 단절을 자초하면서 자신만의 사고에 사로잡혀 혼자 살면 상관없는데 이러질 못하고 자신의 잘못된 관점과 사고를 고집하며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려고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극단적이게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서로 틀린 주장이 옳다고 주장하는데 받아들여 줄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그러니 목소리가 커지고, 배척하게 되며 세력을 만들게 되고 갈등과 반목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그렇게 몸으로 표현하기에 이른다. 안타깝지 않은가?

백퍼센트, 확실하다 등의 단어를 기실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추구한다고 표현하고 그렇게 말하는 이의 말에 신빙성을 조금 더 둔다. 왜냐하면 신이 아닌이상 백퍼센트, 확실하다고 할 것이 과연 이세상에 존재할까? 기술과 과학의 발달로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현대사람으로 과학도 새로운 학설이 나와 이전의 학설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점잖은 사람들은 나름 타당성을 검토해 받아들이고 정립된 학설로 인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아직은 더 많은 분포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니 그 정도의 지적수준을 갖지 못한 사람도, 그리고 자신만의 별도의 프리즘이 있어 나름 분석하고 판단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 논쟁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문제는 논쟁의 존재 유무가 아니라 논쟁의 방법과 접근 방식, 사고 체계가 아닐까?

그런데 학교 교육은 우리에게 이러한 것을 굳이 사회에 나가 세파에 휩쓸린 다음에야 어쩔수 없이 마지못해 배우게끔 우리를 양떼 몰듯 몰아간다. 참 무책임한 정책임에도 도무지 바뀔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간혹 자사고, 대안학교 등에서는 실험적으로 시행되고는 있지만 한참 멀었다. 교육 백년지대계라고 하지만 그건 남의 나라 이야기다. 해마다 입시철이 지나면 누더기가 되는 우리의 교육 현실 앞에 우리의 자녀들은 21세기 볼모가 되어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대량생산의 체인처럼 쳇바퀴 도는 삶에서 공정에 약간의 수정만 있을 뿐이고, 그저 부모와 학교, 학원의 트라이 사이클을 열심히 돌다 미완의 상태로 세상에 던져질 수 밖에 없는 공산품의 하나로 전락하고 만다. 각자도생? 웃음이 나온다.

여하튼 이책은 그러한 사고의 기준을 정립하는데 약간의 도움을 준다고 판단한다. 세상은 선글래스를 착용하고 보면 그 렌즈의 색깔에 따라 보여지는 세상이 요지경이다. 내 눈을 나도 못본다. 검은색, 노란색,... 그런 렌즈를 제대로 선택해서 눈의 피로를 최소화하여야 건강한 현대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가끔 페이지에 언급된 사진 등이 누락되어 결국 책을 덮고 네이버를 뒤져야 하는 수고가 있지만 그에 비해 지난 10여년간 여성 앵커로 진실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했던 그녀의 끈질긴 노력에 박수와 경의를 표하며, 생방 또는 팟캐스트로 전해들은 그녀의 목소리는 효자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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