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의미한 죽음이란 무엇일까. 대승적으로 한 사람의 희생이 많은 이를 살린다면 그건 유의미한 죽음일 수 있겠다. 그게 타인의 일이라면 그 희생을 칭송하고 기리는 걸로 지나칠 수 있을 것이다.
1000년 가까이 대를 이어 스물여덟이 되는 겨울이면 괴물로 변하는 저주를 받은 남주는, 아버지처럼 괴물로 변할 바에야 이지를 가진 인간으로 죽고 싶어하는 한편 저주를 풀기 위해 신탁이 말한 성력이 담겼다 말라버린 보석을 찾고자 온 사방에서 공물을 받는다.
신탁은 해석이 불완전하여 누군가는 왜곡하고 누군가는 숨기지만, 저주를 풀기 위해 그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남주는 변두리 소국의 ‘별’이라 불리는 여주를 만난 순간 신탁이 말한 심안을 가진 존재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납치하다시피 제 성으로 데려온다.
그녀는 눈을 뗄 수 없게 아름답고 연약하고 그를 무서워하지만, 그에게 솔직하고 고마워할 줄 알고 주변을 살피고 밤이면 스스로를 성탑에 가두는 남주의 처지를 아파하다 그를 사랑하게 된다. 남주도 여주를 계속 보게 되고 심장 소리를 듣고 여주를 만지고 싶고 안고 싶지만, 여주에게 가는 그 마음을 괴물로 변해갈수록 강해지는 핏줄의 욕구일 뿐이라 치부하고 애써 그녀를 밀어낸다.
남주는 인간으로 살고 싶고 제 가문의 모두가 고통받는 이 저주가 끔찍하여 그걸 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탁이 여주의 눈을 파내고 그도 안 되면 그 목숨을 희생해야 한다고 해석되었을 때, 그걸 따를 수는 없었다.
하나를 희생하여 수백만을 살릴 수 있으니 당연히 해야 한다고? 그야말로 유의미한 죽음이라고? 내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여주를 죽음으로 내몰라고? 가문의 대가 끊기지 읺기를 바라는 가신들이 여주에게서 자식을 보기를 원하는 것도 거부하던 차에 심지어는 여주를 죽여야 한다고? 그럴 수는 없었다. 차라리 인간으로 이 겨울에 죽을 것이다.
하지만 여주는 또 다르다. 사랑하는 남주가 이렇게 메마르게 살다가 죽게 둘 수 없다. 내가 눈을 바치고 온몸의 피를 바치더라도 그를 인간으로 살게 하고 그의 나라를 이 깊은 불행에서 구하고 싶다. 어느새 그렇게 돼버렸다. 아름다운 외모 외에는 쓸모 없다 생각했던 인생이 남주를 만나 심안의 소유자임을 알았고 이제는 그의 저주를 풀 수도 있다니 이만하면 의미가 있지 않겠나.